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장애인들을 비장애인과 격리 수용하며 관리·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텁텁한 풍경이 지배적인 시공간 속으로, 어우러짐의 풍성함을 실은 시가라키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도자기를 생산하는 가족 단위의 소규모 가내수공업이 지역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일본 시가라키. 이 지역에는 정신지체장애인들에 대한 직업훈련과 취업 대책 마련 등을 고심하면서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의 융화를 꾀하는 데에 산파 역할을 해온 '시가라키 청년의 집'이 존재한다. 이들 노고의 열매로 시가라키 지역에는 1990년 기준으로 106명의 정신지체장애인 노동자들이 살아간다.
흙을 반죽하여 그릇의 모양새를 만들면 색채를 더해 도자기의 형체를 완성한다. <시가라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가라키 지역에서 적어도 수년간 상주하며 비장애인들과 친밀한 교감을 나누어 온 정신지체장애인들의 노동을 찬찬히 관찰하는데, 이를 도자기 공예가 유발하는 자연친화적 이미지와 동화시킨다. 나레이션은 간결한 정보를 전달하고, 카메라는 상황에 깊숙히 개입하거나 가까이 인물에 다가가지 않지만, 작품은 여느 농촌과 다르지 않은 '초록의 공명', 생기와 웃음을 잃지 않은 훈훈한 정경을 전한다.
감독은 무엇보다도 정신지체장애인들이 노동하는 일상을 꾸려가며 비장애인인 이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에 주력한다. 처음 몇 년간은 정신지체장애인들과 같이 일하면서 꽤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하는 '사장'들도 있지만, 이들을 각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애정이 녹아들었음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또한 감독은 시가라키에서 정신지체장애인들이 더 이상 특별한 이방인이 아님을 인지시켜주는 몇몇 장면들을 등장시키며, "도시의 풍경에 어울리는" 이들의 존재의의를 새긴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가라키의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처해 있는 환경을 입체적으로 제시하거나 그들의 인권 전반을 아우르지는 못한다. 시가라키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카메라는 어지러운 세상사와 거리를 두고 싶은 듯, 이 지역의 푸근한 공동체적 성격을 부각시키면서 우리 주변에는 쉽사리 찾을 수 없는 서정적인 '낙원'의 상을 그린다.
덧붙임
이 작품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배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02-741-5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