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민불복종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일대에 서 인권활동가들이 법원의 대추분교 행정대집행을 저지했고, 국방부의 토지 강제수용을 위해 동원된 용역과 경찰의 제지를 뚫고 농지를 파헤치는 포크레인과 레미콘 위에 올라가 작업을 중지시켰다. 분명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과 법원의 결정에 근거한 국방부의 행위는 법적으로는 정당한 행위였고, 인권활동가들의 행위는 불법행위였다. 그럼에도 인권활동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며 오히려 국방부의 강제 토지수용을 비판한다. 그 주장의 근저에는 시민불복종, 저항권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의식적인 법 위반 운동
시민불복종운동은 “공적으로 선언되고 윤리적 규범적으로 근거지어진 상징적 항의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식적인 법 위반” 운동으로 정리되고 있다. “개인이든 단체로든, 공적으로, 폭력에 의하지 않고, 정치적 도덕적 근거에서 금지규범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킨 행위는(즉, 법규의 위반행위는), 그 행위가 중대한 불법에 대항하여 항의하는 행위이며, 그 항의가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고 한다.
이런 시민불복종운동의 근원에는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인권이론의 탄생과정에서 발생한 저항권론이 자리 잡고 있다. 로크는 정부는 “사회구성원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유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과 다른 척도를 가질 수 없다.”고 하면서, 정부가 계약 목적에서 어긋날 때는 국민은 복종의무로부터 벗어나 정당하게 저항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주장했다. 루소도 국가권력의 남용은 사회계약을 무효화하고 국가의 해체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면서 이럴 경우 국민들은 다시 ‘자연적 자유’를 저항권을 발동하여 획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 사상가들은 상당 부분 근대국가의 국민의 기본권을 부정하는 권력행위에 대해서는 저항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저항권과 시민불복종운동
이런 저항권의 주장은 근대 이후의 헌법들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은 제2조에서 “모든 정치적 결합의 목적은 생래적이고 불가양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있다. 그것은 자유권, 소유권, 안전권,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권이다.”고 선언했다. 독일 베를린 헌법 제23조도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이 현저하게 침해될 때에는 모든 사람은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으며, 독일 브레멘주 헌법 제19조는 “헌법에서 보장된 인권이 공권력에 의해 헌법에 반하여 침해될 때에는 저항은 모든 사람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고 규정하였다. 세계인권선언도 전문에서 저항권을 긍정하고 있고, 우리나라 헌법도 마찬가지로 전문에서 4.19 혁명의 전통을 언급하여 이를 긍정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유엔은 1998년 인권옹호자 선언을 채택하여 인권활동가만이 아니라 인권옹호 활동을 펼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천명하기까지 했다.
이런 저항권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권리로서) 인권’이 된다. 인권의 보호를 의무로 갖는 ‘법치국가’가 그 역할과는 반대로 압제의 역할을 할 때 그 국가는 ‘불법국가’가 되며, 이런 국가는 국민의 저항의 대상이 된다.
저항권은 크게 비판·반대권으로서의 저항권, 헌법수호권으로서의 저항권, 인권보호권으로서의 저항권으로 나누는데, 시민불복종은 비판·반대권으로서의 저항권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시민불복종은 헌법내적 저항권이라고 하고, ‘작은 저항권’이라고도 불린다. 시민불복종운동은 그 발전 양상에 따라 혁명적 불복종운동으로 전화될 수 있으며, 이는 저항권의 성격으로 발전된다고 볼 수 있다.
시민불복종의 요건으로는 ‘공공적 성격’, ‘비폭력적’, ‘법률을 의도적으로 위반할 것’ 등을 들 수 있지만, 비폭력의 문제는 반드시 필요한 요건은 아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시민불복종을 정리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이며 공개적으로 법률이나 명령을 위반하거나 법률에 대한 공적인 해석 또는 정의에 대한 일방적 해석에 항의하는 행위이다. 폭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하지만 사회적 통념에 의해 인정되는 한계 내에서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부정한 기업과 사회단체에 대해서도 행사될 수 있다.”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불복종운동의 사례들
시민불복종운동이 사례는 무수히 많다. 흑인 노예제도에 저항하여 납세를 거부한 미국의 소로우를 비롯하여 영국의 식민지정책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불복종운동을 선택한 간디의 사례, 흑인민권운동은 전개한 마틴 루터 킹의 운동, 반전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운동은 대표적인 경우다.
1996년 영국에서 네 명의 여성들은 당시 동티모르에서 인종말살정책을 폈던 인도네시아 정부에 판매될 영국제 호크전투기가 보관된 군사기지에 몰래 침입하여 전투기를 파손하였지만, 법원은 이들을 무죄석방하였다. 또 1999년에도 ‘행동하는 동료들’ 소속의 앤지 젤터와 동료들은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기지에 잠입하여 4시간 동안 기지 내부에 있던 대부분의 컴퓨터와 관련 장비와 자료들을 호수에 던져 수장시켜 버린 뒤 “핵 살인을 위한 연구를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렇지만 영국의 법원은 이들이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비록 불법행위였지만, 미래에 있을 더 큰 불행을 막아낸 행위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들은 많다. 1980년대 후반의 KBS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은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불복종운동이 대중들의 폭발적인 투쟁과 결합하여 종종 나타났다. 4월 혁명이나 1980년 광주민중항쟁도 그렇고, 6월 항쟁은 집단적인 혁명적 시민불복종운동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당시에는 실정법을 위반한 집단행동이고, 심지어는 폭동이라고까지 규정되었지만 역사는 이들의 투쟁을 민주화를 위한 정당한 투쟁으로 평가하고 있다.
불복종운동을 적극적으로 기획하자
최근 중증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합법과 불법의 투쟁방법을 결합하여 성과를 낸 투쟁이었다. 장애인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버스에 쇠사슬을 묶어 이동도 할 수 없는 장애인 차별 실태를 폭로했고, 이로써 장애인들을 비롯한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고, 드디어는 법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인권운동은 이런 시민불복종운동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의 사회운동은 지나치게 합법적인 영역, 합리적인 대안 제시에 치우치다 보니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이라고 모두 긍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잘못된 법은 의식적으로 위반하여 그 법률의 문제를 드러내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투쟁을 통해서 그 잘못을 바로 잡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런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인권운동은 끊임없이 인권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시민불복종운동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인권운동이 수용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운동은 반인권적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민불복종운동을 기획하여야 한다.
인권오름 > 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