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듯이 일본의 한반도 점령 명분인 '근대화'는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땅과 자원을 빼앗아 국익을 챙겼으니 좋은 일이었을 지는 몰라도 조선인들의 입장에서는 두 번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참혹한 역사다. 그런 역사 앞에 근대화는 단 1%의 명분도 갖지 못한다.
"정부로서는 이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이러한 여론과 함께 무엇이 우리의 국익에 가장 바람직한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부로서는 국제사회의 동향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그리고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 등 제반 요소를 감안하여 미국의 노력을 지지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라크 전쟁 발발에 즈음한 대통령 담화」, 노무현)
한국 사회가 일본 사회의 부당한 행동에 발끈하면서도 이라크 침략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찬성표를 던지는 근거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자. 민주주의니 재건이니 하는 것은 어차피 다 말장난이고 한마디로 '이익'이다. 그것이 미래에 현실로 벌어지든 아니든 핵심은 이익이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것도 근대화니 보호니 해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익이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닮은 점이 많다. '한·일 월드컵'만 공동으로 치른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함께 하고 있다. 일본이니 한국이니 하면서 뭔가 엄청 다른 것 같이 하지만 이익이라는 한 몸에서 나온 두 얼굴일 뿐이다. 내가 이익을 위해 침략하는 것은 개발과 근대화로 정당화되지만 남이 내 이익을 위해 침략하는 것은 식민 지배요, 치욕스런 과거가 되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와 국립 묘지
"한국군은 우리를 마을의 공터로 끌어갔어. 그리고 한군데로 모아놓았지. 난 응옥이 강간당하는 걸 봤어. 굉장히 많은 한국군인들이 저쪽에서 응옥을 강간했지. 아마 이때쯤이었을 거야" (『전쟁과 여성』, 김현아, 여름언덕, 63쪽)
"베트남 문화통신부의 통계에 의하면 약 5천명의 민간인들이 한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현지 지역 주민들의 집계는 이보다 훨씬 많은 9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최근 참전군인의 증언을 보면 전투와 무관한 어린이, 부녀자, 노약자들만 남은 마을을 불태우고 총을 난사하는 등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는 현지 주민들의 증언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 ("[상설전시관]전쟁-". 평화박물관, peacemuseum.or.kr)
일본 사회가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른다고 비난하는 한국 사회는 베트남 침략에 대해서 무엇을 반성했는가? 한국 사회는 베트남에서의 침략과 학살에 대해 무슨 진실을 밝혔는가? 그 전쟁을 이끌었던 전쟁 범죄자들이 아직도 국가 권력의 상당부분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 죄 없는 베트남인들을 학살하고 강간하고 그들의 땅과 집을 마구잡이로 부수고서도 아직도 '경제 개발'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한국 사회는 자신의 모습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함께 놓여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가 방문한다고 해서 난리지만, 억울하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과 함께 박정희와 같은 한국의 전범들이 묻혀 있는 국립묘지를 정치꾼들이 틈만 나면 찾아가서 분화·헌향하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치꾼들이 참배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 사회는 무엇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신사인가, 아니면 인류의 존엄성을 파괴한 전쟁 범죄인가?
인류 보편의 문제, 침략과 전쟁
일본을 '전쟁범죄국'이라고 부르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다면 한국을 '전쟁범죄국'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일본 사회가 과거 식민 지배의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듯이, 한국 사회도 베트남 침략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며, 이라크에서 군대를 철수해야 한다.
인류 사회는 침략 전쟁으로 끊임없이 고통받아 왔고 지금도 그 고통은 멈추지 않고 있다. 전쟁과 침략은 한국-일본, 미국-이라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지금 겪지 않는다고 해서 미래에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해 한국 사회가 우려하는 것도 '지금 나'는 아니지만 '미래의 내'가 겪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세계 어느 곳에서 일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침략해서 죽이고 고문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침략과 전쟁은 전염병과 같아서 지금 바로 치료하고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의 삶도 파괴하게 될 것이다. 다만 내가 지금 나서서 막는다면 미래의 내가 겪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일, 남의 일 따로 없는 것, 그것이 침략과 전쟁이다.
덧붙임
미니 님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