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을 신고 올라간 하늘에서 당신은 어떻게 지내나요?
그곳에선 당신이 생전 좋아했던 요플레와 과자들을 누군가의 허락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나요?
그곳에선 터무니없이 크거나 작은 옷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이 쓰여 있는 옷이 아닌, 당신 몸에 꼭 맞는 예쁜 옷들을 입고 있나요?
그곳에선 당신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느 방에 가둬놓거나, 당신이 잠깐 민감해져 하는 행동들을 훈육이랍시고 때리지도 않겠죠?
누군가는 함박눈이 내리길 기다리며 거리의 반짝임을 즐길 2014년 12월 25일,
시설에 살던 당신은 의문의 외력에 의해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갔지요.
그리고 그 후 당신의 눈에 있던 큰 상처와 몸 곳곳의 얼룩진 피멍을 발견하고 나서야,
온 땅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1월, 당신이 힘겹게 눈을 감고 난 뒤에야,
세상은 당신이 시설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눈을 감은 뒤 80여 일이 지남에도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시설이 산에 위치한 탓에 매 겨울이 참으로 추웠을 당신을 냉동고에 오랜 시간 두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 시린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시설에서 어떤 힘에 의해 쓰러져 머리를 다쳤는지 이유도 모른 채,
당신의 죽음에 동조한 이들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 채 당신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애태우던 경찰수사결과가 100여 일만에 나왔지만,
당신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알 수 없이 폭행 혐의로 시설 생활재활교사 9명이 입건되었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다만 새로운 사실은 2014년 10월에도 시설 생활재활교사의 폭행으로 인해 한 명이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설은 구조적으로 폭행이 용인되고, 일상화되어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허무함과 피울음을 삼키며 당신을 하늘로 편히 보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4월 20일 아침에는 하늘이 울부짖는 양 비가 내렸지만, 당신을 봉안시설에 모시러 갈 때가 되니 우리들 머리 위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떨어진 꽃잎들이 날렸습니다.
추운 곳에 너무나 오랫동안 있던 당신이 마지막으로 따뜻한 봄을 보고 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3일간의 장례투쟁은 저에게 많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시설 안에서의 사고사를 단순히 우연한 사고로 볼 수 있는가?
왜 우리는 매일 사고·사망소식을 접하면서도 시설에선 몇 명이,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는가? 이것을 ‘개인들’의 죽음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시설에서 사람들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들은 당장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그 공간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가?
앞으로 제가 해야 할 활동, 해바라기 대책위의 활동은 이러한 물음에 답을 해가는 과정이 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시설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조용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이 세상에 우연한 죽음은 없다는 것을 세상에 끊임없이 던져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시설인권을 이야기할 때는 오늘의 시간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2015년 5월 4일
아라 올림
고인은 인천 해바라기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하시다 2014년 12월 25일 의문의 외력에 의해 의식불명에 빠져 사경을 헤매다 2015년 1월 28일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인천 해바라기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인 의문사 대책위(이하 대책위)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보건복지부, 인천시, 옹진군의 책임있는 조치를 위해 83일 동안 장례투쟁을 진행해오다 지난 2015년 4월 20일 고인의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이후 대책위는 아직 모두 밝혀내지 못한 고인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과 해바라기의 시설폐쇄 및 거주인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및 정책수립을 위한 운동을 전개해갈 예정입니다. 장기화된 장례투쟁으로 현재 장례비 및 앞으로의 활동에 필요한 기금이 모자란 상황입니다. 조금씩 마음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모금계좌 : 국민 488401-01-229807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모금계좌 : 국민 488401-01-229807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덧붙임
조아라 님은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