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의 끝에 위치한 배다리 마을. 외국 사신들이 드나들며 교역이 이루어져 활기가 넘쳤던, 최초의 양조장과 성냥 공장 건물이 남아있어 근대적 한국을 만날 수 있는 곳. 인천의 많은 문인들이 사랑했고 여전히 애착을 갖는, 매주 시낭송회가 열려 감성을 나누는 헌책방 거리가 있는 곳. 그러나 개발 바람은 이곳 배다리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재개발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송도와 청라의 경제자유구역을 잇는 산업도로가 이 마을을 관통하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 삶의 흔적이 짙게 배인 집들, 동네꼬마들이 뛰어놀던 골목길을 뒤엎고 화물트럭이 달리게 될 도로를 깔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에 배다리 마을을 지키고자, 배다리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모인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



집 옆에 산업도로가 난다고?

1998년부터 추진 계획이었던 산업도로를 주민들이 알게 된 것은 2006년, 해당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에서 지급한 보상금을 받고 많은 주민들이 동네를 떠나면서였다.

“그저 길이 나나보다 했었지. 근데 파헤치는 걸 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크기도 어마어마한대다 바로 집들 옆이잖아. 그래서 생전 안 해본 운동이란 걸 하게 됐지. 비가 억수로 올 때쯤이었는데 그 때 집들을 허물었어. 옛날 집들은 자갈로 만들어서 부수기도 어렵잖아. 그랬더니 그 충격 때문에 우리집에 균열이 나더라고. 비는 새고, 그렇게 습기가 차니까 벽 곳곳에 곰팡이가 나고 말야. 그래서 따졌지. 그랬더니 고작 한다는 게 갈라진 부분을 테잎으로 붙여주더라고. 열 받잖아. 그래서 싸워보자. 끝까지 가보자 하면서 시작하게 됐지."

이 마을에서 7년을 살았다는 최장국, 하유자씨 부부. 중앙시장 쪽에서 30여년 살다가 주차장 만든다는 계획으로 인해 쫓겨나 몇 번을 이동하다가 지금 집으로 오시게 되었다고 한다.

“공사하는 걸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동네 아줌마들 만나서 같이 얘기하고 구의원 시의원 다 찾아다녔지. 그러면서 난 운동가 아닌 운동가가 되게 되고, 이 사람 저 사람 함께 하게 되면서 대책위가 만들어진 거지.”

주민 항의에 미동도 안하는 인천시

“내가 내일모레 육십인데 이거 해보기 전에는 운동을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왜 산업도로를 반대하는지 얘기도 제대로 듣지 않고, 정확한 사실도 얘기해주지 않으면서 구청 시청에서 우리를 데모꾼이라고 몰면 화가 나. 우리는 여기 사는 주민으로서 산업도로가 문제가 있기에 반대하는 거지 데모꾼은 아니란 말야.”

왕복 8차선의 거대한 도로. 그 위를 온갖 물류를 실은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것을 생각해볼 때 주민들이 입게 될 환경적, 정신적 피해는 자명하게 예상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인천외곽순환도로가 물류 수송이라는 기능을 하고 있기에 산업도로가 건설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주민들은 납득하기 힘든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시의 입장은 강경하기만 하다.

“도로 계획으로 보면 우리 집은 11평방미터(3평 정도)가 잘려 나가게 돼. 가뜩이나 균열이 난 상태인데 집이 어떻게 되겠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잖아. 그래도 리모델링해서 살고 싶어서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고. 그런데 기록을 보니까 쏙 빠져있는 거야. 우리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있으니 그냥 돌아서고 싶어. 조만간 이사 갈 생각이야.”

황폐한 구덩이, 마을을 가로막다

“지금은 뭐 익숙해졌지만, 처음 구덩이 파놓은 걸 봤을 때는 기가 막혔어요. 무슨 6.25때 폭격 맞은 것 같더라구요.”

배다리 마을에서 30년을 산 박태순씨, 그녀는 주민들의 살 권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개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에서는 보상해주면 다 된다는 식이에요. 저 이 동네 와서 결혼했고, 애 낳아서 키웠어요. 우리 집은 전철 복선 때문에 8평 정도가 잘려나갔어요. 그래도 이 집과 이 마을을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산업도로니 재생사업이니 하면서 여기서마저 못살게 괴롭히네요. 그저 시키는 대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고 하면 우리 권리가 너무 없는 거잖아요.”

주민들이 산업도로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사 중단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의한 공사 진행 여부와 주민들이 주장하는 산업도로의 무용성을 검토하기 위한 감사가 진행 중. 그러나 인천시는 이미 공사 구역들이 대부분 완료되었고, 관련 주민들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졌기에 그대로 공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잘 살게 해주는 건데 왜 그러냐고 하면, 전 여기 와서 한 번 살아보라고 해요. 하루만 있어도 얼마나 환경적으로 안 좋은지 알 거에요. 아침마다 걸레질해도 저녁이 되면 걸레가 새까매질 정도에요. 주변에 공단이 있어서 가뜩이나 공기가 안 좋은데, 여기에 도로가 또 생긴다면 어떻겠어요. 거기에다 지금도 전철 방음벽 때문에 빛이 잘 안 들어오는데, 도로 때문에 생길 소음 차단할 수 있는 벽 만들어주는 거 당연히 환영 못하죠.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자꾸 상황이 안 좋아지니까 비참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개발 바람, 그래도 내 집과 바꿀 수는 없다

산업도로를 막아내기 위해 모인 주민들. 그러나 인천 전체에 부는 개발 계획에 동구도 들썩이게 되면서 재개발을 기대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재개발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분도 있고 반대하는 분도 있어요. 자격 되서 임대아파트 들어갈 수 있다고 해도 월마다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있으니까 못 들어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 분들은 재개발 되면 나 어디로 가야 하냐고 걱정 많이 하세요. 오히려 이런 분들은 집 조금만 수리해서 그냥 사시기를 바라시죠. 우리 집도 마찬가지에요. 이게 27평인데 이걸로 보상 받아도 어디 가서 살기 힘들어요. 재개발 소문이 돌면서 평당 400이었던 것이 1000까지 오르게 되었어요. 근데 가지고 있는 사람들 보면 대부분 외지인들이에요.”

높다란 방음벽 때문에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데도 작은 텃밭에 꽃이 자라는 것을 보면 저것도 생명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며 수줍게 웃으신다. 먼지 때문에 갑갑하고 소음 때문에 심난하지만 그래도 지금 누리는 행복들이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



“개발개발 하는데 이거 무조건 좋아할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옆 동네에선 재개발해서 아파트가 세워졌는데 거기 가면요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는 하늘이 참 잘 보여요. 창밖으로 텃밭에 핀 들꽃 보면서 차 한 잔 같이 한 사람들은 우리 집이 찻집 같대요. 그리고 우리 텃밭에서 나는 민들레와 돝나물, 그것만으로도 한 끼 식사가 돼요. 키우는 기쁨도 크고요. 경제 살리는 길이라며 개발한다고 하는데, 이런 공간이 자꾸자꾸 사라지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람살이이기에

“백성이 있고, 그 다음에 관이 있는 거잖아요. 예전에는 나라에서 하는 거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 하는 개발들 보면 정작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대운하도 4-5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하던데. 뭐 우리나라는 뚝딱 하면 다 되는 줄 아나 봐요. 근데 사람살이에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되는 현실에 맞서 배다리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