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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평화는 바라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

'길바닥 평화행동'이 지닌 미덕

찬바람에 볼이 얼얼했다. 귀가 제대로 붙어있기나 한 것인지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2월 24일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광화문 사거리를 거침없이 훑고 지나온 찬바람을 맞으며 교보문고 앞에서는 평화행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름하여 '길바닥 평화행동'. 말 그대로 길바닥에서 평화를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마임 공연의 한 장면

▲ 마임 공연의 한 장면



이날 길바닥 평화행동은 열 마디의 말보다는 하나의 행동으로 더 큰 울림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임 공연으로 시작됐다. 책을 읽고 편지를 쓰는 등 너무나도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과도 같은 장면에 이어 이라크인들의 얼굴 그림 하나하나에 촛불이 켜지자 공연은 금새 울부짖는 커다란 몸짓으로 변했다. 찬바람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공연에 몰입했다. 여러 사람들이 각각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꽉 짜인 문화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자리였다. 공연자와 관중이 따로 구분되지도 않았다.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은 악세사리들을 지나가는 시민들과 함께 만들기도 했다. 누구도 기획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참가하는 길바닥 평화행동은 어느새 시베리아에서 불어왔다는 찬바람도 뚫고 있었다.

이라크인들에게 평화를 : 앗쌀람 알라이쿰

▲ 이라크인들에게 평화를 : 앗쌀람 알라이쿰



갈수록 작아지는 "전쟁반대"의 목소리

길바닥 평화행동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멈추지 않았다. 이날 길바닥 평화행동 사회를 본 대항지구화행동 지은 활동가는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을 통해 '우리도 전범국민'이라고 자각하고 나서 우리 스스로 전쟁에 반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시작 당시를 회상했다.

이라크전쟁이 터진 후 지난해 김선일 씨가 죽었고, 자이툰 부대는 여전히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으며, 총선이 실시된 이라크에서는 지금까지도 매일 수십 명이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어느새 이라크전쟁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한때 김선일 씨의 죽음과 함께 터져나왔던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좀처럼 찾기 힘들어져 간혹 이벤트처럼 한두 번씩 공허하게 울려 퍼지기만 할뿐이다. 지은 활동가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며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이어가고 싶었다"고 길바닥 평화행동의 의미를 밝혔다.


자발성의 힘, 길바닥 평화행동

하지만 길바닥 평화행동은 일반적인 집회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관성적인 집회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과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방식을 모색했다"는 것이 지은 활동가의 설명이다. 길바닥 평화행동은 철저하게 참가자 개인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진행된다. 길바닥 평화행동 참가자들 가운데 한 명이 다음 번 평화행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를 준비하는 담당자가 되고 나머지 '행동'들은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한다. 지은 활동가는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자발적인 참가를 통해서 처음에는 전쟁반대에 소극적이었던 사람들이 점차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사회를 본 지은 활동가

▲ 이날 사회를 본 지은 활동가



지은 활동가는 "전쟁은 가장 야만적인 행위이고 파병은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것일 뿐"이라고 단언하며 "우리가 하는 일이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조금씩 모여서 큰 물결을 이루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끔찍한 전쟁은 이미 우리에게 일상이 되어 사람들은 점점더 이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하지만 전쟁의 비참함을 잊지 않고 이 '더러운 전쟁'이 언젠가는 끝나고 평화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바로 길바닥 평화행동이 지닌 최고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