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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나의 인권이야기] 딸기와 쌀

오지도 않은 봄이라 착각하게 만든 따뜻한 볕에 이끌려 지난 주말 시장에 나갔다. 앗! 딸기 한 팩에 6,000원. 철을 모르는 딸기가 과일가게 앞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이제 다시 시장 여기저기에서 ‘딸기 떨이요’라는 소리가 들릴 철인가 보다.

딸기


2년 전 딸기를 한동안 끊었던 적이 있었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을 막 인터뷰하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담양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어렵게 온 길, 캄보디아에서 온 한 여성 이주노동자를 만났다. 쉽게 물러지는 딸기가 싱싱하고 탱글탱글하게 진열대에 오르기 위해서 새벽 2시부터 시작된 그이의 노동은 저녁 6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 가운데 잠시 쉬는 시간이 있긴 했다. 한 달 364시간의 노동. 그 대가로 100만원에 몇 만원이 더 얹어진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이렇게는 살 수 없어서 다른 농장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어김없이 욕설이 날아들고 머리채가 낚였다. 노동부에 신고를 해도 도움이 못됐다. “미등록”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협박은 다시 그 농장에 눌러앉아 지옥과도 같은 노동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한 소쿠리에 3,000원, 떨이로 사서 신나게 빛의 속도로 해치웠던 그 딸기는 그렇게 나의 식탁으로 왔다. 더 이상 딸기는 예전의 그 딸기가 아니었다.

“한국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하러 오지 않는 곳”

경기도 이천도 갔었다. ‘쌀의 고장’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이천에 논은 없고 새하얗게 비닐하우스가 앉았다. 인근에 있던 농민에게 물었더니 쌀농사를 지어도 돈이 되지 않으니 논을 갈아엎고 그 위에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했다. 점점 더 기업화되면서 이제는 20동, 30동짜리, 100동짜리 비닐하우스 ‘사장님’도 생긴다고 한다.
빚을 내세운 비닐하우스에는 쌀 대신 돈이 되는 작물을 들여왔다. 규모는 점점 더 커지는 데 한 농민의 말처럼 “한국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하러 오지 않는 곳”이 농촌이니, 그곳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왔다. 이주노동자들은 파, 양파, 배추, 미나리, 청경채, 고추… 줄줄이 재배하는 작물들의 이름을 댔다.


한 농민이 쓰러졌다

작년 11월 14일 한 농민이 쓰러졌다. 쌀시장이 관세화로 전면 개방된 첫해부터 밥쌀 수입을 한다고 해 화가 났다. 어느 정부는 쌀 대신 핸드폰을 팔면 된다고 했다. 또 어느 정부는 쌀농사를 짓는 대신에 규모를 늘리고, 기계를 도입해서 돈이 되는 작물을 지으면 된다고도 이야기했다. 농민의 수는 50%로 줄여도 괜찮다고 했던 여러 정부를 거쳤다. 그러니 아스팔트 농사도 신물 나게 지었을 그였다. 다시 상경 버스에 올랐다. 밥쌀 수입 문제를 농민들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던 정부가 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이는 미국과 중국에서 밥쌀 수입을 한다고 결정한 정부에게 소리라도 원없이 지르고 집으로 돌아갈 작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차벽이 가로막더니, 물대포에 의식을 잃었다. 그는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

누군가를 착취해서라도 생존해보라는 정부

쓰러진 그의 얼굴 위에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보고서를 준비하며 인터뷰했던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이 자꾸만 겹쳤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정부가 굳이 목소리를 들어줄 국민이 되지 못했다. 빚을 낼 여력이 있는 농민들은 논을 갈아엎고, 비닐하우스를 짓고, 농장의 규모를 넓히고 기계를 들여와 억지 사장님이 됐다. 이 억지 사장님에게는 고용허가제에 묶여서 저항할 수도 없는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엉터리 계약서와 강제노동은 노동부가 눈감아주면 그만이다. 정부는 농사짓기를 포기하라며, 농촌에서 생존을 이어가려면 또 다른 누군가의 땀과 눈물을 착취하라고 한다. 이게 정부의 농촌과 농민의 생존을 위한 대책이다.

우리 밥상이 누군가의 눈물이 아니라 오롯이 땀과 수확의 기쁨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날이 올 수는 있는 것인지, 농촌을 버린 정부의 총체적 직무유기가 끝날 수는 있는 건지…… 그래도 생각하고 기억한다. ‘한 농민이 쓰러졌지. 그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지.’ 그리고 또 기억하고 생각한다. ‘담양에서 광주시외버스 터미널로 불안한 마음으로 와서 이야기를 쏟아냈던 노동자가 있었지’ 그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또 전하고, 연대하는 것,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이자, 해야 할 일이다.
덧붙임

비파나 님은 국제앰네스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