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날 취재차 코엑스를 처음 가봤다. 하지만 코엑스 현관에 들어서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뭔가 불쾌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코엑스는 상당히 깨끗했고, 넓고 화려했다. 정말 매끄러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매끄러움은 대체 누굴 위한 것일까? 우선 행사장을 올라가는 길을 찾는 것이 너무 고역이었는데,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는지 표지판 하나 제대로 붙어 있는 게 없었다. 복도는 지나치게 넓고 길었으며, 화장실 한 번 가려면 온 건물을 뺑뺑 돌아야 했다. 심지어 물을 마실 곳을 찾으니, 안내 직원은 “옆 건물로 가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웅장하고 세련된 건물의 외관과 정확히 반비례하여, 사람에 대한 존중, 친절, 배려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막식 자리에서도 그랬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증진’을 슬로건으로 내건 대회에서, 주최국의 자랑을 듣고 있는 것은 자국 국민으로서도 민망한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축하메시지에서 “과거 한국이 산업화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 국민 의료보험과 같은 사회복지 서비스 확충에 힘을 쏟은 것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떼더니, "지금도 한국 정부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실현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며 한국정부의 정책홍보로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으리으리한 성벽 같은 곳에서, 주최국의 자화자찬으로 시작되는 국제행사에서 진정 오늘날 복지의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가능할까? 이런 시니컬한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그 때, 한 무리의 불청객이 개막식에 난입했다. 매끄럽게 진행되던 개막식을 일순간 소란스럽게 만든 이들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소속의 장애인 활동가들이었다. 그들은 정진엽 복지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자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일제히 무대 쪽으로 달려들어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부양의무제 폐지하라”라고 외쳤다. 당황한 행사 진행요원들은 그들을 완력으로 제지했고, 휠체어를 탄 한 장애여성은 휠체어와 분리된 채 사지가 들려 복도로 내던져졌다.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는 해외 참가자들을 향해 “보건복지 정책 사안과 관련해 당사자들이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것 같다”면서 “행사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것 같다”, “매끄럽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아나운서가 남긴 이 말이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불평하다’, ‘투덜거리다’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컴플레인(complain)'. 아나운서는 끌려 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목 놓아 절규하던 장애인 활동가들의 행동을 이 단어로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축하영상메시지를 타전하고, 복지부 장관이 아름다운 축사의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을 찢고 들어온 이들의 ‘난입’이 해외 참가자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꼈나보다. 그래서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선 그들의 행동은 그저 무례한 불평이고 불만에 불과해야만 했나보다.
해외 참가자들의 ‘엄호’ 로 발언하게 된 장애인
그러나 적지 않은 해외 참가자들의 생각은 장애인들을 끌어낸 주최 측의 의도와는 많이 달랐던 듯 했다. 그들은 ‘세계사회복지대회’에서 자국 복지정책의 문제를 제기하려는 장애인들이 그렇게 무참하게 끌려 나가는 사건이 벌어진 데 경악했고, 그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결국 다음날 몇몇 해외 참가자들의 ‘엄호’ 속에, 전날 벌어진 진압의 문제점을 성토하고, 장애인들의 요구를 명확히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 소식은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 소개되기도 했다. 기자회견 이후 많은 외국 사회복지사들이 이들에게 지지한다는 의사를 전했고, 결국 장애인 활동가들은 폐막식에서 특별 발언을 할 기회를 얻기에 이르렀다. 개막식에서 불청객을 쫓겨난 이들이 폐막식에선 특별 손님으로 초대받은 것이다. 이를 통해 일부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주최국의 자화자찬 잔치로 끝날 수도 있었던 2016세계사회복지대회는, 애초에 발언권이 없었던 장애인과 해외 사회복지인들의 국제연대로 작은 균열이 가해졌다.
이것은 국내 장애인운동에도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다. 공동행동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2년 광화문 지하 역사에 농성장을 차리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잔인함을 지속적으로 성토해 왔다. 장애인 각자의 욕구를 무시한 채 의학적 기준과 한정된 예산에 따라 서비스를 삭감하는 장애등급제, 그리고 가족에게 재산과 소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기초적인 생활보장도 회피하는 부양의무제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외쳐왔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공론장에서 배제된 채 소음으로 처리될 뿐이었다. 지난해 개정 시행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별급여로의 개편 과정에서도, 최근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된 채 몇몇 전문가와 관료들의 논의만으로 졸속 강행되었다. 이것이 한국에서 복지정책이 논의되는 ‘합리적인’ 절차이자 원칙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는 애초에 끼어들어서는 안 될 불순물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개막식에서의 신속한 진압은 주최 측의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외의 사회복지인들은 이 목소리를 컴플레인이 아닌 정당한 발언권을 얻어야 하는 목소리로 인정했다. 이번에 해외 참가자들의 연대를 주도적으로 조직한 영국 사회복지행동네트워크의 레아 마글라질릭 씨는 “이런 대회가 있다면, 장애인단체들이 당연히 초대되었어야 해요.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이용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해결책을 함께 논의해야 하지 않나요? 이용자는 쏙 빠진 대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며, 오히려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개막식 현장에서 발생한 ‘돌발상황’에 처음엔 그저 ‘허허’하고 웃음만 짓더니, 진압이 마무리되자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준비된 축사 원고만 읽고 유유히 사라졌던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계 여러 나라 사회복지인들 앞에서 무례한 장애인들의 난동으로 한국이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합의의 장에서 배제되었던 대중들의 ‘난입’으로 비로소 그간의 위선적인 ‘민주적 합의’의 외피가 벗겨졌다. 그 ‘합의의 배제성’이 폭로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성숙한 사회적 논의의 첫발을 뗄 수 있게 됐다. 그 순간이 바로 복지부 장관의 진짜 업무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국제행사에서 축사나 낭독하다 내려가는 귀빈 행세가 아니라.
덧붙임
하금철 님은 장애인인터넷언론 비마이너 편집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