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신입 활동가가 되면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릴 수가 있다. 예컨대 (물론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까칠(?)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로부터 꽤나 자상하고 깊이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인권운동사 세미나는 신입 활동가 교육의 일환으로 총 5주간 다섯 차례 진행되었다. 주로 인권운동사랑방의 역사를 훑어보고 중요한 시점에 쓰인 문서에 비춰 현재 운동의 전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아무도 모를 거다. 내가 그 시간 동안 속으로 얼마나 ‘아뿔싸’라는 말을 많이 뱉었는지. 고백하건대, 나는 인권운동사랑방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들어왔다. 무지하면 용감하다는 고전적인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인권운동사랑방 입방을 위해 자기소개서 말미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소위 종합 인권단체라 불리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앞으로 자임해야 할 역할과 과제를 고민해보고 싶다’고. 그 원대한 포부가 세미나를 하는 동안 조금은 아득해지는 듯하다가 다시 조금은 선명해지는 느낌. 민망함과 당혹감이 교차했던, 동시에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의 5주가 지나갔다.
진보적 인권운동? 그게 뭐요?
나는 보수적이기보다는 진보적인 사람이고 싶다. 기존의 규범에 순응하기보다는 견고한 틀에 균열을 내는 사람일 수 있으면 좋겠다. 바라건대 사회가 그 균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데 힘을 내주면 좋겠다. 존재의 가치가 자본주의 질서에 의해 정해지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사회 구성원과 안전하게 잘 불화하며 잘 살고 싶다. 이런 나의 지향이 적어도 진보적인 가치와 닿아있다고 생각해 인권운동사랑방이 주창하고 표방해온 “진보적 인권운동”이라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보수적 인권운동 보다는 진보적 인권운동이 어색하지 않다고나 할까? 딱 여기까지가 사랑방 입방 전 내가 가진 진보적이라는 개념에 대한 어렴풋한 기준이었다.
인권운동사 세미나를 하는 동안 많은 문서들을 보았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중요한 운동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92년에 발표된 서준식의 <우리의 인권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와 1998년에 발표된 <진보적 인권운동을 위하여>를 주요한 문서로 읽었다. 그 문서들은 인권운동사랑방의 이념적 지향을 잘 드러냈다.
진보적 인권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모순을 철폐하자는 운동으로도 이해되었는데, 인권운동으로 세상을 변혁시킨다는 발상은 마치 내가 자기소개서에서 밝힌 포부만큼이나 원대하고 패기 넘치게 느껴졌다. 그런 구상이 가능했던 시대적 조건 너머 사랑방만의 독자적인 힘 내지는 자신감(?)의 배경은 무엇인지, 이 단체에 대한 호기심이 상임 활동가 멤버십이 생기기 전보다 확실히 높아졌다. 또한 이미 이십 년도 전에 가진 고민이 여전히 오늘날의 문제의식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경탄과 우울함이 교차했다.
스무 해 넘게 차곡차곡 쌓여온 ‘진보적 인권운동’내지는 변혁운동에 대한 사랑방의 논의는 언뜻 보기에도 치열했지만 한편 여전히 모호하기도 했다. 지난 20주년을 평가하고 전망을 논의하는 문서를 보노라면 여전히 사랑방 구성원들도 헤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여전히 헤매며 추구할 것이 있어 이 단체가 30년을 바라볼 수 있구나 싶었기 때문에. 진보적 인권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발을 들여놓은 신입 활동가는 왠지 모를 안도를 느낀다. 서준식의 글 제목처럼 우리의 인권운동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헤매는 걸 중단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든든함이랄까. 아마도 내 원대한 포부가 실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