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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운동을 키우는 새로운 실험> ⑥ KT 상품판매전담팀 인권침해 조사

노동 속 인권 찾기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운동의 과제인 동시에 인권운동의 과제인지 모른다. 노동과 인권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 사회운동의 화두다. 그러나 둘 사이의 만남에는 계기가 없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반복되는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지쳐있는 노동운동에게 인권운동은 멀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장애인, 소수자운동 등 끊임없이 확장되는 인권운동 영역에 다가서지 못하는 노동운동이 인권운동가들에게는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 두 운동은 만났다. KT 상품판매전담팀(아래 상판팀)에 대한 인권차별의 투쟁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빠르게 진행된 KT 민영화는 노동 유연화에 따른 대대적인 고용불안과 각종 복지후퇴를 가져왔다. 이런 과정에 발생하는 노동에 대한 공세는 참으로 심각한 것이었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이를 노사문제로 제기하면서 싸워나갔다. KT 노동자들도 1998년, 2000년 파업을 하기도 했으며 소규모 집단에 의한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백전백패였다. 그 사이 정규직 2만5천 명, 비정규직 1만 명의 노동자가 KT를 떠나야 했다. 노동의 무력화에 자신감을 갖게된 회사는 강압적인 노동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퇴사를 강요하기 위한 퇴출 프로그램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상판전팀은 그 정점이었다. 상판팀은 대다수 비연고지로 인사조치 되었으며 대부분이 영업활동과는 거리가 먼 기술분야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상품판매 과정에서 일반 영업사원과는 달리 영업지원비 등에서 온갖 불리한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한마디로 "더러운 꼴 보기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었다.

이러한 차별과 불이익에 대해 해당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노조사무실 항의농성 등 노사문제 수준에서의 대응을 했다. 그러나 회사는 꼼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미행, 감시 등의 차별을 강화했다. 이러한 일상적 차별과 감시로 인해 상판팀 노동자들은 발가벗겨진 채 인간적 밑바닥을 다 보인 것 같은 모멸감과 자괴감 심지어 두려움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이 문제는 노사관계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권단체연석회의(아래 인권회의)를 찾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호소에 인권회의는 "신자유주의 시대 인권침해의 주요 형태가 기업 내 인권침해"라며 적극적인 연대를 결의했다.

이 연대 결정을 계기로 인권회의와 상판팀 전국모임은 상판팀 해체를 위한 서명운동, 집단 설문조사, KT 반인권적 차별 행위 및 노동감시 실태 증언대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의 투쟁을 공동으로 전개했다. 더 나아가 인권회의는 각 지역의 상판팀 노동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로 <KT 인권침해 조사단>을 꾸렸고, 전국 KT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이 소박한 만남은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이 본격화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어쩌면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기업 내 인권침해에 놀라워하는 인권운동가들을 보며 노동자들은 그 동안 겪어야 했던 억울함, 불안함, 주눅 든 자신들의 얘기들을 눈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8월 땡볕에 목이 말라 야쿠르트 하나를 사먹고 싶어도 회사의 감시가 두려워 스무 걸음을 움직이지 못했던 노동자, KT를 떠나지 못하는 자신이 한스러워 눈물로 지내신다는 노동자, 옆의 동료가 나를 감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는 노동자, 길을 가면 항상 뒤를 보며 골목길로 다닌다는 노동자, 운전 시 전방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후방을 주시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노동자 등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KT 상판팀 노동자들을 인권운동가들은 만날 수 있었다. KT 노동자들은 '국가보안법 철폐 반대', '경찰폭력 규탄'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활동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을 느끼던 인권운동가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러한 만남은 새로운 투쟁을 만들어냈다. <KT 인권침해 조사단>은 집담회를 진행하면서 KT 상판팀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이 단순한 인권침해 수준을 넘어 정신 건강상의 문제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에 의료단체들과 함께 집단적인 MMPI(다면성 인성검사)를 추진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사자의 45%가 우울, 불안, 긴장, 공포, 신경과민, 공포, 피해의식 등을 시사하는 비정상적인 척도들을 보여주었다. 그 중 4명은 이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정신건강상의 이유로 산재를 인정받기도 하였다.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은 점점 성역화되고 있다. 인권침해의 주요 유형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서 기업 내 인권침해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내 노동인권의 문제는 노사관계 수준의 문제로 은폐되면서 시민사회의 관심이 다소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시민사회의 인권의식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기업 내 인권의 수준은 그만큼 확장되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노동인권의 문제는 더 이상 기업 내 노사관계의 이슈가 아니라 사회적 의제로 제기되어야 한다. 상판팀의 투쟁은 어쩌면 그 출발일지 모른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인권운동의 깃발 아래 이미 하나인지 모른다.

◎김미영 님은 KT 전국상판모임 집행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