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애 키우면서도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게 말해줘.”, “아들아, 집안 살림 더 활짝 필 수 있게 말해다오.”, “아빠, 밤길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말해주세요!” ……“6월 2일, 투표로 꼭 말해주실거죠?”
6.2 지방선거를 맞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작한 투표 참여 독려를 위한 일종의 공익 광고 문구들이다. 몇몇 뉴스나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는 이 광고가 기존의 광고들보다 ‘훨 낫다, 투표율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네, 어쩌구’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예전의 광고들이 ‘밝은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투표하라’였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투표하라’였기 때문이라고.
국가를 위해서건, 내 가족을 위해서건, 이러나 저러나, 말해주고 싶어도 ‘투표권’조차 없는 사람으로서는 썩 ‘와 닿지 않음’이다. 와 닿지만 않을 뿐이더냐. 불편하다. 게다가 이 광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투표’로 ‘말해주는’ 주체들은 모두가 ‘남성(여보, 아들, 아빠 등)’임을 알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투표하는 사람, 투표로 말하는 사람=‘남성’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문구들은 또 불편하다.
‘말해주세요’ 라는 부탁만 존재하는 정치
광고 속 “말해주세요”는 어떤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렇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쩌는 편견 탓에 사회를 향한 어떤 목소리도 표출할 수 없다. 청소년은 법으로, 교칙으로, 사람들의 편견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많은 부분을 차단당하고 있다. 청소년에게는 편집증적으로 정치에 관련한 행동이 금지되어있다. 투표권은 물론이요 선거운동, 지지 선언, 심지어 자신의 블로그나 온라인공간에 ‘어느 특정 후보’에 대한 글을 쓰는 것조차도. 특히 교육감 선거는 대다수의 학생,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될 선거인데, 이 교육감 선거에 청소년들이 참여할 방법은 거의 없고, 심지어 참여할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논의조차 찾을 수 없다. 자신과 가장 관련된 일을 결정하는 일에 있어 청소년은 ‘말해주세요’하며 부탁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에게 유리한(?) 정책들이 나올 리가 있나. 시장이고 군수고 도지사고 교육감이고 죄다 지역의 일꾼이 되겠다며 ‘시민-국민(=어른)’들을 위한 공약과 정책을 내세운다. 청소년들을 위하는 척, 하는 이야기들도 있긴 하다. ‘엄마’처럼 돌보겠습니다 등등의 문구를 내건 것이 그러하다. 청소년-아이들을 저희가 돌보겠습니다, 라고 하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캐치프라이는 많이 부족하고 불편하다. ‘엄마’처럼 ‘돌보겠다’니. ‘엄마-여성’은 여성이기에 돌봄, 배려, 희생의 주체가 되고, ‘아동-청소년’들은 그 돌봄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가부장적인 질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위의 광고가 보여주듯 투표로 말하는 것은 대부분이 남성이니까, 그렇게 쉽게 ‘엄마’타령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순식간에 ‘엄마-여성’과 ‘청소년’을 어느 특정한 역할과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꼴이다. 진정으로 그들이 ‘잘 돌본다’면 또 모를까.
‘반사회적인 소녀들의 시선(반소시)’으로 정책을 만들어보았더니...
그나마 학생들을 위한 공약들이 몇 있긴 하다. 학생인권보장을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겠다거나, 학교 시설을 어떻게 개선하겠다거나, 교육정책을 어떻게 하겠다, 라거나. 사실 대부분이 청소년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나마도 있는 정책에서 ‘여성’청소년의 시각에서 보면 또 끄덕끄덕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청소년-학생’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책상에 앉아서, 코 박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이미지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이미지에서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드러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몇 만 명에게 동시에 ‘학생’이라는 단일한 굴레가 씌워지고 그로 인해 여성 등 약자-소수자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을수록 소수의 이야기가 묻히기는 쉬워진다. 청소년에 관한 공약, 정책들이 충분히 검토되고 요구되어야 하는 것처럼 청소년 안의 또 다른 소수자인 ‘여성청소년’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로 수면 위로 띄워져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사회적인 소녀들의 시선’이 탄생했다. 약칭으로 ‘반소시’로 불리기도 하는데, ‘반소시’는 요즘 인기절정의 여성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줄여서 ’소시‘라고 부른다)’에 ‘반(反)’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소녀시대’를 만들어내는 ‘이 사회’에 ‘반대’한다, 일 것이다. 예쁘고, 귀엽기도 하고, 성적 매력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고, 똑똑하고, 그래서 장래에 결혼해서 남편에게 ‘내조’ 잘하는 여성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것을 부추기는 사회에 반대한다, 일 것이다.
‘반소시’들이 내놓은 정책들은 대략 이렇다. “여학생은 왜 바지 못 입게 하나? 바지도 허용하라! 이참에 복장자유화!”, “각 학교/학급 포함 여성청소년에게 생리대 무상지원! 왜 생리를 숨겨야 하나?”, “생리, 임신, 출산 휴가 보장!”, “가부장적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학교교육은 그만! 인권, 여성주의 교육을 하자!”
여학생은 치마, 남학생은 바지, 라는 복장으로 성별을 규정하려는 것에 맞서, ‘이 참에 복장자유화’를 주장한다. 남학생의 몽정이나 성적 호기심, 욕구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여학생의 생리나 자위 등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것, 숨겨야할 것, 그렇지 않으면 밝히는 애’가 되어버림에 맞서, 당당하게 생리하자고 말한다. ‘생리’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힘들어 ‘그거, 그날...’이라고 표현되는 비싸기만 한 생리대, 무상으로 공급하라고 주장한다. “지금 한 시간 더 공부하면 장래에 남편이 바뀐다”라는 게 급훈으로 버젓이 걸려있는 현실에 맞서, 인권교육, 여성주의 교육을 학교 교육 편성과정에 넣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어찌 보면 이름답게, ‘반사회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의미로 지금의 사회가 ‘반인권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빠는 말해주지 않는다!
아무튼 이러한 정책들이 정말 시행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현실은 “어머니, 힘드시죠?”와 “아빠, 말해주세요!” 식이다. ‘여성청소년’이 자신과 관련된 무언가를 직접 말하고 요구할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청소년이 진정 무엇을 요구하고 원하는 지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광고와 캐치프라이즈가 버젓이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신 말해 줄 테니, 잠자코 있으라 하지 않나.
그럼 어떻게? 이런 시궁창 같은 현실이 계속 존재하는데, 어떻게? 여성청소년들이 바꿀 수밖에! ‘소녀시대’를 만들어내는 사회에 저항하고, ‘반사회적인 소녀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우리가 말할 공간이 없다면 직접 만들기. 듣지 않는다면, 듣게 하기.
“아빠, 말해주세요.”, “대신 말해 줄 테니 넌 그냥 여기서 기다려.” 아니, 아니. ‘말해주세요~’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아빠는 절대 대신 말해주지 않는다.
덧붙임
난다, 어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