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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공룡트림] 평화를 평화롭게 이야기하기

누구나 평화는 소중하다고 한다. 다만 무엇이 평화인지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올해로 정전 60주년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전쟁이 없었으니 우리사회는 평화로운 걸까? 한편으로 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 평화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맨 앞줄은 전쟁이지 않을까.

그래서 평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전쟁을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를 극대화하면서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웃고 울고 성내고 토라지면서 다양한 삶의 문양이 완성되어 가는 것, 그 자체로 소중한 삶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전쟁의 역사를 말하다

『히로시마,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나스 마사모토 글, 니시무라 시게오 그림)은 역사를 통해 전쟁과 핵무기의 공포를 전해준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날 사라져간 많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인 소년 타로의 영혼이 우리를 히로시마로 안내한다. 1800년대 후반 히로시마는 상업과 교육, 정치의 중심도시가 되면서 군사기지로도 개발이 되는 배경과 함께 히로시마 오타 강가 사람들의 풍경이 이어진다. 뗏목을 타고 고기를 잡기도 하고 수영을 즐기기도 하는 평화로운 일상이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마을에 군대가 들어오고 방공훈련이 시작되고 원자폭탄 투하까지.

그런데 이 책은 세계 최초 원자폭탄 투하라는 끔찍하고도 어마어마한 일을 꽤나 담담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다. 그림책 중간 중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국제정세와 연표, 1939년 미국과 영국의 ‘맨해튼 계획’이라 이름 붙은 원자폭탄 공동개발계획과 추진상황 등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핵폭탄의 원리와 상세 해부도는 물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 ‘에놀라게이’와 당시의 핵폭탄이 1조 4천억 칼로리의 에너지를 내뿜었고 이로 인해 얼마나한 사람들이 죽었는지 구체적인 통계치를 제시한다. 물론 이런 정보들은 매우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다. 언제 어떤 세계사적 사건이 발생했고, 유엔은 어떤 활동을 했으며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도별로 조목조목 정리해준다.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질병들까지 백과사전식으로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다.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다 책을 덮을 즈음엔 핵폭탄의 위력에 놀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권력에 눈 먼 자들의 욕심이 불러온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삶을 앗아갔는지 살필 겨를을 주지 않는다. 숫자로 환산된 사람의 생명, 피해지역으로 퉁 쳐진 삶의 반경은 평화의 소중함이라는 울림이 아니라 하얀 종이와 검은 글자로만 인식된다. 원자폭탄 피해자 타로의 영혼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타로는 자신의 삶은 어땠는지, 어떻게 느꼈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은 채 해설자로만 머물러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전쟁지역 아프가니스탄의 봄

그에 반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고바야시 유타카 글, 그림)은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의 파구만 마을에 사는 야모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면 테러범을 떠올리기도 하고 언제나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나 여기 파르만의 봄은 자두나무, 벚나무, 배나무, 피스타치오 나무로 꽃동산을 이룬다. 야모의 형 할룬은 전쟁터에 나가 내년 봄이면 돌아올 것이다. 야모는 형 대신 아버지와 도와 자두와 버찌를 팔러 나간다. 야모가 당나귀 뽐빠와 함께 버찌를 파는 시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신발가게, 채소가게, 빵가게, 물건을 사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 등 시끌벅적한 시장 풍경. 자두와 버찌를 팔아 번 돈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 한 마리를 사서 ‘바할’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바할은 ‘봄’이라는 뜻으로 형의 안전한 귀환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일 터다.

꽃동산을 이룬 파구만의 자연에서,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시장에서 느껴지는 활기 속에서 그리고 야모와 아버지의 미소가 바로 평화라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가끔은 평범하게만 느껴지고 때로는 지루하고 심심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해 겨울, 마을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가슴 서늘한 마지막 한 장은 우리의 일상이 실은 그 자체로 얼마나 소중한지, 왜 평화를 잘 지켜야 하는지 속삭이듯 마음으로 스며든다.


유쾌한 전쟁이야기? 평화이야기

『히로시마』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이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인데 반해 『고릴라왕과 대포』(나마치 사부로 저)는 유쾌한-전쟁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호탕한 웃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뽐내기 좋아하는 고릴라 왕이 이웃마을로 산책을 나가자 그 마을 원숭이들이 모두 숨어버린다. 아무도 고릴라 왕에게 인사를 하지 않자 왕은 ‘괘씸한 녀석들’이라며 이를 혼내주기 위해 이웃마을을 공격하라고 명령하고 이에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다. 그런 이유로 다른 사람을 괴롭혀도 되는 걸까? 우리의 공격이 정당한 것인가? 우리는 고릴라 왕에게 이런 지시의 부당성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까? 왕을 거역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기지를 발휘한다. 대포 안에 대포알 대신 구운 빵과 귤, 오렌지를 넣어서 쏘아 올렸다. 고릴라 왕이 선정을 베푸는 것이라 생각한 옆 마을 사람들은 이후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고릴라 왕은 유쾌하게 산책을 한다. 평화를 평화롭게 지켜낸 이들의 지혜에 덩달아 유쾌해진다.

전쟁이든 다른 문제든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을 보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그 부당한 횡포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전쟁을 막거나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고릴라왕과 대포』를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그리고 우리의 대안을 찾아보자. 거대한 권력의 명령과 지시에 '노~‘라고 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상상해보자.
덧붙임

묘랑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