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햇살 햇살이었다/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너는 불꽃 불꽃이었다/갈수록 어두운 세월/스러지는 불길에 새 불 부르고/언덕에 온 고을에 불을 질렀다
80년대 술 취해서 목청껏 부르던 노래였죠? 신경림 시인의 시에 누군가 곡을 붙인 ‘민주’란 제목의 이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는데, 암울한 세태가 그대로 묻어나 있는 것 같아 요즘에 다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정말 스러지는 불길을 다시 불러내 민주의 불길을 온 고을에 질러 버리고 싶은 심경입니다.
지난 11월 22일과 29일, 12월 6일, 이렇게 세 차례의 민중총궐기가 전국에서 진행된 것은 다 아실 겁니다. 1차 민중 총궐기 때는 지방의 몇 개 관청이 분노한 민심에 의해서 불이 났을 정도로 대단했죠. 그렇지만 이어진 2, 3차는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대부분 평화적으로 잘 마무리되었어요. 평화적, 비폭력적 방식의 총궐기도 중요하지만 총궐기에 걸맞게 완강하고도 거센 투쟁이 전개되지 못했다는 게 아쉬워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경찰의 집회 원천봉쇄를 뚫어낸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지만요.
궐기가 궐기다워야 궐기지~~
이번 총궐기에서 찾을 수 있는 운동의 가능성은 뭘까요? 경찰은 전국 1천 2백여 곳에서 불심검문을 진행해 집회 참가를 막았고, 심지어 어느 지역 농민회 회장을 가택연금시키기도 했습니다. 모든 신고 집회에 대해 금지통고를 한 것은 물론이고요. 서울 시청광장을 전경차로 뺑 둘러놓았던 사진들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할 정도였으니까요. 이거야 말로 폭력적인 대응 아닙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서울 시내를 뛰어다니면서 총궐기를 성사시켰습니다. 경찰의 경비를 따돌리고 갑자기 도로를 행진해 명동 앞거리에서 집회를 이뤄냈습니다. 정부의 폭력적인 집회·시위의 자유 억압에 대해 우리는 불복종운동을 전개한 것입니다. 이른바 소수의 선도투가 아니라 총궐기에 나선 모든 대오가 함께 진행했다는 게 중요할 거예요. 앞으로도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폭압적인 집시법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역동적인 시위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신고하고, 경찰이 내주는 선에서 ‘얌전히’ 끝내는 합법주의를 벗어나서 합법과 비합법을 넘나들면서 공간을 창출해낸 것입니다. 공권력의 합법적인 ‘불법’에 맞서 우리의 ‘합법’적인 불법으로 저항하는 것이 실정법의 한계를 넘어 헌법의 가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내용적으로는 문제예요. 민중진영이 이번 총궐기로 정국의 반전을 만들어냈어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힘이 미치지 못했지요. 그리고 한미 FTA 협상을 저지하려는 이유도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어요. 단순한 무역협상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파탄내는 구조적인 괴물이라는 사실에 말입니다. 한미 FTA를 강요하는 미국에 대한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에 대해서는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고요. 광우병도 부각을 시켰지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항으로 끌어내기는 어림없더라구요. 더욱이 평택 미군기지 문제와 같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과 정부의 미군기지 정책, 그리고 최근의 한반도 평화의 문제와 연결시켜서 투쟁하지 못했습니다. 한미 FTA 저지 투쟁에 나선 운동 지도부의 불철저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총궐기가 가진 총체적인 과제들은 제대로 시민들에게 제시되지 못한 채 한미 FTA 저지만이 주장되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이름값 못한 총궐기였다는 것입니다.
청개구리족이 지배하는 정치권
총궐기에 대한 정부의 화답은 때려잡기입니다. 200명 정도에게 소환장, 50명은 체포영장을 받아놓고 있고, 기물파손에 대해서는 4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손해배상금도 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총궐기 도중에 정부는 비정규직 양산법을 급기야 통과시켰습니다. 민주노총이 위력없는 총파업으로 일관하더니 지금은 국회 앞에서 위원장이 단식농성도 하면서 마지막 국회의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죠. 비정규직법이 내년 7월부터 적용되면 2009년 6월쯤에는 대혼란이 일어날 거예요. 비정규직으로 2년 넘게 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니까 기업들이 무더기로 자르겠죠. 어떤 자본가가 정규직을 늘리겠다고 계약기간 2년 넘겨가며 비정규직들을 고용하겠어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노사관계로드맵 법들을 국회 환노위에서 통과시켰고, 곧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하죠. 직권상정해서라도 통과시키겠다는 기세고, 사법개혁법률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사학법이라도 양보할 것처럼 열우당의 의지아닌 의지가 대단합디다. 지금 국회는 한나라당의 허락 없이는 한 발도 나갈 수 없어요. 한나라당이 막으면 다 막을 수 있고, 한나라당이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상황, 벌써 한나라당이 집권한 거죠, 쩝.
노무현 정부도 그렇고 국회도 그렇고 하지 말라는 것은 죽어라고 하고, 해야 할 것은 하지 않는 청개구리족들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어요.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의 충복이니,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선량들이 금배지만 달면 계급적 본질이 금방 드러나더라고요. 그래서 이라크 파병 연장안도 통과할 거고, 아프가니스탄 파병 연장안도, 레바논 파병안도 모두 통과시킬 것 같아요. 물론 평택 미군기지 재협상 같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는 손도 안대지요. 국민을 봉으로 보고 미국과 이해관계를 밀착시키는 저런 썩은 정치권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참 한숨만 나옵니다. 그런데 아뿔싸! 복지예산 대폭 삭감이라는 초강수를 한나라당이 들고 나왔다 이겁니다. 사회복지 예산은 더 증액하고, 국방비를 삭감해야 하는데 완전 거꾸로죠.
한나라당은 집권당, 열우당이 야당?
벌써부터 달구어지고 있는 대선 경쟁에서 이명박이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하네요. 무려 40-50%의 지지율로 박근혜도 손학규도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고, 열우당의 김근태니 정동영이니 하는 사람들은 겨우 1-2% 지지율밖에 확보하지 못하고요. 그럼 이명박이 차기 대통령이 되남요? 아직은 모른다고 칩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여권의 정계개편도 어지럽네요. 잠룡을 물색한다는데 거론되는 이들이 박원순, 강금실, 천정배 등이네요. 이미 열우당은 해체된 거나 진배없는 상황에서 겨우 숨만 할딱거리고 있어요. 노무현은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킨다면서 당의 사수를 지령하고 있지요. 부동산 잡겠다는 약속이나 지킬 일이지 글쎄,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 손수 편지를 써서는 궐기하라고 지령을 내더라는 말이죠. 암튼 서둘러서 정기국회를 끝내는 열우당이나 한나라당이 다음 임시국회까지 어떻게 지지고 볶는지를 두고 봅시다. 우리의 정치적 권리를 대변하는 정당들은 결코 아니지만, 정치지형에는 막대한 영향을 행사할 테니까요.
FTA 깨져라, 깨져
우울한 세밑이지만 희망이 어디에서 어른거리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한미 FTA 협상은 몇몇 분야에서 심각한 이견 충돌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지요. 정부와 열우당 일각에서 한미 FTA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도 있어요. 반면 미국은 오만하기 이를 데 없죠.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팔아먹으면서 그 뼛조각을 한국에서 넣었다나 이런 소리도 픽픽 해대고 말이에요. 소고기 수입하지 않으면 FTA 전부를 깨겠다고 하고, 공공부문도 민영화, 시장화하라고 압박하는 철면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아무튼 이대로 협상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이 때 정부가 협상 포기라도 선언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게 로또가 아니라 이게 바로 로똔데, 로또 당첨 확률이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우니 기대는 말아야죠.
참, 미국 베이커위원회라고 하는 곳에서 이라크 보고서가 나왔어요. 공화, 민주 양당에서 추천된 10명의 위원들이 9개월 가량 작업한 결과라고 하는데, 여기서 이라크 전쟁의 사실상 실패와 이라크에서 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같은 것을 권고했다고 합니다. 그 보고서에 나온 얘기로는 미군이 철수하고 다자간 협정을 맺어서 이라크의 안전을 보호하자고 하더라고요. 일은 지들이 저질러 놓고, 뒷정리는 주변국에게 전가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부시는 확실히 꼴통이죠. 이런 보고서가 제출되면 이것을 계기 삼아 슬쩍 정책을 변경해도 될텐데도, 이라크에서의 궁극적 승리를 위해 밀고 간다는 겁니다.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하다가 이번에 물러나는 코피 아난이 고별사에서 이런 미국에 경고를 했더군요. “힘, 특히 군사력이 사용될 때 세계는 그것이 올바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확신할 경우에만 합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포함해 (인권운동의) 원칙에 충실할 때에만 그 지도력은 유지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지도력 운운은 좀 거슬리지만, 코피 아난은 그의 재임 기간 내내 빈곤문제와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미국이 유엔의 정신을 어기면서 벌인 이라크 전쟁을 반대해서 미국의 눈 밖에 나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 뒤를 이어 미국의 간택을 받아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반기문 후임 총장은 어떨까요? 국제사회에서 그나마 쓰러져가는 유엔을 미국에 맞서서 이 만큼이라도 지켜낸 코피 아난과는 달리 반기문이 유엔을 미국 의도대로 이끌어가면서 파탄낼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두고 볼 일이지만, 내심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거 아세요? 유엔 사무총장까지 낸 대한민국의 인권성적표는 지난 11월 초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최종견해에서 보이는 것처럼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는 거. 지금까지 가입하지 않은 조약은 무엇인지, 유보조항을 두고 있는 조약상황은 어떤지, 유엔 기구들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찬찬히 분석해서 압박해야 할 거 같네요.
대추리 들에 불을 놓고 싶다
오는 18일부터 6자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린다고 하네요. 북과 미국이 사전 협의과정을 거치면서 기싸움도 했고요. 부시란 자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말을 해서 6자회담에 청신호를 보내나 했는데, 그런 말이야 이미 9.19 선언에 담긴 내용보다 진보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더한 금융제재를 가하겠다고 협박해서 6자회담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냥 밀어붙이기만 하겠다는 것인지 헷갈리게 합디다. 암튼 6자 회담이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기를 기원해 봅시다. 그리고 평화세력들이 이번 기회를 활용하여 어떻게 하면 동북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룰 수 있는지 장기적인 전략을 고민해야겠지요.
참 큰일도 많았던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낡은 것은 보내고 새 것은 맞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보내지 말아야 할 것까지 다 보낼 수는 없겠죠. 가령 확산되고 있는 조류독감(AI, 국제엠네스티도 약자가 AI인데…)은 빨리 잡아서 확 보내 버리자고요. 하지만 올해 우리 투쟁의 과제들은 잊지 맙시다. 반드시 한미 FTA 저지하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도 막아내야 한다는 거죠. 생명의 땅, 평화의 땅이라고 말하던 대추리가 군사수몰지구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11월 마지막 일요일 대추분교에서 열린 운동회 제목이 “잊지마! 기억해!”였죠. 주민들은 “같이 살자! 계속 살자!”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그 간명한 구호가 창끝처럼 가슴팍을 후비더라고요. 12월 17일(이번 일요일)에는 송년문화제를 엽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에 함께 했던 이들이 모여서 한 해 투쟁을 마무리 짓고, 내년 투쟁을 기약하는 행사겠지요.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는 주민들과 함께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잊고 살지만 주민들은 말도 못하고, 눈길조차 주지 못하면서도 가슴 속에서는 항상 잊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지난 봄 철조망 너머 직파한 논의 벼이삭들입니다. 올해도 농사짓자며 주민들과 각지에서 온 지킴이들이 어울려 직파한 그 논에 농부의 손길 대신 군인들의 군홧발 아래 짓이겨지면서도 수풀 속에서 자라나 익어간 벼, 아마 벌써 때가 늦어서 썩어갈 텐데 거기 2백 5십만 평도 넘는 그곳에서 아마도 수십억 원 쯤 되는 벼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거 좀 어떻게 해 볼 수 없나요? 직파할 때처럼 전국 각지에서 우 허니 낫 들고 몰려가 며칠만 달라붙으면 다 베어낼 수 있을 텐데요. 정부에 말해보자고요? 말이 통해야 말이죠. 미국은 주한미군을 감축하니까 평택미군기지 축소 여지가 있다고 하는데도, 재협상은 없다면서 김지태 이장을 아직도 감옥에 가두어놓고 있는데, 에, 더럽죠. 그래서 다음 대통령은 정말 잘 뽑자고요. 이제 지명조차도 사라지고, K-6 미군기지로 지도상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대추리, 이번 송년문화제에 모두 모여 내년 투쟁의 기운을 북돋아 봅시다.
다시 앞에 부르던 민주의 노래를 불러봅니다. 대추리 들에 놓던 불을 생각하면서 민주를 부르는 불길을 내년에는 신나게 놓자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거센 꽃바람이었다/꽃바람 타고 오는 아우성이었다/아우성 속의 햇살 불꽃이었다//너는 바람 불꽃 햇살/우리들 어둔 삶에 빛 던지고/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는/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