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사람'은 사람의 목소리로 와글대는 열린 광장이 되려 한다. 독자들은 '사람'을 통해서 힘 있는 자에 의해 인권이 짓밟힌 사람들의 분노를 느끼고, 참 인권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늘 속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비통한 삶을 만나고, 그들과 더불어 우리사회의 완고한 반인권의 벽을 하나하나 허물어 가는 희열을 경험할 것이라 믿는다. 이를 위해 '사람'은 항상 독자의 가슴속에 일어나는 작은 감동을 그 어떤 인권이론보다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다산인권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전문잡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이하 <사람>)이 27일 창간되었다. 위의 인용문은 그 발간사의 일부분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저러한 잡지들은 많아도 인권전문 잡지는 없다. 그 동안 인권 관련한 잡지로는 1990년대 KNCC 인권위원회가 만들어내다 중단했던 월간 <인권> 있었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이후에 발행되는 월간 <인권>이 있을 뿐이다. 국제민주연대에서 인권월간지로 선보였던 <사람이 사람에게>는 재정적인 문제 등으로 발행을 중단했다. 인권단체들이 자체적으로 펴내는 기관지 외에는 국가인권위의 월간 <인권>이 있을 뿐이다.
인권전문지 없는 현실
이번에 창간하는 <사람>은 "인권운동의 매체가 없다"는 현실과 "급변하는 사회변화와 정세를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는 양 측면에서 창간이 준비되었다. 인권운동의 의미와 필요성을 알리고, 단체들 간의 소통과 문제의식을 공유할 필요성이 있고, 지금까지 인권운동 내부에서만 머물러 있던 인권의식과 운동적 성과들을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사람>은 자신의 운동적 사명으로 삼는다는 게 다산인권재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인권의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해내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전쟁이나 신자유주의 문제를 인권의 잣대로 재단하고, 국가폭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생존권 문제의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왜 인권적 시각인가를 설명해내야 하는 것이다. 있어도 없는 존재인 소수자들의 인권보장이 갖는 문제로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인권'과 '이권'의 경계지점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보수주의 시각이 만연한 세상에서 진보적 시각으로 인권을 재구성하겠다는 포부까지 밝히고 있다.
어쩌면 이런 내용의 잡지는 상업적으로는 이미 실패를 예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세상의 무수한 인권침해를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낸다고 해도 감각적인 언론보도에 젖어 있는 세상 사람들의 눈길 한번이라도 제대로 받아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은 욕심내지 않고 소박하게 출발한다. <사람> 편집진은 이 잡지의 방향성을 확정하기보다는 잡지를 발간하면서 잡지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한다. 그것도 편집진만의 논의가 아니라 다양한 독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만들어가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변화하는 정체성을 찾아 가겠다고 한다.
사회 변화를 인권의 시각으로
그러다 보니 창간호에 실린 내용도 이 잡지에서 처음 제기하는 문제들이 아니다. 표지 이야기로 등장하는 '청소년 인권운동'은 올 상반기 내내 언론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미 얘기할 만큼 다 얘기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굳이 운동이라는 것을 갖다 붙이고, 청소년 인권운동을 담당하는 활동가들의 좌담도 소개하는 것은 그 운동에 인권운동이라는 규정성을 부여하고 싶은 편집진의 의도가 짙게 배인 까닭일 것이다. 오산 수청동의 철거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한 이슈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사람>은 주거권이라는 개념으로 경찰과 주공의 강제철거를 비판한다. 평택미군기지 반대 투쟁은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그곳 주민의 인터뷰로 대체해서 단지 땅 보상 문제로만 좁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곳 주민들의 삶, 인생의 문제로, 그래서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제기한다. 장애인들이 자신에게 씌어진 굴레를 벗고 인간으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들 스스로의 목소리로 내게 하고, 퀴어 다큐를 제작한 영화감독의 시각도 소개하는 등으로 일단 창간호에서 다루는 인권목록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편집진들은 이번에 선보인 꼭지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편집진 일방의 목소리가 아니라 실제 그 현장에서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세상에 알려내고, 이런 문제를 고민하라고 던지는 것이고, 나아가 세상을 두드려 깨우고자 하는 것, 그것이 <사람>의 편집 방향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인권 교육적 측면에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연재물인 '인권의 역사'도 그렇고,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일상에서의 인권문제를 짚어내고, 미디어에 실린 기사들을 추적하여 분석해내는 일도 인권의 시각으로 세상 바라보기의 또 한 구성인 것이다.
<사람>을 만드는 사람들
그럼 누가 <사람>을 만드는가. 다산인권재단의 김칠준 대표이사는 수원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일하면서 "열악한 인권단체들의 활동을 돕는 일이 무엇인가?"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 고민이 인권단체의 열악한 재정을 지원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재정이 없음으로 인권단체간의 활동이 공유되고 소통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월간지를 만드는 일로 구체화되었다는 것. 그래서 재단의 이사로는 교수와 변호사만이 아니라 인권현장을 뛰는 활동가들이 당연히 참여하고, <사람> 편집위원회와 기획위원회에도 현장 활동가들이 함께 한다. 아니 이들의 관점과 감수성을 그대로 잡지 발행과 재단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구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다양한 분야의 인권활동가들을 필진으로 결합시킬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잡지 발행과 재단 운영에 참여시키겠다는 구상을 갖는다. 다소 이상적인 이런 운동조직과 잡지의 생명력은 우선적으로 인권운동단체들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있을 것 같다. 인권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감수성과 변화의 전망이 고스란히 담길 수 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인권운동의 매체로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바로서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임
박래군 님은 <사람> 편집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