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를 제대로 정해 두어야 인권교육을 100배로 즐길 수 있는 법. 그러려면 먼저 인권교육에 쏟아지는 질문들, 내 안에서 빼곡 고개를 내미는 질문들에 대한 자기 정리가 중요하다. 지난 6월말 인권교육가 양성을 위한 워크숍에서 인권교육가가 넘어야 할 열두 고개를 소개하고 그 고개를 즐겁게 넘을 수 있는 비법을 직접 찾아보았다.
날개 달기 - 맞혀봐, 인권교육 열두 고개!
먼저, ‘인권교육은 ~하다’ 혹은 ‘인권교육은 ~해야 한다’와 같이 인권교육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와 편견을 가려 뽑아 ‘열두 고개'를 만들어 갔다. 각각의 고개에는 두 개의 상반된 의견이 버티고 서 있다. 어떤 고개들이 있을까 참여자들이 직접 알아맞히도록 했다. 한두 개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인권교육에 갓 첫걸음을 뗀 참여자들이어서 그런지 쉽게 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다들 어려워하는 표정이다. 에라 안 되겠다, 전격 대공개!
인권교육 열두 고개
1 | 인권교육은 권리만 가르치지 책임을 가르치지 않는다 | vs | 인권교육을 받으면 애들이 착해진다 |
2 | 인권교육은 강의실 안에서 이루어진다 | vs | 인권교육은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진짜다 |
3 | 인권교육의 열쇠말은 개인과 자유다 | vs | 인권교육의 열쇠말은 관계와 연대이다 |
4 | 인권교육은 '정보'다 | vs | 인권교육은 '프로그램'이다 |
5 | 인권교육은 분명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 vs | 인권교육은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6 | 인권교육은 모두의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 | vs | 인권교육은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해야 한다 |
7 | 인권교육은 '희망'을 교육해야 한다 | vs | 인권교육은 '고통'을 교육해야 한다 |
8 | 인권교육은 법률가/전문가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다 | vs | 인권교육은 당사자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다 |
9 | 인권교육의 성패는 인권교육가의 역량에 달려있다 | vs | 인권교육의 성패는 환경에 달려있다 |
10 | 인권교육이 중요하나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 vs | 인권교육이야말로 사회를 바꾸는 근본적 힘 |
11 | 참여자 수가 많으면 대박 난 교육이다 | vs | 참여자 만족도가 높으면 대박 난 교육이다 |
12 | 인권교육은 대중 조직화의 주요 수단이다 | vs | 인권이라는 단어를 한번이라도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 |
각각의 고개에는 능선이 연결돼 있듯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고민들이 담겨 있다. 첫 번째부터 일곱 번째 고개까지는 인권교육의 성격에 관한 고민들이 담겨있다면,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고개는 인권교육가의 역할과 관련된 고민들이다. 나머지 세 고개는 인권교육의 성과를 어떻게 따질 것인지에 관한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
더불어 날갯짓 - 한 고개 넘어 또 고개가 보인다
각 이야기들은 어떤 맥락에서 자주 듣게 되는지를 간략 짚어준 다음, 모둠별로 이야기해 보고픈 고개를 3개씩 가져가도록 했다. 각 고개에 버티고 선 ‘두 가지 대립 의견’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낑낑거리고 있는 인권교육가들에게 해줄 조언을 찾아본 다음, 전지에 기록을 부탁했다. 인권교육 경험이 많지 않은 분들이라 답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다양한 현장 경험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매우 활발한 토론이 오고갔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난 뒤, 전지를 옆 모둠으로 돌려 보완할 내용을 찾아 적도록 요청했다. 다른 모둠의 작업 결과를 보면서, 끄덕끄덕 맞장구 댓글을 다는 이들도 있고 미처 나오지 않은 이야기도 끄적끄적 채워 넣는다. 다시 한 번 전지를 옆 모둠으로 이동. 이렇게 전지를 돌리니 다른 모둠의 논의 결과를 좀 더 주목해서 읽게 되고, 모둠별 작업의 부족함이 서로 메워진다. 그렇게, 인권교육 고개를 즐겁게 넘을 수 있는 비법이 마련됐다.
인권교육 열두 고개, 이렇게 넘어보자!
▪ 첫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을 받으면 착해지는 게 아니라 까칠해지지. 감수성도 예민해지고 제대로 화낼 줄 알게 되니까. 그러니 인권교육과 도덕교육을 혼동하지 말자구~ 그리고 한 번도 권리를 말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임부터 들이대는 건 너무하잖아? 권리가 있어야 책임도 있는 거지.
▪ 두번째 고개 넘는 법 : 중요한 건 인권교육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나누는가지. 인권교육이 생활 속에서 항상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 체계적인 인권교육으로 인권감수성을 촉진해준다면 생활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테니 금상첨화~
▪ 세번째 고개 넘는 법 : 개인과 관계, 자유와 연대가 분리된 별개의 말인가?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 연대하잖아. 또 권리도, 사람도 낱개로 존재하진 않지.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자유~”라는 시도 있잖아? 자유가 있어야 연대할 수 있고 연대를 해야 자유가 확장되는 법이니까.
▪ 네번째 고개 넘는 법 : 정보와 프로그램을 왜 분리시킬까?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정보를 녹여내는 게 중요한데……. 표피적인 재미 추구, 시간 보내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서는 안 되지. 그 프로그램이 감수성과 진정성을 녹여내고 있는지, 정보와 현장의 목소리도 함께 녹여내고 있는지 따져보자구.
▪ 다섯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에 좋은 질문이 있는 건 중요해. 하지만 질문에만 머무르는 건 No~ 입장은 갖고 있어야지. 하지만 정답을 제시하는 방식은 곤란해. 인권교육은 참여자들이 서로 묻고 답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인권교육가는 어떤 맥락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지 방향을 제시해 주면 돼. 교육가도 참여자도 조급한 마음을 가질 때 섣불리 답을 제시하거나 얻으려는 덫에 걸리니까 조심하기.
▪ 여섯번째 고개 넘는 법 : 권리와 권리가 충돌한다면 당연히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해야지. 그렇지만 ‘모두의 권리’와 ‘소수자의 권리’가 별개의 것인 양 다루지는 말자구.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곧 모두의 권리를 옹호하는 거니까. 모두와 소수자를 구분하려는 생각 자체를 바꾸는 게 인권교육의 역할 아닐까?
▪ 일곱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을 통해 현실을 직면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 있어. 그러나 ‘거짓 희망’으로 고문하는 것보다는 낫지. 또 고통이 끝은 아니야. 고통을 직면하는 과정은 힘을 키우는 과정이고 주위에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 여덟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을 꼭 가장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너무 효율 중심적 사고다. 법률가, 전문가만이 아니라 누구나 인권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해. 단 감수성과 진정성은 갖춰야겠지. 당사자가 과연 누군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어. 같은 입장을 공유한다면, 그 활동에 공감한다면 당사자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인권을 억눌려왔던 이들이 인권교육가로 나선다면 의미도 재미도 배가 되겠지만 말이야.
▪ 아홉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가가 신도 아니고 조건이 갖춰져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겠어? 그렇다고 조건 탓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인권교육가 스스로가 감수성, 진정성, 현장성을 갖추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건 필수!
▪ 열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은 직접 몸으로 느끼고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거잖아. 이게 곧 실천의 일부 아닌가? 인권교육과 실천을 분리하는 건 문제야. 인권교육은 현장 속에 있을 때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또 변화와 교육은 함께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러니까 교육을 후순위로 밀어두지 않기!
▪ 열한번째 고개 넘는 법 : 참여자 수가 많다고, 만족도가 높다고 해서 모두 잘 된 교육인가? ‘대박 났다’라는 말 자체가 수치 중심의 사고를 반영한 건 아닌지……. 소수가 모였다 하더라도 깊은 마음이 오갔을 수 있고 인권의 매력에 흠뻑 빠졌을 수도 있잖아? 때론 참여자들 마음을 모두 불편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할 때도 있어.
▪ 열두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을 회원 늘이기나 대중을 조직하려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일은 참 불편한 일이야. 모든 걸 조직화로 수렴시키려는 경향도 이제 그만! 인권교육이 가장 폭넓은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니까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자구. 또 인권이라는 말을 한번 들어봤다고 해서 사람들이 변화를 꿈꾸게 되는 건 아니겠지. 인권교육이 전하는 가치가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렸다면, 생활 속에서 언젠가 필요한 순간에 발현되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 두번째 고개 넘는 법 : 중요한 건 인권교육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나누는가지. 인권교육이 생활 속에서 항상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 체계적인 인권교육으로 인권감수성을 촉진해준다면 생활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테니 금상첨화~
▪ 세번째 고개 넘는 법 : 개인과 관계, 자유와 연대가 분리된 별개의 말인가?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 연대하잖아. 또 권리도, 사람도 낱개로 존재하진 않지.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자유~”라는 시도 있잖아? 자유가 있어야 연대할 수 있고 연대를 해야 자유가 확장되는 법이니까.
▪ 네번째 고개 넘는 법 : 정보와 프로그램을 왜 분리시킬까?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정보를 녹여내는 게 중요한데……. 표피적인 재미 추구, 시간 보내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서는 안 되지. 그 프로그램이 감수성과 진정성을 녹여내고 있는지, 정보와 현장의 목소리도 함께 녹여내고 있는지 따져보자구.
▪ 다섯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에 좋은 질문이 있는 건 중요해. 하지만 질문에만 머무르는 건 No~ 입장은 갖고 있어야지. 하지만 정답을 제시하는 방식은 곤란해. 인권교육은 참여자들이 서로 묻고 답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인권교육가는 어떤 맥락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지 방향을 제시해 주면 돼. 교육가도 참여자도 조급한 마음을 가질 때 섣불리 답을 제시하거나 얻으려는 덫에 걸리니까 조심하기.
▪ 여섯번째 고개 넘는 법 : 권리와 권리가 충돌한다면 당연히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해야지. 그렇지만 ‘모두의 권리’와 ‘소수자의 권리’가 별개의 것인 양 다루지는 말자구.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곧 모두의 권리를 옹호하는 거니까. 모두와 소수자를 구분하려는 생각 자체를 바꾸는 게 인권교육의 역할 아닐까?
▪ 일곱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을 통해 현실을 직면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 있어. 그러나 ‘거짓 희망’으로 고문하는 것보다는 낫지. 또 고통이 끝은 아니야. 고통을 직면하는 과정은 힘을 키우는 과정이고 주위에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 여덟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을 꼭 가장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너무 효율 중심적 사고다. 법률가, 전문가만이 아니라 누구나 인권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해. 단 감수성과 진정성은 갖춰야겠지. 당사자가 과연 누군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어. 같은 입장을 공유한다면, 그 활동에 공감한다면 당사자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인권을 억눌려왔던 이들이 인권교육가로 나선다면 의미도 재미도 배가 되겠지만 말이야.
▪ 아홉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가가 신도 아니고 조건이 갖춰져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겠어? 그렇다고 조건 탓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인권교육가 스스로가 감수성, 진정성, 현장성을 갖추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건 필수!
▪ 열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은 직접 몸으로 느끼고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거잖아. 이게 곧 실천의 일부 아닌가? 인권교육과 실천을 분리하는 건 문제야. 인권교육은 현장 속에 있을 때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또 변화와 교육은 함께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러니까 교육을 후순위로 밀어두지 않기!
▪ 열한번째 고개 넘는 법 : 참여자 수가 많다고, 만족도가 높다고 해서 모두 잘 된 교육인가? ‘대박 났다’라는 말 자체가 수치 중심의 사고를 반영한 건 아닌지……. 소수가 모였다 하더라도 깊은 마음이 오갔을 수 있고 인권의 매력에 흠뻑 빠졌을 수도 있잖아? 때론 참여자들 마음을 모두 불편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할 때도 있어.
▪ 열두번째 고개 넘는 법 : 인권교육을 회원 늘이기나 대중을 조직하려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일은 참 불편한 일이야. 모든 걸 조직화로 수렴시키려는 경향도 이제 그만! 인권교육이 가장 폭넓은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니까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자구. 또 인권이라는 말을 한번 들어봤다고 해서 사람들이 변화를 꿈꾸게 되는 건 아니겠지. 인권교육이 전하는 가치가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렸다면, 생활 속에서 언젠가 필요한 순간에 발현되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머리를 맞대어 - 우리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
불과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뚝딱 뚝딱 좌표를 그려내는 참여자들을 보면서, 대화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인권교육이 자주 접하게 되는 질문, 인권교육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품었을 법한 질문을 잘 뽑아 제시했기 때문에 논의가 우왕좌왕 전개되지 않은 덕도 큰 것 같다. 이 좌표들을 따라 더 다양한 영역에서 인권교육 실천이 풍성하게 이어진다면, 우리는 이제껏 알았던 인권교육의 힘보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의 인권교육 실천가 낸시 플라워스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나는 인권교육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큰 창조적 잠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의(definition)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권교육을 현재 존재하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좋은 실천의 사례를 포착할 수 있고, 성공의 증거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강력한 도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의 최소한을 어렴풋이 감지할 뿐이다."
덧붙임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