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자원활동가 모임을 참여하게 된 김형수입니다.
거의 3년 만에 사랑방에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랑방에 오게 된 건 2010년 3월이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사랑방에 이름만 걸어두고 밥과 술만 얻어먹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군대를 가고 이번에 다시 돌아오게 됐습니다. 돌아오기 전에 뭘 한 것이 없으니, 돌아온 게 아니라 이제 첫걸음을 뗀 거라고 봐야겠죠.
저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마 ‘왜 난 사랑방을 다시 나오게 되었는가’ 일 거예요.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마음에 새겨진 사랑방의 모습은 사람이 모여 있다는 점이에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겨 사람인 이유만으로 사람을 높일 줄 아는 것, 아마 그게 존엄이라면 사랑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존엄을 삶에서 나름대로 풀어내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이게 저에게 왜 중요했냐면, 최근 한국 사회가 사람을, 제 자신을 괴물로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이게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일어나도 되는 일인가’ 싶은 것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나요. 너무 많이 일어나서 웬만한 것들은 별로 심각해 보이지도 않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수많은 사건과 사고, 사태와 참사 속에서 제 스스로 일어나선 안 될 일들에 피로도를 느끼고, 신문과 뉴스를 멀리하게 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사람으로 살 수 없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감각해내고 있는지가 제가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인 것 같았어요. 다른 사람의 아픔과 문제에 무감각해지고, 어느새 내 일상을 핑계로 이익과 탐욕의 노예가 돼버린 괴물이 되지 않아야 되죠. 그런 몸부림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하지 않는다면 폭력과 혐오, 억압과 착취에 침묵과 무관심으로 동조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어느새 침묵과 무관심에서 오는 각종 이익을 얻어먹기 위해 몸부림칠 것 같았어요.
용산과 쌍용자동차 노동자, 강정과 밀양이 끊임없이 제게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세월호는 질문이 아니라 엄중한 경고였죠. 그리고 이제 사람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는 현실의 태풍이 질문을 넘어서 무서운 경고를 끊임없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이 경고 앞에 소심하고, 비겁한 내가 어떻게 사람이 될 것인지 응답해야 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사람방인 사랑방에 붙어 있어야겠다는 나름 소극적 결론을 내린 거죠.
소극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자원활동가 모임을 열심히 하지 않으려고 밑밥 까는 것...은 아니고, 무덤덤하게 살아 온 일상의 관성을 ‘급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없고 스스로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람을 향하고 만나려는 삶이 적극적으로 변하도록 노력해야겠죠. 자원활동 모임도 이전 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겠죠. 이제 첫걸음 떼는 것이니, 조심스럽고 당차게 내딛어 봐야죠.
덧니: 사람을 두고 괴물이란 표현을 쓴게 과했나요? 괴물이 사람을 혐오하는 말로 지칭한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