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국정감사 기간에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질타를 받으면 국가기관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기에 문제를 해결의 한 방도가 되고 한다. 해당 사안이 국정감사에서 잘 다뤄지도록 시민사회가 힘을 보태는 이유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달라지는 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몇 년째 비슷한 질의가 국정감사에서 나오지만 개선되지 않는다.
진정사건 기각․ 각하비율 여전히 높아
국정감사에서 매년마다 지적받는 부분이 진정사건의 기각․각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3년(2013~2015년) 진정사건 평균 처리일수 12일 증가했다. 처리기간이 늦어진 이유로 인권위는 :“다른 필수 업무(직권조사, 방문조사, 실태조사 등) 부담 및 조사인력의 절대적 부족” 등을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문조사나 실태조사는 이전에도 있는 인권위 고유의 업무다. 게다가 직권조사가 줄어들고 있다는 질타를 받았는데 이를 근거로 내세우는 건 듣는 이가 민망하다. 동의될 수 있는 것은 조사인력의 절대적 부족이다. 이는 중앙정부의 책임이 크다. 노무현 정부 때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쳐 합의된 인권위 인력 확충을 이명박 정부가 뒤집었다. 그냥 뒤집은 게 아니라 조직을 21%나 축소했다. 노무현 정부 때 인력을 늘리기로 한 이유는 2008년부터 시행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정기구가 인권위로 된 만큼 장애인차별 진정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인력보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적은 조사인력으로 많은 진정건수를 처리하다보면 처리기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장애인권만을 포함한 모두의 인권이 후퇴하게 만든 사안이어서 수년간 수차례에 걸쳐 국제인권기구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중앙정부는 이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권위는 인력충원을 받기 위해 중앙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조심조심 다루는 경향이 있다. 갈수록 태산이다.
인권위는 인권이 침해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와 사회구성원에 대한 인권교육과 홍보, 인권 증진을 위한 국가인권정책 권고, 국제인권증진을 위한 수임 등의 역할은 한다. 특히 인권침해나 차별 진정사건의 해결은 기존의 권리구제제도로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사로 “빠르고 효과적이며 값싼” 구제절차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법원에 의지하기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에 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의지처’라는 말이 인권위 설립 초기에 나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진정사건 처리가 늦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기각과 각하 처리비율이 높다. 다시 말해 인권침해나 차별 사안으로 다룰 만한 사안이 아니라거나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판단이 늘었다는 뜻이다. 최근 3년 평균 진정사건 처리 건 중 기각이 33%, 각하가 62%다. 구제율은 12.3%(권고, 고발, 합의, 조정, 조사중해결 등)다.
인권위는 각하 사건 중 평균 67%는 조사 중 진정원인 등이 해결되어 진정을 취하하여 종결된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2015년 국정감사결과 시정 및 처리 요구사항에대한처리결과보고서) 그러나 실제 진행을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더 많다. 윤일병 사망사건 진정 때 인권위 조사관이 진정인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 부모가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며 취하를 종용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인권위 각하 사유 중 진정인이 취하한 경우 각하가 된다.(인권위법 32조 1항 8호)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진정한 지 1년이 지나는 동안 조사한번 안하던 조사관이 전화를 걸어 증거가 빈약해 기각될 것 같으니 각하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공동진정을 했던 피해자에게도 전화를 걸어 취하를 종용했다. 물론 나는 조사할 수 있는 데까지 조사를 해야지 경찰의 인권침해가 사라질 수 있기에 증거를 더 찾겠다며 취하를 거부했다. 인권위는 진정 각하 사유 중 진정취하를 제외하고 별도 관리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조사 인력을 확충하지 않고 처리율만을 닦달하거나 인권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반인권 인물이 인권위원으로 있는 현실에서 조사가 충실하게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현재처럼 업무처리율을 높이기 위해 진정취하를 종용하는 관행을 사라져야 한다. 이제라도 인권위는 2013년 국정감사 때 인권위에 촉구한 “진정인에게 진정진행 경과를 안내하고 진술기회를 부여하는 등 진정업무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충 정리한 회의록, 인권위원 익명처리 여전해
인권위는 국가기관이다. 국가기관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절차적 투명성과 공개성이 너무나 없다. 회의록도 제대로 작성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권위가 활동했던 실태조사 결과도 접근하기 어렵다. 국제인권기구에서 한국정부에 보낸 권고 등이 번역돼 홈페이지에 제때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도대체 ‘국가’‘인권’기구라고 하기에는 운영의 공신력을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인권단체들이 요구했던 인권위 회의록(전원위, 상임위)에 인권위원의 이름을 익명처리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회의록 익명처리는 인권위원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떨어뜨리며, 법적 근거도 없지만 아직까지 답보상태다.
게다가 회의록 정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2013년 국감 때 인권침해구제소위원회의 회의록이 지나치게 요약ㆍ정리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을 받았다. 사실 상임위 회의록도 제대로 작성되고 있지 않았다.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인권침해를 다루는 안건에 대해 어떤 근거로 어떤 위원이 어떤 말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것은 이후 비슷한 안건을 다룰 때도 중요하지만 한 나라의 인권기준이 어떻게 인권위에서 만들어지고 적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무자격 인권위원이 늘고 인권위원들의 참석률이 저조한 상태에서 안건에 대한 무책임하고 비인권적인 발언이 늘고 있다. 그런 만큼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하지만 반대로 이를 은폐하기 위해 간략하게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도 국회의원의 발언이 그대로 기록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회의록과 위원의 이름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 않은가.
무자격 인권위원이 최소한 임명 후에라도 인권기준을 공부하고 인권현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회의록의 정확한 공개와 인권위원의 실명 처리가 필요하다. 그러면 적어도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인권위원들이 노력하지 않겠는가.
2016년 국감은 이성호 체제에 대한 평가가 될 것
지난 6년간 인권위의 문제점이 국정감사 때마다 드러났다. 어떤 것은 현병철 체제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이거나 인권에 대한 이해 없는 보수정당의 말도 안 되는 지적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부분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인권위 독립성을 지키지 않고 인권위를 무력하게 만든 현병철 체제로부터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2016년 인권위에 대한 국정감사는 작년 8월 취임한 이성호 인권위원장이 1년간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다. 다시 말해 이성호 체제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인권위원장의 행보를 볼 때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시민사회와의 협력과 소통을 강화하라는 질의나, 위원들의 현장방문이 사회복지 시설에 치중되어 있고 노동 현장이나 인권침해 현장에 대한 방문이 거의 없다는 지적은 이성호 체제에도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작년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의 집회시위의 권리나 결사의 권리가 매우 훼손되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는 동안 인권위는 한국의 집회시위나 결사권에 대한 제대로 된 권고나 의견표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용산 참사,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진주의료원, 밀양 송전탑 건설, 반값등록금 시위 관련 기소 및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등과 관련하여 인권위가 입장 표명 및 조치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아 인권위의 위상이 저하되고 그러니 관계기관의 권고 수용률도 저조하다는 지적을 국정감사 때 몇 년 동안 계속 받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나. 해외에서 특별보고관이 백남기 농민 부검시도를 우려하며 성명을 내는 동안 인권위원장은 물론 인권위도 공식적으로 성명이나 의견 표명 한 장 내지 않고 있다. 심각한 인권침해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인권위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는가.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자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