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노숙인 사망, 조직적 은폐의혹 있다"

연대모임, 기존 조사 뒤엎는 목격자 진술 공개

지난 1월 22일 서울역에서 발생한 노숙인 사망사건의 진상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7일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아래 노실사), 민주노동당 등 '노숙인 사망실태조사 및 근본대책 마련을 위한 연대모임'(아래 연대모임)은 기자회견을 통해 목격자 진술을 공개하고 경찰조사 결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인권하루소식 2005년 2월 3일자 참조>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목격자 인터뷰 동영상

▲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목격자 인터뷰 동영상



연대모임은 먼저 공익요원들이 노숙인 이 아무개 씨(아래 피해자)를 처음 발견한 장소가 기존에 알려진 서울역 2층 대합실 동쪽 화장실 통로가 아니라고 밝혔다. 1월 2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당시 필사한 경찰조서에 따르면, 당일 오후 6시경 서울역 2층 대합실 동쪽 화장실 통로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은 역무팀장이 공익근무요원에게 119에 신고하도록 지시했다. 이어 공익요원들은 피해자를 폐지나 짐짝을 싣는 손수레에 싣고 서쪽 출입구로 옮겼고, 구급대가 도착한 후 사망을 확인했다. 피해자를 굳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긴 이유에 대해 당시 서울역 측은 "구급차가 서울역 서쪽 출입구로 오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피해자 발견 장소·시간 조작 의혹"

하지만 연대모임이 확보한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공익요원들은 이미 오후 5시경 목격자들이 서 있던 서쪽 출입구 쪽 3층 대합실 난간 바로 아래에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피해자를 부축해 대합실 중앙 통로를 거쳐 동쪽 출입구 바깥쪽 대형 화분에 기대어 앉혔다. 이들에 따르면 공익요원들은 피해자를 내버려둔 채 공안실로 돌아갔다. 약 5분 후 공익요원 3인과 철도공안 1인이 나왔고, 공안실 앞에서 약 5분가량 대화를 나눈 후 이 가운데 공익요원 2인이 손수레를 끌고 와 피해자를 싣고 2층 대합실을 가로질러 서부역쪽 출입문으로 옮겼다. 즉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피해자는 대합실 동쪽 화장실 통로에서 서쪽 대합실 출입구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서쪽 화장실 근처에서 동쪽 출입구 밖으로 옮겨졌다 다시 서쪽 대합실 출입구로 옮겨졌다는 것.


연대모임이 준비한 당시 상황 재구성 그림. 피해자 이동경로와 시간에 차이가 있다.

▲ 연대모임이 준비한 당시 상황 재구성 그림. 피해자 이동경로와 시간에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연대모임은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1시간 이상의 시간이 누락"됐다며 "목격자들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서울역 관계자 및 공익요원, 철도공안의 조직적인 사실은폐 및 의도적인 왜곡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응급상태에 처한 피해자를 일단 역 밖으로 옮겨 '귀찮은 일'을 피하려다가 상황이 악화되자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피해자를 다시 역 안으로 옮겼고, 이 과정에서 오랜 시간 피해자를 방치한 사실이 드러날까 봐 발견장소와 시간을 조작했을 수 있다는 것.

연대모임은 "혼자 거동하기 힘든 피해자에 대해 응급조치를 취하거나 보건의료기관 등에 긴급구조를 요청하거나 경찰관서에 보호하는 등 적당한 조치를 취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은 없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민종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도 "철도공안은 사법경찰관에 준하는 직무를 가지고 있는데도 피해자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고려 없이 사실상 객사하도록 방치했다"며 "관련 책임자에 대해서는 과실치사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고, 국가와 철도공사에 대해서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실사 문헌준 대표가 목격자 진술과 경찰조사 결과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 노실사 문헌준 대표가 목격자 진술과 경찰조사 결과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또 연대모임은 공익요원들이 피해자를 손수레로 나른 것에 대해 "(부검결과 사인이 폐결핵이었던) 피해자의 건강상태로 봤을 때 호흡이 더욱 압박되는 자세로 옮겨졌을 것이 확실"하다며 "의료적 조치를 할 수 있는 의료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공익요원과 철도공안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통상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연대모임은 "서울역과 같은 공공역사는 다중이용시설이기 때문에 노숙생활자 뿐만이 아니라, 이용객 전부에게 있어 의료적 응급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여지가 있"다며 노숙인에 대한 응급의료 지원체계와 객사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실제로 이날 연대모임이 발표한 '거리생활자 인권 및 생활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숙인 응답자 254명 중 거리생활에서 응급의료 상황이 발생한 경우가 56.5%에 이르렀으며 발생장소는 공공역사(40.3%), 공원(23.1%) 등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노숙인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근본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 2월 1일 결성된 연대모임은 지난 한달 동안 사건 목격자 탐문조사와 거리생활 실태에 대한 2차례의 설문조사 등을 진행해왔다. 이후 연대모임은 쉼터 입소 경로 및 쉼터 생활 이후 노숙인의 이동경로에 대한 추적, 심층면접 등을 진행할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