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와 성노동, 그 사이의 것들
2004년 9월 23일, 성매매방지법이 발효되었다. 이 법안은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국가, 자본 그리고 남성에 의한 폭력으로 보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다양한 맥락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들려왔었다. 역사 이래로,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토록 집중된 적이 있었을까.
그 당시 일부에서는 소위 ‘집장촌’이 극적으로 쇠퇴하고, 그로 인해서 관련 성산업이 위축되는 가시적인 효과를 낳았다고들 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서비스업의 경제적 손실이 크다고 앓는 소리를 해댔다. 성매매를 남성의 본질적인 성욕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법으로 성매매가 근절되겠느냐는 회의적인 태도를 고집했다. 그러나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되면서, 이전까지는 성매매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일탈행위를 하는 사람으로만 보아오던 대중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비교적 ‘피해자’로, 성매매의 문제를 분명한 착취구조로 인정하였다.
그러한 거대한 목소리들 사이로, 작지만 너무나 놀라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혹은 인권의 이름으로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반대하며, 위태롭지만 씩씩하게 세상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그녀들의 등장에 여성주의자들 혹은 한국 사회 전체가 당황했었다.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법이 시행되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성매매 근절을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소리 높여 주장했던 여성단체들의 활동이 너무나 중산층 중심이며, 보수적 제도권과 결탁한 계몽적 여성주의라는 평가도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서는 악의적으로, 어느 곳에서는 반성적으로. 거리로 나온 여성들에 대해 일각에서는 업주들의 사주를 받거나 강요에 못 이겨 나온 것이라고 함부로 떠들고 다녔다. 이러한 오해와 앞서,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의 판단과 자발성을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그 당시 우리는 성매매가 남성, 국가, 자본에 의한 폭력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이를 근절하는 것만이 올바른 선택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성매매를 ‘노동’이며 당당하게 ‘직업’이라고 주장하는 그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 것인지에 당황스러웠고, 그러한 고민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경험을 나누어갖기
그러던 중 우연히 성노동자 여성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여성은 성매매를 그만두는 것, 즉 탈성매매는 ‘새 삶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의 기회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매매를 부정하고, 성매매를 하고 있는 현재를 부인하는 것은 곧 현재의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며, 나아가 현재를 부정하면서 긍정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 여성의 주장은 성매매라는 폭력적 구조와 한 개인 여성의 삶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는 반문했다. 탈성매매의 핵심이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성매매에 대한 자신의 자발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단지 성매매를 그만두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지 말이다.
그녀의 주장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그녀가 여성의 폭력적 현실을 얼마나 잘 인식하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다양한 욕망과 경험을 지닌 여성 내 차이를 인정하고, 또한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너무나 소박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상당히 소박한 이 깨달음에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한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성노동자의 생존권, 노동권, 건강권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한 성노동자와의 대화에서였다. 그 여성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성매매 방지법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면서, ‘성매매의 근절’과 피해자 논리에 대해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성매매의 궁극적 폐지론은 결국 성매매의 실제적인 주체인 자신들을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피해자 논리는 자신들을 대상화하고 무력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었단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집회에 대해서 포주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는 오해까지 받으니, 적대적으로 느껴졌단다. 그래서 소위 ‘여성단체’ 사람들과도 대화하거나 만날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그러던 중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 집단으로 획일화하지 말라는 주장만큼이나, 자신들도 여성단체 사람들의 다양성을 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반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대등한’ 관계라는 표현을 여러 번 강조했는데, 자신들도 성매매를 해결하고자 하는 운동의 주체로서 여성단체의 사람들과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노동자들도 어떤 면에서는 소위 ‘여성주의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들도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함께 연대를 모색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었다. 적대적 관계 속에서의 분노를 지닌 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소박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는 그녀를 통해서, 입장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 이것은 서로 다른 조건 속에 있는 여성들이 어떻게 서로의 경험을 나누어 갖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태도라는, 여성주의를 처음 접했을 때 가슴을 적셨던 그 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계기였었다.
간절하고 소박하게 계속되는 시도들
그러나 이 모든 연대의 가능성은 결국 성노동이라는 개념 앞에 무너졌던 것일까. 6월 29일 성노동자의 날, 수많은 성노동자들은 화해할 수 없는 주류 여성단체에 대한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노동이 찬성과 반대라는 거수의 문제일까.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노동자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여성들’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연대의 지점을 넓혀나가는 것이 아닐까.
성노동자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비록 당사자의 것이지만, 유일무이한 판단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특정한 조건 속에서 성매매를 제한적으로 경험한 일부의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성매매의 현실에서 그들에게 대표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게다가 특정한 이해관계 속에서라면 성산업인(업주)이 성노동자들의 조력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인 ‘노동’에 대한 보다 여성주의적인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성매매 여성을 임금노동자로서의 ‘성노동자’로 명명하는 전략에 대해서도 보다 풍부하고 정교한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주의자들 내부의 차이, 어떤 여성주의자들과 당사자 여성과의 차이는 마치 딜레마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매매 여성들이 어떤 대리인 집단의 입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조직화를 시도하고 협상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한 조건 속에서 억압받고 있는 소수자들을 시혜적인 대상으로 여기고 손쉽게 대변하고자 하는 것은 소수자들 스스로가 말할 수 없는 착취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이미 섞여있는 지배논리의 위력을 밝히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역동성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에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성매매의 메커니즘 속에서, 포주나 클럽 업주들의 목소리와 혼재되지 않은, 순수하게 걸러진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만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대화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우리가 성매매의 공간 안과 밖에서 서로가 소통하고자 할 때, 서로의 관점의 차이가 대립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박하면서도 간절하게.
덧붙임
◎ 꼬무 님은 연분홍치마 활동가입니다. 연분홍치마는 2004년 5월에 발족하여,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성적 문화환경을 만들어가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기지촌 다큐멘터리 <마마상>을 제작하고, 다양한 성매매 공간의 여성들을 만나면서 함께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기반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글에서의 ‘우리’는 연분홍치마의 활동가를 지칭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