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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의 인권이야기] 버스를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것이 인권 보장이다

*5월 10일 전주에서 열린 버스노동자 쾌유기원 노동자결의대회에서의 연대발언을 일부 수정한 내용입니다.

어젯밤에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 농성장에서 1박을 하고 날이 밝아 농성장을 청소하려니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광장 잔디 사이사이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잔디에 물을 주는 소리였죠.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설들이 필요하겠거니 하다가도 잔디는 정말 아끼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 2011년 전주버스파업 당시 버스노동자들이 이곳에 농성장을 설치해 장기간 투쟁을 하며 잔디 일부가 숨이 죽어 노랗게 되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 이후에 시청이 노조에 손상된 잔디를 배상하라고 요구한 걸로 기억합니다. 전주시나 전북도가 잔디를 가꾸는 것만큼만 시민의 인권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고 했다면 버스노동자가 2400원, 800원 때문에 해고되는 일, 해고된 노동자가 부당해고 판결을 받기 10시간을 앞두고 자신의 일터에서 자결을 시도할 일도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권과 관련된 국제적 기준들 중에 인권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존중, 보호, 실현’의 의무입니다. 존중의 의무는 인권을 침해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숨 쉬며 살아가는 데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죠. 보호의 의무는 제 3자에 의해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현의 의무는 인권이 충분히 실현되고 향상되도록 목표 설정과 실현을 위한 합리적 계획을 조치하라는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그 의무당사자입니다. 더군다나 전주 시내버스 5개사가 전주시 등으로부터 2012년분으로 보조받은 지원금은 180억 원이 됩니다. 이 막대한 세금을 지급했다면 관리와 감독을 하는 게 당연합니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버스 회사가 임금 채불, 부채 등으로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주시는 보조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감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버스회사들이 적자여서 현금보존이 더 안 되면 운행을 못하겠다면서 시청과 시민을 상대로 협박을 하는 지경입니다. 시내버스를 틀어 쥔 버스회사들이 이토록 배짱을 부리니 노동자들에 대한 자세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장시간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며 온갖 징계, 회유와 협박으로 인격을 짓밟고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신성여객 회장은 버스노동자의 자결을 두고 ‘누가 죽으라고 했냐, 왜 회사에서 죽었냐’고 당당하게 말한 것이겠죠. 버스회사의 패악은 그대로 두면서 노조탄압 등은 방관하고 노동자들이 시가 책임지라고 농성을 하니 만 하루도 안 되어 천막을 철거하라는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보냈습니다.

교통을 책임지는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것은 교통의 공공성 또한 위협과 연결됩니다. 시민들은 세금과 인상되는 버스요금을 감당하면서도 앞서 말한 것처럼 버스운행 중단 협박을 받고 불편하고 복잡한 시내버스를 그대로 타고 있습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도입도 하루 이틀 밀려나고 있습니다. 오직 버스회사들만이 이익을 두둑이 챙겨가고 있고 전주시는 이를 묵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집회 무대 뒤로 보이는 전주시청 정문 위엔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라고 쓰여 있습니다. 대체 뭐가 한국적인 것이라는 걸까요. 의무당사자인 행정이 인권 문제가 생겼을 때 시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며 책임을 다하지 않고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것이 한국적인 것이라면 가장 한국다운 시청이 전주시청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전북대안언론 참소리

▲ [사진 출처] 전북대안언론 참소리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의무, 시민들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전주시의 시내버스 정책을 그대로 놔둘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버스공영제를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전주 5개 시내버스 회사 중 4곳이 빚으로 가득한데다 부채 규모도 2013년 -216억 원으로 증가했다니 빚으로 버스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시민들의 버스요금과 세금으로 버스회사가 운영되고 있으니 이미 공영제나 다름없습니다. 소유의 방식만 바꾸면 공영제가 실현되는 것이겠죠. 물론 공영제가 버스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불투명한 보조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회 공동의 합의에 의해 운영하다보면 교통의 공공성을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전주시는 우선적으로 신성여객에 대한 관리감독 시행과 면허권 취소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병상에 누워계신 신성여객 노동자와 해고자들을 위한 전주시의 책임입니다.

사유화 되었던 공공재를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권리가 단 한 번도 그저 주어진 게 아니었던 것처럼 행정이 인권에 대한 의무를 다하게 하는 것 역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비롯하여 앞으로도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연대하여 버스노동자들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전주시가 인권 보장의 의무를 다하도록, 또한 정치적 책임이 있는 이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도록 함께 싸워갔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임
전주의 신성여객이란 시내버스 회사에서 해고된 노동자 한 분이 4월 30일 오후 11시 30분 경 회사에서 자결을 시도하였고 현재까지 의식불명인 상태입니다. 자결 시도 이후 10시간 뒤인 5월 1일 오전 9시 30분, 행정법원에선 이 분의 해고가 부당해고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현재까지 전주시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히고 있고, 회사는 부당해고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했습니다. 버스노동자들은 당사자의 쾌유와 노동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매일 전주 도심에서 삼보일배를 올리고 있습니다.
덧붙임

채민 님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