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인권침해 사례들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에이즈 확산을 촉진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HIV 감염과 같이 사회적으로 낙인 지워지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로서는 단순한 치료서비스 제공자 이상의 역할을 의료인에게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염인에 대한 의료인의 책무를 조금 거창하게 표현한다면 ‘그들 삶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각박한 의료현실, 환자에 대한 의료인들의 우월적 태도 관행, 의료인들의 HIV/AIDS에 대한 지식 및 경험 부족 등의 이유로 의료인들은 감염인의 기대를 종종 저버리는 듯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감염인의 실망과 서운함은 클 수밖에 없다.
A 대학병원의 수술 거부
필자는 지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HIV 감염인 인권실태 조사’를 수행하였다. 이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감염인들이 가장 빈번하게 차별경험을 겪고 있는 일상 삶의 영역은 바로 의료기관이다. 조사 대상자 거의 대다수가 의료기관을 이용하며 진료거부 내지는 회피, 직원의 차별적 불친절, 진료순번 지연, 감염사실 누설 등의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응답결과를 놓고 몇몇 의료계 관계자들은 감염인들의 피해의식 또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일 뿐이지, 실제로는 그리 문제시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항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A 대학병원 감염인 진료거부 사건의 실체와 이 사건을 A 대학병원 입장에서 조명하고자 하였던 의협신문의 불합리한 논리를 냉철하게 돌아본다면 감염인들이 호소하고 있는 의료기관에서의 차별경험이라는 것이 대체로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소재 A 대학병원 의료진이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어느 감염인의 수술을 기피하고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을 유도한 일이 있었다. 감염 예방용 특수 수술장갑이 없고, 담당 의사가 연로하여 면밀한 주의조치를 하기 곤란하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이를 납득 못한 환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금년 7월 초 당사자와 의료계 전문가 등의 참고진술을 토대로 부당한 진료거부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정을 하였다. A 대학병원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차원의 재발방지 대책수립과 소속 의료인에 대한 환자 인권교육이 권고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A 대학병원 측으로서는 못마땅하였던 것 같다. A 대학병원 관계자들은 수술을 해주기 어려운 사정을 환자에게 설명하였고 환자 동의 하에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였던 것이라고 하소연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환자의 자발적 동의하에 전원을 한 것이라도 수술을 기피한 사유 자체가 부당하다면 사건의 본질이 달라질 것은 없다. A 대학병원이 책임 있는 의료기관이자 의료인 교육의 산실이라면 적어도 이번 수술거부 사건과 관련해서는 진지한 사과와 자성의 노력을 보였어야 했다. 또한 이 사건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의료계 차원에서도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제시될 만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A 대학병원이나 의료계 차원에서 이 사건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협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궁색한 논리의 자기방어적인 주장만을 되풀이 하였을 뿐이다.
금년 8월 22일자 의협신문에서는 ‘HIV 감염 환자 수술기피, 의료인만 잘못?’이라는 제목하의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게재하였다. ‘의사도 자신의 생명 보호할 권리 있어’라는 부제만보아도 기사의 의도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실제 기사 본문에서는 감염인 환자의 수술을 기피한 A 대학병원 의료진의 행위가 관련제도 결함의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안전과 건강은 의료인도 누려야 할 기본 권리이며, 질 높은 의료서비스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사도 자신의 생명 보호할 권리 있어’라는 주장은 의료인들의 공감을 얻기 충분하다.
그런데 A 대학병원 수술거부 사건의 본질을 논함에 있어서 의사의 안전과 건강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는 않는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일부 의료진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대다수 의료인들이 공감하고 있는 감성적인 주장을 억지 연결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의사를 옹호하는 것은 의협신문의 대표적인 존재이유이다. 이런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면 다소 무리하고 과격한 논리를 펼칠 수도 있을 법하다. 이를테면 의학적 근거가 조금 미약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의사 과오의 근본원인을 일단 의료 환경과 불합리한 제도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적 기본원리와 의사가 지켜내야 할 직업윤리의 근간을 벗어난 논리를 동원해서는 안 된다.
의학적 원리와 직업윤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1981년, ‘죽음의 병’으로 묘사되며 에이즈라는 질병이 등장하였다. 그 당시 에이즈는 곧 죽음을 의미하였다. 써볼 수 있는 치료약이나 진단기법이 없었으므로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유행의 공포는 전 세계를 떨게 하였으며, 금욕과 콘돔사용이 유일한 방책으로서 강조되었다. 에이즈 환자들의 건강과 인권은 사회의 관심 밖이었다. 심지어 이 병의 확산을 억제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환자를 격리하거나 배제해도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반전되었다. HIV는 생각처럼 쉽게 전파되지도 않으며, 그다지 치명적이지도 못한 것이 입증되었다. HIV에 감염된 환자의 면역기능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전파력도 크게 억제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제의 개발은 에이즈라는 질병의 위세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에이즈는 고혈압,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유지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 버린 것이다.
지난 1985년 우리나라에서 최초 발생되었던 감염인은 현재까지 특별한 건강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배우자에게 HIV를 전파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까지 출산한 에이즈 환자 사례도 이미 적지 않다. 에이즈의 실체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과거의 부정적 틀에 고착되어 있다. 의료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의과대학에서는 에이즈와 관련한 수업을 2시간 남짓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 시간의 대부분을 바이러스 특성이나 임상경과 등을 설명하는데 할애하다보니, 정작 의사로서 꼭 알아야 할 의료행위 중의 전파예방수칙과 관련 법제도 등은 다루지도 못하고 있었다. 에이즈 환자를 접할 기회가 비교적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장항문외과, 비뇨기과 전문의들도 대략 30% 정도만이 에이즈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을 뿐이다. 교육의 기회와 진료 경험이 적다보니 의사들에게 있어서도 에이즈는 여전히 공포와 회피의 대상인 것이다.
A 대학병원 의료진들은 HIV 감염 환자를 수술하는 것이 상당히 위험한 의료행위이고, 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특수 수술장갑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의학적 근거 혹은 교과서적 예방원칙과는 거리가 있는 인식이다. 외국의 연구에 의하면 의료행위 중 에이즈 환자에게 쓰여 졌던 주사바늘, 수술용 칼 등에 의하여 의료인이 상처를 입을 경우 HIV에 감염될 확률이 평균 1/300~1/1000 수준이라고 한다. B형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보다 아주 낮은 확률이다. 의료행위 중 노출사고를 당하였어도 항바이러스제제를 투여하게 되면 감염위험의 80% 정도를 추가적으로 낮출 수도 있다. 수술시 노출사고의 빈도, 최소 10년에 이르는 HIV의 긴 잠복기, 그리고 그저 그런 정도의 치명률까지 고려한다면 HIV 감염 환자를 수술하는 것이 그다지 위험스러운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의료행위 중의 HIV 전파사례는 아직 없기도 하다. 이 정도 위험이 걱정되어 환자 수술을 기피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독감 유행기간 중 개원가는 집단휴진을 하여야 하고 응급실 당직의사는 무장경호원 호위 하에서만 진료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료인 보호를 위하여 수술환자들에게 HIV 검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게끔 제도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교과서상의 의료행위 중의 HIV 전파 예방수칙 즉, ‘보편적 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보편적 주의 원칙’이란 환자들의 실제 병원체 보유상태와 무관하게 온갖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을 하여 환자 체액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가능한 회피하라는 것이다. 특정한 병원체를 갖고 있다고 확인된 환자를 특별히 취급하겠다고 하는 것은 ‘보편적 주의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누가 더 위험한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을 지 완벽하게 확인해 내는 것이 현재 의학기술로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어느 환자를 특별하게 취급하려 할 경우 인권침해 소지에 비하여 예방상 편익은 별로 크지도 않다. 특수 수술장갑이라는 것도 있으면 써봄직한 수단일 수는 있겠지만, 감염인에 대한 수술 등의 의료행위를 하기 위한 전제가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특수 수술장갑이 없다는 것은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A 대학병원 의료진의 주장과 하소연은 인정받기 어렵다.
의료인의 자성과 개선 노력 필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료인은 사회적 낙인과 차별받는 환자들에게 있어 삶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의 건강과 밀접한 사회 환경을 개선하는데도 우리 의료인들이 해야 할 일들은 많다.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병만을 치료하는 소의(小醫)가 아니라 환자의 삶을 고민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도 앞장서는 중의(中醫)와 대의(大醫)의 역할을 해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의료기관에서 만연하고 있는 에이즈 환자 차별 관행은 의료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 의의를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자성과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임
이훈재 님은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