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21일 서울고등법원이 증거주의와 ‘명백한 위험성’의 원칙에 따라 핵심적인 혐의를 무혐의로 인정한 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덧붙여 남북관계의 진전 등 시대적 변화의 흐름도 반영하며,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민애청 사건을 판결하면서 ‘명백한 위험성’을 잣대로 판단한 것과 함께 국가보안법이 합리적인 법정신에 배치된다는 것을 드러내고, 향후 법원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20일 서울지법이 한국청년단체협의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한 것과 검찰이 15일 정재욱 11기 한총련 의장에게 징역5년을 구형한 것처럼 국가보안법이 존속하는 한 사법부의 일부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한다. 국가보안법을 유지한 채 사법부의 상식적인 판단에 기대어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자기검열과 사상․양심의 자유침해를 막을 수 없고, 사회의 발전을 위한 대안모색과 통일로 가는 발걸음을 온전히 내디딜 수도 없다.
최근 열린우리당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국가보안법이 일부 개정으로는 그 폐해가 여전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식한 결과이다. 열린우리당의 지도부 역시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있었던 개정 시늉에는 뼈아픈 분노를 느낀다. “운용상 몇 가지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한 개정안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인권침해를 존속하고 남북긴장을 유지하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또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적용범위를 축소하고, ‘찬양․고무죄’를 ‘선전․선동죄’로 바꾸는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본질적인 인권침해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국가안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법을 무슨 국가안보를 위한 방패막이인 것처럼 거짓 주술을 걸어대는 것은 변화된 시대를 역행하고 수구냉전체제로의 회귀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무참히 쏘아 온 총과 같다. 총에 총알 몇 개 없앤다고 그 총의 총구 앞에서 쓰러지는 이가 없겠는가. 더 이상 개정론이나 대체입법론을 들먹이지 마라. 국가보안법 폐지,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 2621호
- 200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