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개인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는 일인 동시에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혼이주여성들은 이러한 기회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결혼이주여성들의 경우 어느 정도 한국사회에 익숙해지면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각자 다양하면서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어떤 필요를 채우려는 마음, 본국에 송금해서 경제적 지원을 하려는 생각, 그리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싶은 바람 등.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개인의 필요를 채우려는 행위를 세상 물정 모르는 낭비벽으로, 본국의 가족들에 대한 염려를 이기심으로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노동이나 사회활동을 통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확인이나 성장에 대한 욕구는 ‘말도 안 통하는데 일은 무슨’, ‘가정을 돌봐야지’라는 말들로 외면해 버립니다. 이렇게 강제된 경제적 무능은 이주여성을 가정에 종속시키고 사회적, 정치적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요즘 다문화강사로 활동하거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 등의 업무를 하는 경우는 그나마 좋은 케이스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직률이 꽤 높았습니다. 다문화교육기관인 이음센터에서 3월에서 5월, 두 달간 이주여성들과 교육을 진행하는 사이에도 두 분이나 그만두셨습니다. 자신의 적성에 맞거나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기보다는 찾을 수 있는 일자리가 이것뿐이어서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생계유지를 위해 좀 더 임금조건이 나은 곳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주여성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선택지는 아주 좁습니다. 영어가 가능한 이주여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저임금의 일시적 노동자가 됩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하층을 형성하는 것처럼 이주여성들 또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이주여성들의 삶의 질이 어떠할지, 어떤 대우를 받을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습니다.
<2009년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현재 이주여성의 36.9%만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결혼이주남성들의 취업률(74.3%)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러한 일자리도 대부분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나 지인 등 개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얻게 된 일자리로 이주여성들의 욕구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적으로도 이주여성들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파악하고 지원하기보다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우리 멋대로 정하고 제공합니다. 그래서 적으나마 본국에서 교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종의 자격을 갖췄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회계사 자격증 따려고 공부하고 있어요. 중국에서 회계사로 일했지만 아무 소용없으니까.” 한 이주여성은 한국에서 다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다문화강사 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회계사 학원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기존에 공부했던 내용과 많이 다르지 않아 공부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면서. 이주여성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건 입국 초기에는 언어 문제에서 발생하지만, 이는 체류기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경력에 대한 불인정, 무조건 ‘대졸’이라는 자격제한을 두는 구인행태 등 다른 일자리에 접근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현재의 고용구조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주여성들에게 일자리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사회적응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이주여성들의 욕구와 필요에 맞는 지원이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의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교육은 우리 사회의 통념과 요구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문화강사, 네일아트, 미용, 제과 제빵교육, 산모 도우미 등등. 결혼이주여성의 숨은 능력을 한국사회에 펼칠 기회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정책들이라는 것이 어찌나 이다지도 성 역할에 충실하면서 이주여성들의 노동력을 헐값에 이용하려는 속내가 빤한지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한편, 기업에 이주여성들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좋은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하루는 이음센터 교육을 갔는데 일전에 그만두신 결혼이주여성이 와 계셨습니다. 모 은행의 유니폼을 입고 다른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들로부터 어떤 신청서를 받고 계셨습니다. 작성이 완료된 신청서와 신분증 복사본을 맞추어 챙기는 중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신 것을 축하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환전 업무를 하는 줄 알고 갔는데 영업을 하라고 해서 너무 힘들어요.” 주변의 베트남 여성들을 상대로 영업하고 실적을 쌓아야만 하는 상황이니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은 적성에 맞고 보다 삶을 다채롭게 느끼게 해줄 일자리를 찾았는데, 정작 기업(시장)의 속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부류의 고객을 유치할 새로운 도구를 찾은 것이 아닐까 착잡해집니다.
다문화 교육을 통해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만 줄인다고 해서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이 줄어들까요? 이주여성들이 느끼는 소외와 차별을 감소시킬 수 있을까요? 이주민들의 한국사회 적응과 사회적 평등은 다른 말이 아니지 않나요?
덧붙임
묘랑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