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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진상규명 없이 명복 빌 수 없어"

과거청산 관련 유족들, 합동 위령제

하얀 국화꽃 한 송이씩을 든 노인들이 계단을 힘겹게 오른다. 굽은 허리를 더욱 숙여 신위를 향해 절을 하고, 꽃을 바치고, 술을 올려보지만 원혼들의 '한'을 달랠 수 없다는 죄스러움에 눈물이 쏟아진다.

5일 일제강제동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등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국가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여의도 문화마당에 모여 처음으로 합동 위령제를 지냈다.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범국민위원회(준)(아래 범국민위)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200여명의 유족들과 올바른 과거청산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4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농성참가자들도 함께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지 이미 반세기가 넘어 유족들도 많이 세상을 등졌지만 여전히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범국민위 오종렬 상임대표는 "어둡고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여 영령들의 피맺힌 가슴을 풀어주고자 마련한 자리"라고 했지만 "산 자들이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해 아직도 구천을 헤매도록 하고 있다"며 죄스러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어 "가해자와 그 동조자가 국가와 사회 전반을 깔고 앉아 저들의 안보를 국가안보라고 하고 저들의 기득권 유지를 국가정체성이라 하면서 과거청산을 가로막고 있다"며 보수세력들을 비판했다.

위령제에서는 유족들과 피해자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군대에 간 자식이 5개월만에 시체로 돌아왔지만 사인도 밝혀내지 못한 채 14년을 보낸 '못난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유족은 "국민이 목숨을 잃어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가 무슨 국가냐"며 "국회를 정상화 해 당장 과거청산법안을 통과시켜라"고 촉구했다.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 전영순 회장은 "삼청교육대 관련법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얼마나 지독한 인권유린이 있었는지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절규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은 4만여 명의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했지만 현재 불과 3천5백여 명만 조사 대상이다.

위령제에 온 중학교 역사탐구 동아리인 ' &사' 회원들은 "국가 폭력에 의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학교에서도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왜곡되고 숨겨진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위령제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날 유족들은 "과거청산을 가로막는 국가와 각 정치집단의 무책임함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며 선언문을 낭독한 후, 상여거리굿으로 위령제를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