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오랜 시간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노동현장에서의 성차별, 이주민에 대한 차별 등은 차별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의 양상과 영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우리 사회에서 많이 논의되지 못하였습니다. 특정한 정체성을 지닌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거나 특정한 정체성 운동의 문제로만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노동현장의 다른 차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는지, 이것들의 영향은 무엇인지 논의되기 보다는 동등하지 않은 월급, 노동환경의 문제로만 이해되면서 노동에서의 차별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풍부한 운동을 만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10일 민주노총 15층에서 열린 <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토론회는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 하지 못한 노동에서의 차별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함께 30여 명의 노동자 인터뷰를 통해 노동현장에서 어떠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차별을 통해 자본이 노리는 효과가 무엇인지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운동의 전망을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논의하며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우리가 나아갈 점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자본의 차별 활용
차별이 노동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며 몇 가지 지점을 유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효율성’입니다. 노동현장에서 차별은 오랜 기간 뿌리 깊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차별구조, 노동현장 또한 이에 영향을 받는 공간이라는 점, 그리고 자본이 ‘효율성’을 바탕으로 차별을 합리화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효율성’은 자본이 말하는 ‘생산성’ 이기도 합니다. 효율적 생산을 위해 취하는 자본의 방식에 차별의 요소가 결합되고 합리화 됩니다.
병원을 예로 들면 병원은 의사, 간호사, 간병인, 총무과와 같은 운영직, 각종 시설 수리, 청소, 경비등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자본은 병원은 의료를 목표로 한다는 당위를 중심으로 병원의 직군과 직제를 나눕니다. 그리고 책임과 권한, 임금을 비롯한 노동환경이 각 직군과 직제에 따라 구분됩니다. 이 위계에 의사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여러 직종이 그 아래로 위치됩니다. 그리고 자본은 이들의 고용형태를 위계에 따라 나누기 시작합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외주화된 노동형태는 이 위계에 따라 배치됩니다. 물론 각 직종 내에서 고용형태가 구별되기도 합니다. 직종내의 구분 또한 ‘효율성’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비정규직 간호사는 더 적은 시간을 일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핵심/비핵심은 구체적 기준이기보다는 조직 내 세력관계나, 특정 직종 업무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따라 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냐에 따라 구분되고 위계는 정당화 됩니다.
이와 같은 구분이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과거 기술직이 중용 받던 시절이 존재했지만, 현재 대부분의 노동현장에서 기술직은 비정규직 되거나 외주화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의 구분은 임용고시를 합격했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교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직종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됨에도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은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차별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노동현장의 위계에 따라 보상을 서로 다르게 주고, 작업장 내에서 다른 대우를 합니다. 핵심 노동을 하는 노동자와 비핵심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가치 또한 다르게 부여합니다. 노동의 가치를 구분 짓고 그 가치 속에 노동자들 또한 집어넣습니다. 이 과정은 꾸준히 반복됩니다. 이렇게 반복되어 나타난 노동형태가 지금의 노동현장입니다. 다양한 고용형태로 나뉜 노동자들, 어떠한 업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 그리고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가해지는 모욕과 무시. 노동현장의 단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차별의 기제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펼쳐져 있는지, 그리고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차별이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영향, 저항의 무력화
자본이 차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자본에게 있어 노동자들의 저항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기도 하고, 착취전략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꾸준히 노동자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분리의 선을 만들어 냅니다. 이 분리의 선에 차별의 기제들은 언제나 위치합니다.
이번 연구에서 또한 이와 같은 자본의 전략은 드러납니다. 자본이 만들어낸 노동현장의 위계는 노동자들의 연결된 선을 끊어냅니다. 노동의 위계에서 노동자가 느끼는 모욕감과 무시는 쉽게 자본을 향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와 같은 모욕감과 무시를 다른 노동자에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속에서 노동자들의 연결은 무너집니다. 이와 같은 이유는 노동의 위계를 통해 노동자들의 평등감각이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가치로 불리는 노동자간에 우리는 동등한 노동자라는 인식은 쉽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너와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이었다면, 지금은 ‘너와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너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달라, 그리고 너라는 사람과 나라는 사람의 가치도 달라’입니다. 이 상황에서 서로 간에 평등한 관계는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훼손된 평등감각이 노동자의 연대 또한 무너뜨립니다.
평등한 관계를 지니지 못한 노동자간에 연대는 쉽지 않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는 무너집니다. 한 작업장 내에서 조차 위계에 따라 연대가 파괴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연대는 더욱 힘겨워집니다. 이와 같은 힘을 자본은 끊임없이 만들어냅니다. 때로는 ‘모욕감’과 ‘무시’를 통해. 때로는 다른 대우를 통해 노동자를 가릅니다. 노동자가 어떠한 저항을 모색하면 이를 가로막기 위해 자본은 차별을 활용합니다.
노동에서의 ‘반차별’운동을 고민하며
이번 토론회에서 나눈 이야기와 지금까지 연구를 바탕으로 곧 ‘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책자를 발행합니다. ‘다른 대우’를 넘어 노동자를 분리시키고 평등과 연대를 훼손시키는 ‘차별’에 맞서기 위한 운동은 어떻게 가능할지. 새로운 상상을 꿈꾸는 운동이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새로운 상상이 가능하길 기대해봅니다.
*‘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소책자가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