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폭탄을 두고서 대부분은 ‘전교조에 대한 공격’, ‘전교조 탄압’이라고 이야기한다. “한나라당에 100만원 후원한 교장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데 민주노동당에 1만원 후원한 전교조 조합원은 해임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징계가 어디 있어? 전교조를 노리고 두들겨패는구만, 아주!” 이 정도 수준이다. 전교조 측에서도 이 문제를 전교조 탄압으로 이해하면서 “과잉징계”, “법원 판결도 나기 전에 해임”, “형평성 상실”, “절차 무시” 등을 주로 제기했다. 결국 프레임은 ‘전교조 지지냐 탄압이냐’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지금 이 상황은 단순히 ‘전교조에 대한 공격’ 일까? 아니 뭐, 고리타분하게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공격” 이러면서 위기의식을 자극하며 연대를 호소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상황에 대해서 좀 다른 해석을 붙여보자는 것뿐이다. 왜 교사의 정치활동은 금지되는가? 교사는 왜 사상ㆍ양심의 자유, 집회ㆍ결사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를 모두 억압당하고 있는가? 왜 그러한 법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고 전교조 탄압의 명분이 되며 사회적 힘을 잃지 않고 있는가?
전교조나 전교조 탄압에 반대하는 언론 등이 간간이 제기하는 쟁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교수들의 정치적 자유는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데 왜 교사들은 시국선언(표현의 자유), 정당후원/가입(결사의 자유) 등이 모두 제한되고 있는가?” 교사들은 ‘공무원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디 한 번 사립초중고등학교 교사와 국공립대 교수를 비교해보면 그냥 ‘공무원이니까’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임을 알게 된다. 오히려 공무원 프레임도 “왜 교사들은 공립 사립 가릴 것 없이 국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공무원 취급을 받는가?”라는 식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교사들의 희생(?)
답은 단순하다. 교수와 교사의 차이가 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뭐 연봉이나 노동환경 등 여러 가지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수는 대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참여하지만, 교사는 초중고등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참여한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선거권도 있고 정치적 권리들을 보장받고 있지만, 초중고등학생들에게는 선거권도 없고 정치적 권리들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인 것을 접하기에는 너무나 ‘미성숙’한 초중고등학생들을 정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교사들의 정치활동은 금지되어야 한다. ‘미성숙’하고 감수성과 모방성이 뛰어난 학생들이 행여나 교사들에게 영향이라도 받아서 편향된 정치적 견해를 가지게 될까봐 그런 것이다. 헌법 제31조에도 “정치적 중립성”이 명시되어 있으니까 교사의 정치활동은 위헌이라고까지 한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중고등학생들의 주체적 실천으로 보지 않고 ‘전교조의 영향’ 운운했다. 그의 망발은 이런 사고방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학생들(청소년들)에게 정치적 권리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의 정치적 권리 또한 봉쇄되어야 했다. 청소년들에게 교사 이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들의 정치적 권리는 왜 금지하지 않나 참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건 그것이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논리이다. 이건 단순히 나의 해석이나 억측이 아니라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에 대해 위헌 재판 신청을 했을 때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기각하면서 내놓았던 논리이다. 결국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혹은 ‘미성숙’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강제로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며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정치 금지가 교육하는 반인권성, 반민주성
뻔히 아는 사실이겠지만, 이 ‘금지’는 공평하지 못하다. 교육이 정치성을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와 교육과정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태도들을 전제로 만들어지고 그것들을 ‘상식’이자 ‘공식적인 지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면서 교육을 비정치적으로 만들겠다는 구호는 현재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공고히 하고, 이에 비판적인 이야기들은 ‘정치’라며 틀어막아버린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는 ‘징계’, 한나라당 후원 교장은 ‘출세’라는 결과는 그러한 불공정성의 극단적 표현일 뿐이다.
사실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사회 굴러가는 것이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며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집단적 자기결정권으로서, 말하고 듣고 행동할 자유로서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인권이다. 정치적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 금지하는 것은 반(反)민주주의, 반(反)인권을 교육한다. ‘비정치성’을 강요하는 것은 보수적인 정치성을 띄는 것이다.
혹자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 등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면 이런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히틀러 유겐트와 같은 사례는 따져보면 국가 권력이 교육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이 정점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교육이 정치권력,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어야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교사들을 통제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교사들을 해고하는 데 오용되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나치 독일스럽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자기 견해를 강요할까 걱정스럽다면,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체벌’이나 ‘평가권’ 같은 과도한 (때로는 폭력적인) 권력들에 제한을 걸고 학생들에게 정치적 능력을 배양하면서 평등한 교사-학생 관계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학생에게 권력을 청소년에게 정치를”부터 시작하자
2010 지방선거 때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요구하면서 ‘청소년 후보’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 교육에서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 0순위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면서 기호0번을 달고 출마한 청소년 후보는 말하자면 일종의 ‘계급 후보’였으며, 벽보도 안 붙여주고 공보물도 안 보내주는 선거관리위원회를 원망하면서 열심히 유세를 다녔다.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중에 생긴 정치활동을 이유로 한 전교조 해직 사태에 대해서도 논평을 발표하고 지지방문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학생들,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들,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공부시킬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교사들의 정치적 자유까지 탄압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부는 지금 청소년들을 강제로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로 남겨놓기 위해 ‘대량해직’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교육의 진짜 주인인 학생들은 무시하고 정부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해고하는 것에 당연히 반대해줘야 한다.”라며 정부의 무리수를 비판했다.
전교조에 대해 ‘정치활동’을 이유로 하며 가해지는 공격들은 학생들에 대한 공격이고 모욕이기도 하다. “니네는 너무 미성숙하니까 이런 불순한 교사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해.”라면서 학생들 핑계를 대고 있는 참 가증스러운 징계이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며 기호0번 청소년 후보 활동을 했던 청소년인권운동의 주체들은 이후로도 적극적으로 이번 전교조 징계에 대응할 것이다.
역으로 말해서,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 보장이 교사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을 이번 전교조 징계가 보여주고 있다. 학생, 청소년들을 정치에서 왕따 당하는 존재,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남겨두는 한 교사들이 부딪치고 있는 정치적 자유의 문제들도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전교조 징계’는 전교조라는 조직만의 일로 볼 수 없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평등하게 오갈 수 있는 학교. 학생들도 교사들도 모두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학교. 그런 학교를 위해서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감히 나서서 먼저 외쳤다. “학생에게 권력을! 청소년에게 정치를!” 전교조든 전교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든, ‘전교조 표적 탄압 반대’를 넘어서서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 모두의 정치적 자유가 꽃피는 학교를 보는 날이 머지않기를 바란다.
* 히틀러 유겐트
나치가 통치한 독일에서 나치즘을 내면화시키고 국가에 동원하기 위해 운영한 조직. 자세한 것은 <히틀러의 아이들>참고
덧붙임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