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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폐지논란 속에서도 날선 보안법

'2004년 국가보안법 적용실태 보고대회' 열려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가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분출했던 지난해에도 보안법의 자의적 적용과 이에 따른 인권침해는 여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아래 국민연대)가 개최한 '2004년 국가보안법 적용실태 보고대회'에서 민가협 박성희 간사는 "2004년에는 보안법 존폐논쟁이 벌어지면서 수사기관의 자의적 적용실태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해 보안법 적용기관들이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개성공단 공동투자 등 남북교류가 정부차원의 정책으로 확대돼 보안법 위반 구속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23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2004년 국가보안법 적용실태 보고대회'

▲ 23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2004년 국가보안법 적용실태 보고대회'



실제로 보안법에 의한 구속자는 2003년 78명에서 2004년 37명으로 줄어들었고, 구속자 가운데 7명이 보석으로 24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또 법원은 고희철(외대 왕산, 7기 한총련 대의원) 씨와 김현석(조선대, 12기 한총련 대의원)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집행유예 기간임에도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했으며 불구속 수사 중인 학생들에게 선교유예를 판시하기도 했다. 이른바 '아주대 자주대오' 사건에 대해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판결을 내렸으며, 민족사랑애국청년회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이적단체'라는 원심판결을 뒤집고 무죄판결을 하는 등 법원이 일부 사건에 대해 전향적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또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서울고등법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을 경우에는 피의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야 한다는 형사법의 일반원칙은 국가보안법 사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송 교수가 "북한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구속자 전원, 7조 위반 혐의

민가협 박성희 간사

▲ 민가협 박성희 간사

하지만 일부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안법 폐지 이유로 가장 많이 지적되어온 자의적 적용은 여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 간사에 따르면 전체 구속자 중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8명, '아주대 자주대오' 사건으로 4명 등 모두 28명이 보안법 제7조 제3항(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 혐의로 구속됐다. 또 구속자 37명 전원이 보안법 제7조 제5항(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구속되는 등 제7조는 여전히 손쉬운 인신구속 수단으로 남아 있다.

박 간사는 보안법 제7조에 대해 "'동조, 선전·선동' 등 추상적인 단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어 수사기관의 수사편의주의 관행과 맞물려 심각한 양상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또 "가장 기본적인 의사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인간의 내심을 국가보안법 잣대에 맞춰 제한하고 강요하면서 국가형벌권으로 처벌하고 있다"며 "7조를 전면폐지하지 않고서는 국가보안법의 본질적인 위험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원한 사냥감, 한총련

한총련 불탈퇴 혐의에 대해 검찰은 "북한공산집단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조직된 반국가단체"이고 "한총련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친북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이적단체"라는 공소사실을 천편일률적으로 되풀이했고 법원은 이를 그대로 인정해 모두 유죄판결을 내렸다.

게다가 검찰은 한총련의 '대의원대회 자료집', '출범식 자료집' 등에 대해 "한총련 총노선의 남한사회 인식은 기존의 한총련과 마찬가지로 북한정권의 대남사회관에 기초하고 강령전문은 북한정권의 대남투쟁과제인 '자주, 민주, 통일노선'을 여전히 그대로 수용"하며 "국가보안법 철폐, 주적론 철폐, 국정원 등 폭압기구 해체, 노동악법 철폐 등을 선전선동"하는 이적표현물로 규정했다. 또 '11기 한총련 임시대의원대회 자료집'이 "민주집중제"라는 조직원리를 언급한 점에 대해 의정부지검 옥선기 검사는 공소장에서 "북한의 조직운영의 원리에 동조하여 이를 정당화하고 선전"하는 것이라며 이적표현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간사는 "국가보안법 철폐 등 일반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주장하는 내용을 구속수사 대상으로 처벌하는 것은 상식적 형평성 뿐 아니라 법적 객관성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적표현물 조항은 수사기관이 객관적 증거도 확보하기 전에 피의자를 체포·수사할 수 있는 조건을 허용해 인신구속으로 인한 자백강요 수사관행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체포된 피의자 입장에서는 구속확정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으로 충분한 자기 변론보다는 수사에 협조하게 되는 결과에 이른다"고 비판했다.


법원, 구속자 전원 유죄판결

법원 또한 2004년 구속자 중 현재까지 1심 판결을 마친 23명 전원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으며 한총련 학생들에 대해 반성(탈퇴) 여부를 판결의 주요기준으로 명시하는 등 근본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법원은 2003년에 구속된 민경우 전 통일연대 사무처장과 강태운 전 민주노동당 고문에 대한 2004년 항소심, 상고심에서 원심의 유죄 판결을 확정하는 등 구태의연한 판결을 되풀이했다.

한국청년단체협의회(아래 한청)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이대경 판사)도 "한청의 강령이나 소식지는 남한 사회를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있고, 북한의 선군정치를 찬양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인민민주주의 혁명 등을 주장"했으며 한청이 주장하는 연방제는 "일반적 연방제가 아니라 북한의 연방제 통일 강령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어 우리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해할 수 있다"며 유죄 판결했다.

보고대회에 참석한 민변 장경욱 사무차장은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검찰의 공소장과 대부분의 법원 판결문의 유일한 논리 혹은 근거는 피고인들의 주장이 외형상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것"이라며 "주장의 내용이 왜 혹은 어떻게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지에 대해서 엄격한 증명은커녕 추측성 의견조차 피력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연대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으며, 이제는 피해도 거의 없다고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2004년 국가보안법 적용실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고, 공안기관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 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정치권에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