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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척이다] ‘대표’가 ‘문제’다

진보단체 내 직위, 있기에도…없기에도…

지난 1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총회에서는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 문제는 이전에도 6개월 정도 아수나로의 온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뜨거운 감자’였다. 한참의 논의 끝에 결국 이 안건은 부결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소 의외의 것이었다.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에 대해 논의할 경우, 사업보조금, 우편료 할인, 봉사시간 제공 가능 등의 장점들과 회원명단·회의록·회계 제출, 보조금의 위험성 등의 단점들을 저울질하게 될 거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등록에 반대한 사람들의 주된 이유는 바로 ‘대표 선출’ 문제였다. 총회에 참가했던 회원들 다수가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위해서는 만 20세 이상의 대표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에 반발했던 것이다.

지난 1월 진행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총회에서는 '대표 선출' 문제가 논의되었다.

▲ 지난 1월 진행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총회에서는 '대표 선출'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 일을 통해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부분을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로 아수나로에는 대표도 직위도 없다는 것. 지부에는 ‘연락 담당’, ‘용돈 담당’, ‘아이템 담당’ 등과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평소에 거의 의식하지도 않는데다가 게다가 그것도 ‘잡일거리’를 나눠놓은 것이라는 의미일 뿐 ‘직위’라는 느낌은 없다. 상식적으로 직위라고 하면 ‘위원장’ 혹은 ‘지부장’, ‘위원’, ‘부장’, ‘국장’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이건 단순히 명칭의 차이가 아니다. ‘직위’란 ‘명함에 당당하게 넣을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나의 주관적 기준에 코딱지만큼이라도 타당성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해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용돈 담당 ○○○’라고 명함 만들고 싶겠냐는 이야기다.

당근 없는 게 낫지~

아수나로가 직위를 두지 않는 이유? 사실 별 거 없다. 그저 누군가가 그런 식으로 다른 누군가에 대해 권위를 가지는 게 싫다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단체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비청소년들이 다들 권위적이거나 위계적인 것을 싫어하고, 평등하면서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하기 때문에 직위를 두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직위의 존재는 그 직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딱 그 직위만큼의 권한과 책임감만 가지고 활동을 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니 잘못이네, 내 잘못이네” 하며 책임 소재를 따지는 관행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직위’는 자발적인 행동과 참여로 유연하게(혹은 느슨하게) 운영되는 아수나로 같은 단체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아수나로가 직위 없이 운영하는 이유에는 직함이나 유명세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과거 아수나로는 직함이나 유명세에 집착하는 몇몇 사람들의 파행적 행동 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자기 혼자 있지도 않은 직함을 만들어서 자랑하고 다닌다거나, 언론의 유명세를 타기 위해서 허위 정보를 퍼뜨린다거나, 자리 하나를 놓고서 싸움을 벌이는 등의 행동으로 청소년인권운동 내부에서도 다툼이 있었고 외부적으로도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하지만…그래도 있는 게 좋을 수도?

아수나로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직위에 따른 위치가 개인적으로 동기부여도 되고 책임도 좀 더 명확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사람들의 자발성에 의존하는 운동의 성격상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한테 ‘○○부장’ 같은 직함 달아주면, 활동할 맛도 나게 할 수 있고 좀 더 열심히 일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밤 새가며 일해도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것 없는 운동보다는 ‘부장’이라도 하나 붙여주는 운동이 더 좋다는 말일까. 하긴, 열심히 숙제 해가도 아무 말 없이 다른 애들 숙제랑 똑같이 취급하는 선생님보다는 열심히 해간 거 알아주고 칭찬해주는 선생님이 더 좋은 법이긴 하다.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청소년인권운동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도 들고, 꽤 귀가 솔깃해지는 주장이다.

게다가 직위가 없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없지 않다. 설령 직위가 없다고 하더라도 활동력의 크기에 따라서 발언력이나 영향력 면에서 차이가 생기게 된다. 게다가 청소년인권단체의 경우에는 탈학교 청소년이나 대학생, 성인 등 중·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하기 좋은 조건에 있다. 결국, 직위가 없는 단체 구조가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의 발언력이나 영향력을 더 적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또 몇몇 사람들만 계속해서 일을 하게 돼서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홍보부장’ 같은 직위가 있어서 그 직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홍보물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일을 맡아서 한다고 해보자. ‘홍보부장’과 같은 직위에는 6개월이든 1년이든 임기가 있을 것이고 그 임기가 끝나서 다른 사람이 홍보부장이 된다면 그 사람은 처음엔 좀 서툴더라도 하다보면 ‘뽀샵’도 만지작거리게 되고 홍보물을 대충 만들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직위’도 없고 ‘임기’도 없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그런 교체가 일어나기보다는 처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일이 집중되는 현상이 일어나기가 쉽다.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매달려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안 좋은 일이지만, 다양한 활동과 실무들을 경험해볼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에게 역시 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게 싫어서 직위 없는 운영을 고집하는 것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 더 무너뜨리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권위가 생겨나고 유지될 수도 있다. 명시적으로 설정된 직위는 권위의 하한선도 어느 정도 미리 설정해놓은 셈이지만, 상한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견제가 비교적 제도화될 수 있고 이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직위가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권위는 그 상한선을 가늠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권위의 크기나 범위도 쉽게 눈치채기 힘들다. 그래서 간혹 지나치게 한 명을 중심으로 활동이 진행되는 경우도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도 한다.

아수나로에는 여전히 대표, 사무국장과 같은 직위가 없다. 완벽한 조직 운영 형태는 아니겠지만, 여전히 더 나은 형태를 향한 실험 중이다.

▲ 아수나로에는 여전히 대표, 사무국장과 같은 직위가 없다. 완벽한 조직 운영 형태는 아니겠지만, 여전히 더 나은 형태를 향한 실험 중이다.


지금은 실험 중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정말 쉽지 않다. 스위스의 아나키스트들도 바쿠닌의 ‘인격적 권위’는 인정했다고 하던데, 직위 없이 자연스레 발생하곤 하는 ‘보이지 않는’ 권위들까지 과연 모두 없애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든다. 실질적인 활동량과 영향력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를, 형식적으로 직위·직함들을 배분하고 순환시킴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싶기도 하다.

결국 단체 안에 직위가 있는 게 좋을지 없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말로 나는 슬쩍 결론을 회피하고자 한다. 다만, 직위가 확실하고 위계적인 조직이 지금까지는 일반적이었고 좀 규모가 큰 조직에서는 ‘민주집중제’라는 게 올바른 형태로 받아들여졌던 과거에 비해서, 지금은 직위도 없고 서로 평등한 관계를 중시하는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한 단체들은 일종의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의 이런 고민들도 다양한 단체 형태에 대한 실험이 없었다면, 그리고 아수나로가 지금 그런 실험을 하는 단체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구체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다양한 대안들을 실험해보는 것이야말로 진보 운동이 가지고 가야 할 숙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