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와 손을 잡고, 포옹하고, 키스하고, 섹스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갖가지 같잖은 것들이 10대의 연애를 외설로 취급하며 열심히 짓밟는다. 그 중 하나인 억압적인 교칙들을 까발리기 위해 11월 16일에 서울에서 청소년연애탄압실태 보고회를 가졌다. 나름 성공적으로 어이없는 교칙들을 고발했다고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어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고등학생 정도라면 건전한 이성교제는 가능하다고 본다. 또 이성교제와 관련된 학교 학칙들이 워낙 과거에 제정된 것이 많아 시대 흐름에 맞춰 학교 운영위 등에서 충분히 재 논의될 필요가 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과도한 걸 요구하는 학생들이 권리에 따른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덧붙였다. (출처 시사인 http://bit.ly/fAlolS ) "교칙이 과하긴 하지만 청소년의 사랑에는 당연히 제한이 있어야지."하는 투로 기사 쓰는 기자들과 이런 발언하는 관계자 님들- 성적 자기결정권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는지 모르겠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처럼 소극적인 권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구나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자신의 성과 관련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정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손잡았다고 벌점 주고, 섹스하면 퇴학시키고, 이런 게 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성폭력에 이성교제를 포함시킨 무개념 학교들이나 '자발적 성관계'를 처벌대상으로 명시한 학교들(압구정고등학교, 당곡고등학교 등)도 있으니 말 다했다. 본인이 한 “고등학생 정도라면 건전한 이성교제는 가능하다고 본다.” 라는 말에서 고등학생, 건전한 등의 단서까지도 모두 성적 자기결정권에 어긋난다는 것을 김 대변인은 과연 알 리가 없지 에휴.
청소년이 아니라 이 사회에게 의무가 있다
이딴 식으로 연애에 있어 청소년을 비청소년과 다른 무인권적 존재로 다룰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핑계는 공부와 임신이다. 한국에는 아직도 모든 청소년의 본분은 입시공부이고, 그것을 방해할 소지가 있는 공부 외의 모든 일은 본인들의 미래를 위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는 소름 돋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청소년들 다수가 승리할 수 없는 경쟁교육의 구조 자체는 물론, 주거비용이 솟구치고 안정적이지 못한 일자리만 늘어나는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교복 입은 청소년이 손을 잡고 있거나 키스라도 할라치면 엄청난 분노를 표출한다. 학생-청소년들이 무슨 공부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들을 멍청하거나 찌질 한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임신 운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조금 더 짜증난다. 물론 임신이고 뭐고 순수한 ’우리 아이들'이 손잡고, 껴안는 걸 그냥 뒀다가 같이 잠이라도 자면 어쩌냐!...그런 더럽고 입에도 올릴 수 없는 일을!(....우리들도 그래서 태어난 아이들인 게 분명한데......음.....) 식으로 섹스라는 말만 나와도 벌벌 떠는 이상한 인간들이 있다. 그 한편에 그러다 임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 관계에는 권리만 있을게 아니라 책임도 있다고 중얼대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 말한 교총 대변인 같은 인간들이다. 역시 다 권리에 대한 몰이해가 부르는 발언이다. 애초에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책임도 운운할 수 있는 법이다.
청소년은 직접적으로 교칙에 의해 연애를 탄압받는 것은 물론, 원하는 때와 장소에서 사랑할 권리 또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피임교육과 피임기구 제공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임신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공포를 갖는 것이 자기결정권에 중대한 침해임은 말할 것도 없다. 결정권을 제대로 보장하게 된다면 학습노동에서 자유로운 시간, 데이트 할 장소, 피임에 대한 지식과 도구, 임신 후 출산 결정시에 각종 지원 등을 포함한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대체 청소년에게 무슨 책임과 의무를 요구할 여지가 있는가? 당신들이 근대적인 마인드로 '허용'해 주겠다는 소꿉장난 같은 연애뿐 아니라, 섹스와 출산을 포함한 사랑에 관한 포괄적인 권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애초에 우리가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부끄럽게도 권리와 책임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청소년들의 연애와 성행위를 금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임신·출산을 했을 때 필요한 지원을 할 의무가 있다. 한 번에 다 해달라고 하지 않겠으니, 우선은 방해하지나 말아 달라. 우리, 사랑 좀 하자.
덧붙임
우걱우걱 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연애해온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