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지난해 11월 법무부(장관 천정배)가 입법예고한 '유전자감식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아래 법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해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아래 유전자 디비)가 현실이 될 위험이 눈앞에 다가왔다.
17일 열린우리당 제1정조위원장 이은영 의원은 고위정책회의 현안보고를 통해 전날 열린 법무부와의 당정협의 결과를 공개했다. 당정은 살인·방화 등 '특정범죄'와 관련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의자와 징역이나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된 수형자로부터 유전자를 채취해 유전자 디비에 집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의원은 "시민단체에서 이론이 많았다"면서도 "본인 확인이 정확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다"며 "범인에 대한 혼동을 막기 위해 과학적인 본인 확인 방법인 유전자감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정은 △교도소에서 채취하는 수형자의 경우와 경찰이 채취하는 피의자의 경우 본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본인의 질병이나 성격 같은 유전자 정보는 분리해 본인을 확인하는 유전자 정보로 국한하며 △법무부 산하에 설치하기로 했던 '유전자감식정보관리위원회'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기로 했다.
이에 대해 김병수 참여연대 정보인권팀 실행위원은 "채취 과정에서 동의를 받는다고 하지만 경찰과 피의자의 관계에서 자발적 동의라는 건 불가능하다"며 "동의하지 않으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므로 반강제적 동의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본인확인 유전자 정보만 유전자 디비에 수록하므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 실행위원은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는 소중하지만 본인식별 정보는 국가가 수집해도 문제가 없다는 태도로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며 "본인식별 정보도 민감한 개인정보이고 국가가 강제로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위원회를 법무부에 두든 총리실에 두든 시료 채취부터 폐기까지의 과정을 외부에서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없다"며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기관이 개인의 유전정보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한편 범죄관련 유전자 디비가 한 번 구성되면 그 대상이 전국민으로 확장되기 쉽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미 지난해 5월 제정된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실종아동의 발견을 위해 '보호시설의 입소자 중 보호자가 확인되지 아니한 아동'과 '실종아동을 찾고자 하는 가족'으로부터 유전자를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진보네트워크 이은희 활동가는 "실종아동이나 범죄 관련자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쉬운 경우부터 유전자 수집·관리를 합법화해 결국 전국민을 대상으로 확장하려는 것이 정부의 진짜 의도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 2974호
- 프라이버시,일반
- 강성준
- 200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