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났다는 그 말을 갈급히 듣고 싶었던 사람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겠지만, 그러나 또 한편 이스라엘과 미국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휴전’이라는 말을 방패삼아 쏟아지던 국제적 비난에서 조금 비껴 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이 떨어뜨린 미사일에 의해 거의 모든 것이 다 파괴 되어 버린 곳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겐 비껴 갈 수 있는 현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집을 나서며 오늘 우산을 가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하며 내가 하늘을 볼 때,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은 미사일이 자신의 마을에 떨어지지 않을까를 살펴보기 위해 하늘을 보았겠지요.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이번 집중 공격으로 슬픔과 증오와 분노를 마음으로 한아름 배웠을 테구요.
요며칠 동안 UN은 휴전을 도출해 냈으니 내 할 일 다 했다라고 뒷짐 지고 살짝 여유부리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을까요. 생존을 위해 휴전 이외의 선택이 없는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지금 평화가 도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레바논에서 터지는 폭탄은 여전히 나의 일상은 아닌걸...
오랫동안 일상적이던 폭격이 집중화되어 ‘전쟁’이라고 명명되었던 지난 한 달여 동안 아니, 사실은 몇 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의 눈빛을 만나고 난 이후 평소엔 그 느낌을 잘도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마음 한켠이 불편해지곤 했습니다.
나는 일상적으로 이것이 힘들고, 저것이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나의 이런 상황을 감지하며 살아 갈수 있는 내 ‘몸’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타버린 얼굴 반쪽의 시체로 널부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산다는 것에 대한, 그리고 그렇게 죽어 버린 내 몸이 사진기에 찍혀 인터넷에 돌아다니지 않는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 때문에 그렇기도 하구요.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서의 상황은 이를테면 FTA처럼 나의 경제와 생활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며, 그곳 중동은 내가 사는 곳에서 평택만큼 가깝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눈 돌리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먼 현실’이라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누가 설정해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벽안에서만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수십 년간 거의 매일 일상적으로 이스라엘의 총격과 반인권적 통제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레바논에서는 올여름 한 달 사이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폭탄 세례를 퍼붓는 침략을 가능하게 했던 이스라엘의 정치력과 물리력이 가능했던 '구조' 들을 살펴보고, 중동지역의 정세 변화를 '쌈박하게' 읽어 내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거기까지 라면, 도대체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와 그들의 삶을 어떤 끈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 되어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
그 연결된 끈들을 발견해 내지 않는다면 혹은 그 끈들을 만들어 내고 이어 가지 않는다면,
내 코엔 화약 냄새 한줄기 나지 않고, 내 옷엔 핏방울 하나 튀지 않으니 네모난 텔레비전 브라운관 안의 이야기로 머물기 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머물지 않으려고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며 그들을 더욱 가깝게 느껴보려 하지만 나의 빈곤한 상상력은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또한 거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의 집회장 한 귀퉁이에서 조금은 ‘뻘쭘’하게 ‘찌라시’를 들고서 “저기요, 팔레스타인 이라는 곳에서 이런 비참한 현실이 수십 년간 진행 중이거든요” 라고 말하거나 일인시위에 참여해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을 규탄한다는 선전판을 들고 거리에 서 있기도 하지만. 내가 몇 번 그런 활동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늘에 앉아서 이스라엘과 미국에 적당한 야유를 퍼부으며 침략과 희생을 관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전의 태도를 조금 넘어섰다고 해도 내가 여기서 하고 있는 활동들이 그곳까지 영향을 미치기엔 너무나 미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또 자기만족을 넘어서지 못하는 건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슬그머니 힘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연대란 서로의 삶에 개입되는 것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나의 작은 활동들은 ‘그들’의 끔찍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밖에서 지원’하는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새삼스레 발견하고 있습니다.
내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과 연대하기 위해 참여하는 거리 선전전이나 서명 등의 활동은 그곳 현실의 끔찍함이 덜할 수 있도록 이곳에서 노력을 보태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고 있더군요.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라면서 오랫동안 듬뿍 주입받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나의 ‘몸’을 깨워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위해 연대한다면 관전하는 태도에서 몇 발짝이나 더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연대하는 과정에서 자꾸 나에게 그 연대가 말을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내 삶에 개입될 수 밖에요. 저는 이제 관전석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조금씩 잃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잃어야겠지요.
‘그들도 다 나입니다’라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뭉쳐 버리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개별의 그들이며 나는 나입니다. 한 팔레스타인 친구는 자신들의 현실을 말해 달라며 이스라엘에 의해 죽은 아이들 사진을 잔뜩 이메일로 보내면서 가능한 많이 배포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의 사진을 통해 반전을 호소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잘 판단이 안서서 겨우 한군데 게시판에 그 사진을 첨부 파일로 올려두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호소하는 연대의 방법이고, 그 방법이 옳은지 갈등 하는 것은 내 고민의 지점입니다.
글이 너무 추상적으로 흘렀나요. 아마 제 고민이 아직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못해서 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연대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나를 포함한 것 그리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말걸기와 갈등의 과정 속에서 서로의 삶에 개입 되는 것이라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나 봅니다. 지금 저는 나와 레바논-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분간 계속 나의 삶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끈이 어디 즈음에서 어떻게 닿아 있는지, 더 구체적 끈을 찾기 위해 조금 더 헤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한 달 동안 뉴스에서 파괴된 레바논 장면들을 보면서, 인터넷에서 이곳저곳으로 이스라엘의 만행과 파괴된 도시의 참상을 퍼 나르면서 혹은 일인시위에 참여하거나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댓글을 남기면서 레바논-팔레스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기 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관전석에서 이미 일찌감치 밀려나신 고수님들 계시면 저에게도 좀 귀띔해 주세요.
덧붙임
반다 님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반다 님이 지난 주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전체 메일에 적었던 고민과 생각들에 살을 보태서 쓴 글입니다. 덧붙여, 본 글의 내용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전체를 대표하는 글은 아님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