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연히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한국일보에서 낸「“장애 있어도 시험지 대신 못 넘겨준다” - 공무원 시험 기회조차 빼앗는 서울시」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은 뇌병변 1급 장애인인 조모씨가 손이 불편하여 시험지를 넘겨 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이것이 현장에서 거부 되어 결국 조씨는 시험을 포기했고, 서울시는 여전히 전향적인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실상을 좀 더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는 다른 기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법률저널에서 낸「“장애 있어도 시험지 대신 못 넘겨준다”는 사실 ‘편파적’」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위 한국일보 기사에 대한 서울시의 해명으로 볼만한 내용이었는데 기사에서 서울시가 조모씨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사전에 신청하지 않은 내용을 현장에서 요구’했기 때문이며 다른 장애인 응시자와의 형평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공고문상 제시되지 않은 내용은 기타유형으로 분류해 지원을 검토하여 결정한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전에 신청’은 어떻게 이뤄질까? 신청에 대한 안내는 적절하게 되는 것일까? 사전에 신청하지 않은 내용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조씨가 응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8년도 서울특별시 지방공무원 제2회 공개경쟁 임용시험의 시행계획 공고를 찾아봤습니다. 공고 중 ‘장애유형별 응시자 편의지원 안내’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장애유형에 따른 편의지원은 원서 접수 시 이루어지고, 이에 대한 안내가 시험 시행 공고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전에 신청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보완 기간 없이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아무리 찾아봐도 ‘법률저널’의 기사에서 서울시가 이야기한 기타유형 분류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공고문상으로는 지원내용을 유형화하여 제시한 후 본인이 ‘신청가능’한 편의 지원내용을 확인하여 신청할 것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시된 ‘신청가능’한 편의 지원내용에 ‘시험지를 넘겨준다’라는 항목은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조씨의 사전대응 과정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전에 추가 편의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한 번 더 문의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공고문에 이미 ‘장애 유형별 편의지원계획 내용을 참조하여 본인이 신청 가능한 편의지원 내용을 확인’하라고 되어 있고, 이 ‘편의지원 기준’ 이 유형화 되어 제시되고 있으며, ‘기타 편의 지원’의 가능성에 대한 안내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아 수험생의 입장에서 무엇을 더 요구하기에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문의를 했어도 공고문 이상의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씨의 추가적인 노력과는 별개로 법률저널 인터뷰 기사를 통해 실제로 공고에서 안내되지 않고 있는 내용의 해명을 한 서울시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미 밝혔듯 공고문 어디에도 개인 맞춤 편의지원을 하는 경우에 관하여 명확히 안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일이 발생한 후 1년이 지난 2019년에 이미 2회차의 시험공고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고를 확인한 결과 관련 내용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올해 서울시가 공고 내용상의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장애인 지원자들에게 추가적으로 개별적 확인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추가적 조치 없이 그대로 시험을 진행하였다면 서울시가 법률저널 인터뷰 말미에 밝힌 “장애인 응시자의 편의제공을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는 것에도 물음표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가 밝힌 ‘타 장애인 응시자와의 형평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현장에서 바로 지원을 결정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련규정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안내도 되지 않았고, 관련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시험에 응시한 장애인이 시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편의지원을 현장에서 요청하였습니다. 좀 더 적극적인 대처를 해줄 수는 없었을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형평성, 그리고 원칙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형평성과 지켜야 할 원칙이 그대로 충분한지 의문을 가져보게 됩니다.
2019년 여름이면 그동안 시행되었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됩니다. 그러나 아직 시행 전이고 이후 무엇이 변할지, 일상에서 다가오는 점은 어떻게 바뀔지 아직까지 명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장애인들의 다양한 욕구와 필요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자원이 그저 산술적으로 공평하게 배분되었다면, 앞으로는 장애인 개별적 욕구를 반영하여 상황에 맞게 지원하겠다는 것일 겁니다. 아마도 형평과 원칙이 재정립되는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 시험편의 지원제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장애인 응시자의 개별적 장애상황에 맞게 지원 될 수 있도록 제도가 세심하게 수정, 설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필기시험에서 합격한다고 해도 면접시험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또 최종합격 후 실 근무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 사회는 모두 개인의 노력과 열정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물론 개인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업무수행을 하고, 본질적인 자격을 확인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시험 과정에서는 편의 지원이, 이후 시험에 통과하여 자격이 확인되었다면 이외의 부분에서는 추가적인 조직과 사회의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향후 서울시 직원채용 과정 및 업무배치 과정에서 전향적인 장애인 지원제도가 고려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