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한 상황이어서 인권위에 긴급구제조치를 요청했지만 기각되었고, 그후 환자가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지금도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진주의료원 폐업’사건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려고 하면서 강제퇴원을 종용해서 많은 환자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에 위협을 줄 수 있다며 보건의료노조를 중심으로 3월 26일 인권위에 긴급구제요청을 했다. 하지만 4월 4일 인권위 상임위원회(긴급구제조치는 상임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진주의료원의 환자 강제퇴원이 긴급구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3월 27일 조사관이 인권침해 실태조사도 했지만 상임위는 이를 기각했다.
48조의‘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발생의 우려’라는 것은 사실상 생명의 위협이나 건강악화와 같은 다시 뒤로 되돌려 놓을 수 없는 일들을 말하는 것이다. 긴급구제를 진정한 환자 3명과 그의 가족 5명과 연명한 당사자들이 보았을 때, 지금 병원을 옮기거나 치료를 중단할 경우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는 여러 조건에 대한 고려와 판단이 있기에 긴급구제를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긴급구제 요건이 안 된다고 했고, 진정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사실 최근 인권위가 진정사건을 받아놓고도 1년~2년이 넘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경우도 숱하다. 이렇게 민감한 경우는 아마도 사건이 다 종료된 후에나 결정을 할 가능성도 높다.)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폐업이 발표된 후 다른 병원으로 옮겼던 환자 가운데 사망자는 5명이라고 한다. 인권위가 인권침해 사안을 외면했기에 결국 환자 5명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 즉 사망에 이르렀다. 이들 죽음에 대해 인권위는 이제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인권위는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발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환자 생명보다 정치권 눈치를 본 현병철과 상임위원들
이러한 상임위원회의 결정을 그냥 판단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아 넘기기에는 사안과 진정주체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진주의료원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고 민간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진주의료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면서도 외면한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상임위원 구성으로 봤을 때, 상임위원들은 사람의 생명 존중 같은 인권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칠 영향 같은 정치적 고려를 한 것이라 할 수 있다.(현재 상임위원회는 현병철 위원장과 새누리당이 추천한 홍진표, 청와대가 추천한 김영혜,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장명숙으로 구성되었고, 이번 결정에서 1명만이 긴급구제를 해야한다고 했다.)
게다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교체하려는 박근혜정부의 시도는 현병철 위원장이 대통령-행정부의 눈치를 더욱 보게 만들었다. 실제 청와대가 3월 중순 현병철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를 권고했고, 3월 26일을 돌연 위원장을 계속 하라고 현병철 씨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고 한다. 물론 독립적인 기구장에게 청와대가 사퇴압력을 행사한 것은 그 자체로 부당한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현병철 위원장이 청와대-행정부의 눈치를 보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는 점이다.(아니면 그러한 효과를 노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 결과 4월 4일 인권위는 긴급구제 진정을 기각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해서 현재 보건복지부도, 청와대도 어떠한 입장을 내고 있지 않으며, 사실상 폐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실정이니, 어찌 행정부의 눈치를 보는 인권위가 긴급구제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현병철, 홍진표 상임위원 등이 지키려고 한 것은 환자의 목숨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자신의 입지-자리였던 것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4월 23일 진주의료원에 현재 입원해 있는 환자는 9명이고, 전원·퇴원 환자는 192명이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노력을 인권위가 할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인권위가 자성한다면 폐업 조치 중단이나 퇴원 유보에 대한 긴급구제조치를 홍준표 경남도지사나 박권범 병원장 직무대행에게 권고할 수 있다. 인권위법상 누군가의 진정이 없어도 인권위의 판단만 있다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법에 있는 긴급구제관련 조항과 규칙
▴ 국가인권위원회 법
제48조(긴급구제조치의 권고) ①위원회는 진정을 접수한 후 조사대상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계속중에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발생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진정에 대한 결정이전에 진정인이나 피해자의 신청에 의하여 또는 직권으로 피진정인,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다음 각호의 1의 조치를 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개정 2005.7.29>
1. 의료, 급식, 피복 등의 제공
2. 장소, 시설, 자료 등에 대한 실지조사 및 감정 또는 다른 기관이 하는 검증 및 감정에 대한 참여
3. 시설수용자의 구금 또는 수용장소의 변경
4.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의 중지
5.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되는 공무원 등의 그 직무로부터의 배제
6. 그 밖에 피해자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②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당사자 또는 관계인 등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과 명예의 보호 또는 증거의 확보나 인멸의 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관계인 및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그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 국가인권위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조사구제 규칙
제36조(긴급구제조치) ①진정에 대하여 법 제48조에 의한 긴급구제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또는 법 제60조에 정한 행위가 발생한 경우 인권위원 등은 즉시 그 사유 및 필요한 긴급구제조치 또는 필요한 조치의 내용에 관한 안건을 작성하여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하 “위원장”이라 한다)에게 보고한 후 상임위원회에 상정하여야 한다. <개정 2009.9.3>
②상임위원회는 제1항에 의하여 안건이 상정된 경우 지체 없이 법 제48조제1항 또는 제2항에 정한 조치가 필요한지 여부 또는 필요한 조치를 심의하여 의결하여야 한다.<개정 2009.9.3>
③긴급구제조치를 의결한 경우에는 진정인, 피진정인, 그 소속기관. 단체 또는 감독기관에 긴급구제조치통보서를 즉시 송부하여야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인에게도 송부할 수 있다. 다만, 긴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내용을 미리 구두로 통보한 후 문서를 송부할 수 있다.<신설 2009.9.3>
제48조(긴급구제조치의 권고) ①위원회는 진정을 접수한 후 조사대상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계속중에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발생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진정에 대한 결정이전에 진정인이나 피해자의 신청에 의하여 또는 직권으로 피진정인,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다음 각호의 1의 조치를 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개정 2005.7.29>
1. 의료, 급식, 피복 등의 제공
2. 장소, 시설, 자료 등에 대한 실지조사 및 감정 또는 다른 기관이 하는 검증 및 감정에 대한 참여
3. 시설수용자의 구금 또는 수용장소의 변경
4.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의 중지
5.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되는 공무원 등의 그 직무로부터의 배제
6. 그 밖에 피해자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②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당사자 또는 관계인 등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과 명예의 보호 또는 증거의 확보나 인멸의 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관계인 및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그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 국가인권위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조사구제 규칙
제36조(긴급구제조치) ①진정에 대하여 법 제48조에 의한 긴급구제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또는 법 제60조에 정한 행위가 발생한 경우 인권위원 등은 즉시 그 사유 및 필요한 긴급구제조치 또는 필요한 조치의 내용에 관한 안건을 작성하여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하 “위원장”이라 한다)에게 보고한 후 상임위원회에 상정하여야 한다. <개정 2009.9.3>
②상임위원회는 제1항에 의하여 안건이 상정된 경우 지체 없이 법 제48조제1항 또는 제2항에 정한 조치가 필요한지 여부 또는 필요한 조치를 심의하여 의결하여야 한다.<개정 2009.9.3>
③긴급구제조치를 의결한 경우에는 진정인, 피진정인, 그 소속기관. 단체 또는 감독기관에 긴급구제조치통보서를 즉시 송부하여야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인에게도 송부할 수 있다. 다만, 긴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내용을 미리 구두로 통보한 후 문서를 송부할 수 있다.<신설 2009.9.3>
2008년, 이전의 긴급구제 결정들
인권위가 긴급구제 결정을 제대로 내려 본 일은 많지 않다. 특히 보수정권 등장이후, 정부나 대기업이 추진하는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서는 거의 기각이 났다. 2009년 쌍용차 파업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식수와 의료가 공급되지 않아 이에 대해 긴급구제조치 결정이 난 적이 있다.현병철이 취임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다. 그때 회의록을 보면 식수 및 의약품 지급을 막는 것을 인권침해이지만 회사측이 협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 섞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인권위 상임위원들은 "인권침해 여부는 인권위가 결정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것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긴급구제 결정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상반되는 결정을 한 것이다.
물론 이번만이 아니다. 2010년 철거반대를 하던 칼국수집 두리반 건물에 회사가 단전조치한 사안에 대한 긴급구제 요청도 한번은 “한전은 대상이 아니라며” 각하하고, 다른 한번은 “발전기를 돌리면 된다‘며 각하했다. 2011년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중인 김진숙 씨에게 전기공급을 중단한 것도 한번은 ”긴급한 상황은 해소됐다“며 기각하고, 다른 한번은 ”위법한 농성자에게 무슨 인권이냐“며 기각했다.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 인권위가 입장을 내는 것을 꺼려한 결과이다.
인권위가 민감한 사안임에도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긴급구제 조치를 결정한 사례가 2008년에 있었다. 2008년 5월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림부 토르너(네팔) 위원장, 소부르 압두스(방글라데시) 부위원장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체포된 것은 표적단속이며, 단속과정에서 폭행사실이 있는 등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진정하자, 인권위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게 인권위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강제퇴거명령서의 집행을 유예하라고 긴급구제 조치를 권고했다. 한국 땅에서 강제추방되고 나면 인권침해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법무부는 이를 무시하고 5월 15일 바로 강제추방을 했다.
또 다른 의미 있는 긴급구제조치는 “2008년 8월 진정인 박 모씨가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에 반대하는 취지로 서울공항 정문 건너편 인도에서 2008. 8. 5. 일출에서 일몰 시간까지 약 50여 명이 집회를 한다는 내용으로 2008. 7. 31., 8. 2., 두 차례에 걸쳐 성남수정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했으나 불허 통보를 받은 사실에 대해 긴급구제”를 요청한 사건이다. 인권위가 당시 긴급구제 조치를 결정한 이유는 첫째, 집회 개최일 하루 전인 8월 4일 금지 통고를 한 것은 집회 신고자가 이의신청을 통해 권리구제를 받을 가능성을 위법하게 침해한 것이며, 둘째, 시설보호요청으로 든 군사시설이라는 것도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집회로 인해 군사 시설이나 군 작전의 수행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지도 않다는 점, 셋째, 과거 불법집회시위 전력만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명백한 것이 아니므로 자제되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정말 신속하고 인권적 관점이 있는 결정이었다. 진정 조사가 이루어지더라도 집회 날짜가 지나면 효력이 상실되는.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이라 의미가 없기에 8월 4일 긴급구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근본 질문을 던질 때
그런데 지금은 환자들이 목숨을 눈 앞에 두고도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발생’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 한심하다. 아무리 권력의 눈치를 보더라도 어찌 이럴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듯 긴급구제 결정이 인권위원들의 고무줄처럼 자의적인 기준으로 좌우되는 일을 막으려면 제대로 된 인권위원을 임명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도 기대할 수 없는 게 현병철, 홍진표, 한태식 같은 무자격자들을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임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원 선출과정을 바꾸지 않으면 답이 없다. 더구나 최근 박근혜 정부가 김진숙 씨 긴급구제를 반대하면서 막말을 한 한태식 인권위원을 연임시킨 것으로 보아 인권위 제자리 찾기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인권위의 긴급구제 기각 결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인권위의 결정은 단지 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 목숨과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만든 국가인권기구에 권력 근처에서 기웃대는 날파리떼가 넘쳐나면서, 인권위가 더이상 '인권의 (場)'이 아닌 '국가관료의(場)'으로 이동하고 있음이 반복되는 결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인권운동진영은 현실적 대응을 하면서도 근본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인권위의 재구성은 가능한가?, 인권위의 재구성이 가능한 조건은 무엇인가?라고... 이는 단지 인권위만을 둘러싼 싸움으로 인권위가 바뀌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며,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