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병원 노동조합에서는 병동간호사들을 찾아다니며 ‘기본적인 노동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바깥세상에서는 우리를 더 힘들게 하려는 노동개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요. 종종걸음을 걸으며 ‘잠깐만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간호사를 붙잡고 이야기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간호사들이 사직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들을 만나는 길을 누군가가 가로막습니다. 관리자인 수간호사가 퇴근한 시간에 갔는데도, 노동조합을 막아선 이는 바로 ‘의사’였습니다. 그 의사는 “노동조합이 병동에 와서 환자 정보를 보는 것 아니냐, 환자 안정을 위해 나가라”고 난동을 피웠습니다. 이런 의사가 많지는 않지만,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당연히 노동조합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말 하지만 그 의사 자신이 더 소란을 피워댑니다. 이때 가장 곤란해지는 것은 병동간호사일 겁니다. 노동조합은 그 병동에 상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의사는 간호사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할 수 있는 위치이니 쉽게 괴롭힐 수 있으니까요. 결국 노동조합에서는 그 의사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병동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병원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가로막는 가게 사장님, 비정규직의 관리자들이 그 ‘의사’와 같은 이들이겠지요. “우리 회사는 보안 상 외부인 출입금지다.”라는 말들을 꺼내면서요. 실제 보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싸워 이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야 시비를 가려 볼 순 있겠지만, 이후 그 보복은 해당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니까요.
다시 병원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 의사의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간호사들이 더욱더 소침해지고 이제 노동조합까지 부담스러워 할 것이란 생각에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간호사들이 자신의 노동권을 알 수 있는 기회까지 빼앗긴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편 제 3자에게 이 사건을 보고 ‘그 의사가 잘못했다’는 판단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간호사의 인권’과 ‘환자의 인권’의 충돌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권은 그래서 서술형 주관식인가 봅니다.
단순히 ‘A의 권리가 B의 권리보다 크다’는 부등호의 공식은 없습니다. A라는 사람의 이야기와 B라는 사람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겠죠.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인권에 부등호를 집어 넣으려 하고 법적 판단을 내립니다. ‘무단 침입’, ‘명예훼손’, ‘업무 방해’…. 인권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대응해서 다양한 권리 침해가 주장되고 있습니다. 회사의, 사장님의, 관리자의 그러한 권리 침해가 노동자의 인권 침해보다 더 중요하다는 법적 판단들이 슬프지만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인권은 끊임없이 말해야 하나 봅니다.
‘왜 이 인권이 소중한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 권리의 침해는 과대 해석한 것이다’는 말을 가진 자들은 권력의 힘으로 쉽게 증명합니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알릴 수밖에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그 ‘의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 의사의 말이 맞는 게 되어버릴 테니까요. 이다음엔 병동간호사들에게 그 의사가 보복하지 못하는 방법을 고민해야겠지요. 잊지 않고 찾아낼 겁니다. 간호사들이 인권을 모른 채로 병원을 떠나기 전에요.
나무 한그루 없는 평야에 인권이라는 햇볕이 내리쬐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온갖 장애물이 있는 응달의 한 구석은 여전히 인권이 닿지 않는 한겨울일겁니다. 그 응달에 인권의 온기가 닿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덧붙임
영구 님은 대학병원 하루살이 간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