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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무차차 (착취 받는 가사노동자의 목소리)

나는 나는 세탁기 ……

‘무차차’라는 시를 본 것은 유네스코에서 1995년 세계 관용의 해를 맞아 발간한 인권교육 지침서에서였다. 이 지침서는 <브라질여성>이란 인권소식지 1993년 겨울호에서 이 시를 발췌했다고 했다. 무차차는 ‘소녀’라는 뜻이지만 착취당한 경험에 대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어떤 연령의 여성이라도 상관없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나는 인권교육 프로그램에서 자주 이 시를 사용했다. 이 시를 보여주면서 이 시의 반복어구인 ‘나는 나는’이란 화법으로 우리 사회의 착취와 차별을 고발하는 글을 쓰게 했다. 참여자들은 때론 아이의 눈으로, 지방대생의 눈으로, 또는 저임금 노동자의 눈으로 또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는 나는’의 입장에서 할 말을 가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곤 했다.

“나는 나는”

‘그들/그녀들’로 지칭하는 것이 간접화법이라면, ‘나는/우리는’으로 말하는 것은 직접화법이다. 연대의 화법은 ‘그들은 이주노동자다’가 아니라 ‘우리가 이주노동자다’, ‘그들이 장애인이다’가 아니라 ‘우리가 장애인이다’, ‘그녀가 김진숙이다’가 아니라 ‘내가 김진숙이다, 우리 모두가 김진숙이다’란 직접화법을 쓰는 것이란 걸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소녀이다. 가사노동자라…. 연속극에 등장하는 부잣집에 늘 딸려 나오는 배역으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은 드라마 속이 아니라 참 가까이에 많이 있었다.

소설과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왔던 식모는 어린 시절 앞집 옆집에 다 있었다. 시골서 올라온 어린 소녀들을 거둬준다는 명목으로 데리고 있다 했지만, 그 소녀들은 쉴 틈 없이 몸을 놀려야 했다. 중학시절 부자 친구 집에는 명절 때만 시골의 자식들을 만나러 가는 입주 가정부가 있었다. 그 집에 놀러가면 가지런히 깍은 밤과 사과를 간식으로 내놓곤 했다. 말없이 간식거리를 올려놓고 사라지는 그 아줌마가 어두운 밤 공중전화를 붙들고 있는 걸 봤다. “잘 먹고 잘 지내지? 엄마는 너희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 조금 있으면 눈물비가 떨어질 것 같아 얼른 지나쳤다.

내 엄마가 처음 돈벌이를 나간 일도 가사 파출부였다. 엄마가 가는 날에는 모든 커튼과 이불 빨래를 다 꺼내놓는다고 했다. 잔치를 하는데 종일 일을 한 엄마에게는 먹어보란 소리 한번 안하고 정원의 눈을 치우게 했다는 얘기를 아주 나중에야 들었다. 요즘은 자연스런 영어 과외까지 일석이조이기에 특정 국적의 이주노동자 도우미를 선호한다는 기사를 어딘선가 본 것 같다. 가사분담을 놓고 다투기보다는 일정시간 고용 노동으로 처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맞벌이 부부들도 흔히 보게 됐다. 그렇게 식모, 파출부, 가사도우미, 가정관리사로 이름이 변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거쳐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필수적 단역을 스쳐보듯이 그 ‘일’에 대해 ‘일’로 생각을 안 해왔던 것 같다.

가사노동자 권리 협약 채택

2011년 6월 16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 100차 ILO 총회에서 ‘가사노동자권리협약’이 채택됐다. 그 뉴스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더 놀란 것은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가사사용인’에겐 적용 제외돼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고용·산재보험 등에서도 제외된다는 것이고 일을 하다 임금을 떼이고 모욕을 당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디에 호소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법조문을 읽으면서도 그 ‘제외’라는 단어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기에 그게 안 보였다. 그래서 무지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게 맞을 것 같다. 한국 정부가 협약에 대한 투표를 목전에 두고도 아무런 입장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나 협약을 비준할 가능성이 별로라는 것에 화가 나지만 내 무지에 더 화가 났다.

이번에 채택된 ILO가사노동협약은 가사도우미, 보모, 운전사 등 전 세계 1억 가사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그 권리를 보호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뭐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너무 기초적인 걸 말하는 거다.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에도 다른 부문에서 노동자를 고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급여는 얼마이며 노동시간은 얼마며 등을 명시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충 ‘식구처럼 지내요’로 얼버무리지 말란 얘기다. 또 매주 최소한 하루 이상의 휴일을 보장하는 한편, 노조 결성 등 기본권 보장과 산업재해 때 보상절차도 두도록 했다. 이 협약이 이행되려면 물론 각 국가에서 협약을 비준해야 하고 그 기준에 맞는 국내법을 만들고 실행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상상력과 헌신, 문제의 해결을 도울 수 있다

집안 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무수한 가짓수의 일, 노약자 돌보기, 아이돌보기와 산후관리 등 정말 중요한 일을 왜 ‘일’로 여기지 않느냐, 당연히 ‘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 중요한 일을 남에게 돈을 주고 시킬 때는 고용주로서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이 있다는 것이 이 신생 국제협약의 메시지다.

이 협약의 채택을 위해 싸워 온 아프리카 지역 활동가 비키 칸요카는 이렇게 말했다. “내 국가는 탄자니아이고 가난한 국가이지만 2004년 고용노동규제법에서 가사 노동자를 인정했다. 이 법은 최저임금과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약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보장체계에 가사노동자를 포함하기 시작했다. 상상력과 헌신은 처음에는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의 해결을 도울 수 있다.”

무차차

나는 나는 세탁기
내 몸 값이 세탁기 값보다 더 비싸지 않을 때까지는
주인님이 사지 않을.
주인마님의 시간을 덜어주고
거친 손을 막아주는
나는 나는 세탁기

나는 나는 진공청소기
주인마님이 필요로 하지 않는.
나는 차 청소기
세탁소
환자의 병실
시장 바구니

나는 주인마님의 해방자
바라는 모든 것들로 가득한
단추
나를 눌러만 주세요
나는 더 싸니까 […]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