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운영하는 모 병원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있는 '집중근무시간 캠페인' 표어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오가는 병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씩 표어로 눈길을 준다. 언뜻 보면, '근무시간동안 열심히 일해, 초과근무 하지 말자'라는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일 권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가뜩이나 연간 2,390시간으로 세계에서도 가장 일 많이 하는 나라로 한국이 손꼽히는 터라, 표어를 보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우선 이 표어에는 업무시간이 연장되는 것을 '노동자 탓'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마치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제품에 불량품이 나와도 모두 노동자가 잘못해서 생겨난 것인 양 책임을 지우는 것처럼. 또한 이 표어에는 근무시간에 노동자가 딴 짓을 하니까 당연하게도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으니, 근무시간동안 강도 높게 일하라는 주문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어느 누군들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이 표어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관리하고 싶은 사용자의 내밀한 욕구를 찾아낼 수 있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통제함으로써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싶은 사용자의 욕망이 '표어'로 구체화된 것이라고나 할까!
오늘날 법정노동시간으로 정해진 1일 8시간 노동은 오랫동안 노동자들이 싸워온 결실이다. 17∼18세기 원생적 노동관계에 놓여있던 노동자들은 하루 17∼18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으로 인해 남성 노동자 평균수명이 마흔 살 남짓을 넘지 못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노동 외 시간에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휴식과 교육의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한 지난 300년 투쟁의 역사는 다른 사회권을 향유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적절한 휴가의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임금에 대한 권리, 교육권, 문화권 등 사회권의 확대는 노동시간을 인간다운 삶의 조건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자본과 노동 사이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부려먹기보다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비롯해 다른 사회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표어가 작업장 곳곳에 휘날리는 날을 기대하는 건 꿈같은 얘기일까? 생존을 위한 수단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게 기능하는 노동시간 기획은 언제나 노동자의 몫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집중근무시간 캠페인' 표어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