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류대학을 나왔다. 그것도 지방에 있는. 어느 뉴스 앵커가 지방대 나온 사람을 가리켜 ‘루저(loser-실패자)’라는 발언을 해 게시판이 난리 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서열로 매겨진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는 것을. 죽은 그 여대생도 나처럼 대구의 삼류대학을 다녔다. 요즘 같이 대학 나와도 별 볼일 없는 세상에 그녀는 왜 대학을 갔을까? 그리고 나는 그 때 왜 창피해하면서도 그 대학을 갔을까?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고, 학원 가고, 집에 돌아와 잤다. 12년 동안 개근상을 타면서 학교에 왜 다니는지 묻지 않았다. 나중에 교과서에서 ‘의무’라고 하기에 그렇구나 했다. 숙제도 꼬박꼬박 다 해가고 시키는 청소도 열심히 하고 야자(야간자율학습)도 한번 안 빼먹고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12년을 ‘대학 가기 위해’ 살았는데 대학을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어차피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남들 다 가는 대학이니깐 나도 갔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에 쏟아 부은 나의 돈이 너무나 아깝다. 정확하게 나의 돈이 아니라 부모님 돈이다. 나이가 가장 많아 잘리까봐 늘 마음조리며 먼지 나는 곳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아빠, 남의 집에서 청소한다고 허리가 휘어가는 엄마. 부모님은 나를 대학 보낸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냥 그때 여상(실업계고등학교)가서 일찍 취직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렇게 후회하면서 올해 내 동생을 또 대학이란 곳에 보냈다. 마찬가지로 지방 삼류대이다. 관심 있어서 간 것도 아니고 취업이 잘되는 과도 아니다. 나와서 공무원시험이나 쳐야지라고 대답하는 동생에게 나는 왜 ‘대학을 가지마라’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데 대학 나온 게 의미 없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일반사람’이 될 수 없다. 학자금 대출을 안 받을 수가 없다. 대학을 졸업한 대다수의 ‘일반사람’은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대학을 나오기 위해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평생 일을 해야 한다. 미래를 저당 잡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들 중 공교육비 민간부담이 최고인 나라, 가정에 대학생이 있으면 가계경제가 휘청 이는 나라, 나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은 후보시절 반값 등록금 공약과 교육예산 확충을 공약하고도 당선되고 나서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오히려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에 너무 힘들다는 학생들의 절절한 호소에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아라.”라고 말한다.
대학시절, 교생실습을 다녀온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반 아이들에게 “넌 꿈이 뭐야?”라고 물으니깐, 그 친구들이 “꿈이 있으면 뭐해요? 어차피 서울대 못 가는데…….”라고 대답하더라는 것.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슬펐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꿈은 클수록 좋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고 그 선배는 이야기 했다.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게 너무 잔인한 것 같았다고 했다. 등급과 서열로 줄지어진 사회는 도전하고 선택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난 선택할 수 없었다. 이 사회에서 대학은 ‘강요’였다. 난 그 강요를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몇 천 만원 빚을 지도록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네가 선택한 것 아니냐’고 하니, 대학을 졸업한 것이 마치 사기당한 기분이다.
좀 더 용기를 내어야지. 대학 다닐 때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쳐보진 못했지만 더 이상 사기 당할 수는 없잖아. 삼류대 딱지를 부끄러워 가슴에 꽁꽁 싸매어 두지만 말고 다시 한 번 동생과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이것이 같은 ‘루저’로서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내가 미안함을 조금 더는 일이지 않을까…….
[인권이야기] 새로운 필진
[인권이야기] 새로운 필진으로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아요(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활동가), 소모뚜(이주노동자방송 활동가), 정민경(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선영(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님이 수고합니다. 4개월 동안 [인권이야기] 필진으로 함께 해준 이재용, 정혜실, 은진, 루인 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덧붙임
아요 님은 빈곤과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