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 영화를 만나다] <별별 이야기>를 보고 드는 별의별 생각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제작하고 있는 문화컨텐츠의 세 번째 작품인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가 지난주 공개됐다. 인권위가 말하는 문화컨텐츠 제작 목적은 국민의 인권감수성 함양과 인권교육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10억 넘는 예산이 소요됐고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거대 프로젝트는 주제선정, 제작, 배급 등 총체적인 측면에서 재평가 받아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별별 이야기>의 포스터

▲ <별별 이야기>의 포스터



주제부터 살펴보자. 인권위에서 제작한 3편의 옴니버스 모두 '차별'을 주제로 삼고 있다. <별별 이야기> 시사회장에서 제작의도를 밝힌 인권위 남규선 공보과장은 차별에 대해서 거창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는 소박한 접근을 시도했다고 한다. 세 번째 작품임에도 '차별'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보자는 기획의도에는 변함이 없다. 첫 작품인 <여섯개의 시선>에서 다루어진 차별 목록은 외모, 이주노동자, 장애, 아동인권이다. 아직 개봉관을 찾지 못해 창고에 먼지 쌓여 있는 두 번째 작품 <다섯 개의 시선>은 다운증후군 소녀(장애인), 중국동포 이주노동자, 북이탈 주민이라는 소수자, 남성들의 차별의식과 고문수사관의 이야기로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는 5편이라고 한다.

<여섯 개의 시선>의 포스터

▲ <여섯 개의 시선>의 포스터



한 영화 언론에 따르면 지난 4월 전주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자리에서 제작을 총지휘한 이현승 감독은 "몇 편은 인권영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인권'을 단순히 교과서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감독들이 느끼는 지점으로 설명하는 영화"라고 말하며 "인권도 중요하지만 영화적인 것에 강점"을 두었다는 말을 관객과의 대화에서 서슴지 않았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영화인지 아닌지는 차후에 논하기로 하자. 그러나 제작 총지휘자가 대중 앞에서 털어 놓은 제작의도의 한 단면은 인권위가 기획하고 있는 '국민의 인권감수성 함양'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의 목적이 실종되는 순간이다. '인권'을 말하는 영화의 완성도가 인권의식과 겉돌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관객들에게 인권의 감수성을 불어 넣어주는 완성도 있는 인권영화는 영화적으로도 결코 손색 없음을 감히 장담한다.

<다섯 개의 시선> 가운데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의 한장면

▲ <다섯 개의 시선> 가운데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의 한장면



이번에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별별 이야기>도 장애, 외모, 인종, 이주노동자, 청소년 인권 등 '어렵지 않은' 수준에서 차별의 문제를 이야기해보겠다는 인권위의 기획의도가 가감 없이 담겨져 있다. 그 가운데 청소년 인권의 현주소를 <동물 농장>식의 섬뜩한 풍자로 담아낸 <인간이 되어라>와, 프리다 칼로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못생긴 외모가 대물림되는 유전적 과정을 사회적 차별의 의미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육다골대녀>는 관객의 인권 감수성을 일깨울 만한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기획으로 이런 동어반복을 계속하는 것인지 물어야 할 때이다. 인권위법에 명시되어 있는 18개 차별영역을 한번 다 만들어보겠다는 것인지? 국민의 차별 의식 중에서 가장 심각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것인지?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입장 바꿔 생각해봐'의 지루한 반복에 대해 인권위는 답해야 한다. 인권위가 영상문화컨텐츠에 의욕을 보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불분명한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컨텐츠 생산에만 골몰한다면 예산낭비와 시간낭비라는 비판이 우박처럼 쏟아질 것이다.

상업성이 없어서, 이념적으로 결박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어지기 힘든 금기의 소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인권위가 기왕에 이런 사업에 손댔고 그 목적이 국민의 인권감수성을 함양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런 영역을 전략적으로 기획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사상·양심의 억압, 동성애, 감옥, 에이즈 환자 차별 등 인권위가 싸워야 할 인권의 적들은 훌륭한 소재가 될 것이다. 누구나 제작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영화 제작이 아닌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억압당해왔던 소재들을 발굴하고 거기에 창작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 지금 인권위가 해야 할 기획이다.

한편 제작을 완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인권위가 만드는 영화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권'영화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과연 인권위가 만든 영화들에 모두 '인권영화'라는 세례명이 가능한지 돌아보아야 한다. <여섯 개의 시선>에서 '성범죄자의 소외와 고립' 그리고 '잘 생긴 남자와 잘 생긴 여자가 나오는 으스스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2편은 '인권'이라는 말조차 생뚱맞은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런 작품이 '인권'을 '교육'하는 곳에서 쓰여질 때의 아찔함이다. 제도교육이든 그렇지 않은 공간이든 '인권교육 영상물'에 대한 갈증은 수년째 계속되어 오고 있고, 마땅한 '인권영화'를 공급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일상에 가깝다. 인권위의 영상문화켄텐츠는 당연히 이런 교육컨텐츠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만들어진 영화들이 과연 교육적으로 적합한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권을 교육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장에서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들을 교육용으로 재활용할 계획이 있다면 당연히 엄격하게 선별해야 할 것이다.

또다른 기획부재는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가'이다. 즉 배급에 대한 전략이 없다는 점이다. 인권위는 주로 극장과 비디오, 디브이디(DVD), 방송 등 주류 상업 영화의 배급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인권영화와 같은 비주류영화를 상업공간에서 상영하면 보다 다양하고 불특정한 대중을 만난다는 이점은 있다. 그러나 상업 공간에서의 상영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 상업공간은 철저히 상업적 안배 속에서 개봉이 결정되기 때문에 비상업적인 영화는 언제 스크린에서 쫓겨날지 알 수 없다. 이미 <여섯 개의 시선>을 통해서 인권위는 그 철저한 정글의 법칙을 깨달았을 것이다. 또한 개봉도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는다. <다섯개의 시선>이 지난 2월초에 제작이 완료되었는데도, 지금까지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4월 전주영화제가 전부인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정글의 법칙이 철저히 작용하는 배급라인 속에서 인권위는 제작만 할 뿐 '배급'은 마케팅 회사의 소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진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현재 '유료 상영' 방식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심사숙고 하기를 권한다. 국민의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해 인권위라는 국가기관이 만든 영화가 '돈을 내고 극장 관람을 할 수 있는' 특정한 사람들을 1차적 주관객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인권위가 만드는 문화컨텐츠를 국민이 대가를 지불하고 보아야 하는 지금의 구조는 굳이 문화공공성을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인권위가 '모든 국민의 인권'을 위해 존재한다는 공익적 목적을 상기해 볼 때 이율배반적이다. 게다가 배급에 따른 이윤은 마케팅회사와 국가가 나누어 가진다. 인권위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따지고 보면 인권영화를 만들어서 흥행사업을 한 꼴이 되었다.

인권위는 <여섯 개의 시선>을 수많은 해외영화제에 선보였고, 현재 일본극장 배급을 추진중이다. 이 또한 해외에 인권위가 만든 영화를 왜 배급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인권감수성 향상'과 '인권교육'을 위해 만든 '차별 소재'의 한국 영화를 해외에 많이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인권 현주소가 부끄러우니 쉬쉬하자는 뜻이 아니다. 인권위는 이를 문화컨텐츠 사업의 성과로서 자랑하고 있는데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배급이었냐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인권위는 "마케팅 회사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업무에 또다른 여력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 '여력'은 인권위가 찾아가야 할 '국내 관객'에게 투여되어야 할 것이었고,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여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력이 되어야 한다.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이다. 이 대목에서 인권위는 독립영화, 보다 폭넓게는 미디어 운동에서 실천하고 있는 대안적 배급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이들은 상업적 배급을 이용하는 한편 또다른 대안적 배급을 위해서 수년간 고군분투해왔다.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고, 그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매체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확장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들의 실천과 성과를 인권위는 그야말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기존의 상업 극장을 대안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식에서부터 관객을 직접 찾아가는 방식 등 배급의 방식은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상업극장에서의 무료 상영, 다양한 인권적 행사 병행, 인권위 홈페이지에 '온라인상영관'을 만드는 등 '돈 받고 영화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와 함께 돈이 없어서, 극장에 접근할 수 없어서, 그런 작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수많은 문화적 '소수자'들에게 인권위가 몸소 찾아가는 실천이 '인권문화컨텐츠 제작'에 총체적으로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인권위가 가진 인력으로나 예산으로나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