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자유권위원회(인권이사회, 아래 위원회)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대의원을 처벌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지난 7월 20일 위원회는 한총련을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로 규정한 대법원 판결이 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유엔자유권규약(아래 규약) 제22조 1항, 사상·양심의 자유를 규정한 제18조 1항,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제19조에 위배된다고 결정하고 이를 한국정부에 통보했다.
이번 결정은 2001년 9기 한총련 대의원으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유죄확정된 이정은 씨(당시 건국대 부총학생회장)가, 같은해 8월 한총련 이적규정이 △사상·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위원회에 개인청원한데 따라 이뤄졌다.
위원회는 "민주사회란 정부나 국민 다수가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상이라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집단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을 가리킨다"며 "한국정부와 대법원은 청원자가 한총련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발생한다고 알려진 위협의 명확한 실체에 대해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대법원이 1997년 국가와 민주질서의 존립과 안전에 위협을 '가할 지도 모르는' 단체를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 1항에 근거해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했음을 상기하면서, "특히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한국정부와 대법원은 청원자의 한총련 가입을 처벌한 것이 남한의 국가안보와 민주질서에 대한 실질적 위협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인지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한국정부에게 △적절한 배상을 포함한 효과적인 구제책 제공 △규약에 부합하도록 국가보안법 제7조 개정 △유사침해의 재발 방지 △위원회 견해의 관보 게재 등을 요구했다. 또 위원회 견해를 실행하기 위해 실시된 후속조치를 90일 이내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인권과 관계자는 "위원회 견해를 관보에 게재할 예정이고 기한 안에 조치내용을 답변할 것"이라면서도 "(관보 게재 외) 나머지 요구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개인청원의 대리인인 김승교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6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아래 국민연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국제인권규정에 따르자면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처벌해온 것은 잘못이고 부당하다는 것"이라며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적용 철회 △남아 있는 수배자들에 대한 수배해제 조치 △그동안 처벌받은 학생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등을 요구했다.
국민연대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법무부는 이번 유엔인권이사회의 공식견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권과 평화통일의 시대에 걸맞게 13기 한총련을 이적단체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써 청년학생들에게 강요되어온 9년간의 반인권적 조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회에 대해 "대한민국의 반인권성이 전 세계에 폭로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국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의지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60년 국가보안법폐지투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구체적인 국회행보를 가속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한총련에 대한 이적규정의 기원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기 한총련 출범식 과정에서 발생한 '이석 씨 치사사건'을 빌미로 같은해 6월 10일 대검공안부(주선회 검사장)는 "제5기 한총련 산하 대의원대회를 비롯한 중앙조직 전체를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로 규정, 관련자들을 전원 형사처벌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법원 또한 검찰의 기소내용에 대해 엄격한 법리 검토도 없이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판결했다. 98년 7월 대법원이 한총련 5기 의장이었던 강위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북한이 대한민국을 와해시키기 위해 선전, 선동 활동의 일환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남적화통일 노선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는 이유로 5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이후, '5기가 이적단체이니 6기도 당연히 이적단체'라는 식의 판결이 천편일률적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99년 국회 법사위 국감자료에 따르면 한총련 관련 사법처리 대상자 가운데 검거자 수는 △97년 388명 중 366명 △98년 301명 중 269명 △99년(상반기) 291명 중 161명에 이르렀다. 민가협 통계에 따르면 한총련 대의원 가운데 구속자 수는 △98년 170명 △99년 157명 △2000년 71명 △2001년 72명 △2002년 90명 등 끊이지 않았다. 또 이적규정에 근거한 일괄수배조치로 한총련 수배자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위원회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자유권규약 위반'을 결정한 것은 △구 노동쟁의조정법(제3자개입금지)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손종규(당시 금호타이어노조 위원장, 1995년) △국가보안법(찬양·고무)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김근태(당시 전민련 집행위원장, 1998년) △국가보안법(이적단체 가입)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박태훈(당시 재미한국청년연합 회원, 1998년) △전향거부로 13년간 독방에 구금당했고 준법서약제를 거부한 강용주(2003년) △'모내기' 사건으로 그림을 압수 당한 신학철(2004년)에 이어 이번이 6번째다.
개인청원 제도는 규약 상의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가 규약이행 감시기구인 위원회에 직접 통보해 권리 구제를 요청하고 규약 당사국에 책임을 묻는 제도다. 하지만 위원회가 규약위반임을 확인해도 당사국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실제로 손종규 씨는 위원회 결정을 근거로 국내 법원에 손배소송을 냈지만 99년 대법원은 "(구제조치는) 당사국 상호간의 국제법상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등 구제조치는…국내법에 근거하여 청구할 수 있는 것일 뿐…별도로 개인이…구제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가 창설된 것은 아니라고 해석된다"며 무시했다. 신학철 씨의 그림은 위원회 결정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검 공안자료실에 몰수된 채 보관되어 있다. 이처럼 위원회 결정이 무시당하는 현실에 대해 2003년 12월 국가인권위는 개인청원 제도의 결정을 이행하는 특별법안을 마련하도록 국무총리·외교통상부·법무부에 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