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의 다리가 된다는 것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는 각자의 삶터에서 출발해 지역운동의 중심이 된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커뮤빌더란 Community Builder를 합쳐 만든 조어로, 네 사람이 각자의 커뮤니티 내에서 공통적으로 가진 역할이다. 책에서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활동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어 있는 이들을 커뮤빌더라 부르며 재조명하고 있다. 책은 부천Y 녹색가게의 박혜연 씨와 광명Y 등대생협의 변희종 씨, 부산 희망세상의 김형도 씨, 안성의료생협의 박상섭 씨의 발자취를 인터뷰를 통해 차분히 담아낸다. 이 네 사람의 커뮤빌더는 지역에서 주민을 격려하고 조력하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다. 이 마음씨 좋은 사람은 주민보다 크게 앞서가지 않고, 언제든 손 내밀면 손에 닿는 곳에 있으면서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때로는 희극배우가 되어 사람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안겨준다. 이 사람 주위에는 늘상 사람이 모이고, 이 사람을 다리 삼아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 사람은 리더라기보다는 커뮤빌더다. 지역과 일상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면서 변화를 원하는 주민에게 용기와 밑천이 되어준다.
자본주의 회색도시의 비극은 서울 곳곳에서, 지역 곳곳에서, 우리들 한 명 한 명에게서 매 시각 벌어진다. 생활고에서 오는 생존의 고통, 경쟁이 주는 인간적 모멸감, 자괴감, 열등감, 관계의 파괴에서 오는 소외와 외로움 등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는 횟수의 비극의 시간이 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비극의 주인공이며, 이미 충분히 절박하고 처절하며 괴롭다. 나보다 조금 더 절박하고 처절하며 괴로운 사람에게 눈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 속 개인은 변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향이 일반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이는 오랜 시간 내면화된, 권력과 자본의 전제성과 지루한 힘겨루기 과정에서 누적된 피로와 절망감에 기초한 것이다.
부드럽고 재미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욱 넓고 크고 부드럽고 재미있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비극의 진행을 잠시 멈추고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일상 속에서 만나길 원하고, 비극적 생활을 웃음과 재미로 정화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과 자연스레 마주하고 소통하며, 관계망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우리들의 롤 모델이 있다면 이 책에 소개된 네 사람의 커뮤빌더가 아닐까 싶다. 이들이 가진 여러 덕목들은 새롭게 지역운동에 입문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덧붙임
안성민 님은 민중의 집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