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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회복 그리고 일상

2021년은 정신없이 바빴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우선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오랜 기간 1층 아래에서 지내왔는데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거주환경이 조금 더 나은 공간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묵혀왔던 짐과 가구들을 정리하고, 새로 물건들을 들이고 했습니다. 추억이 담겨있던 수십 년 된 물건들도 있었는데 그만큼 낡아버려서 더 이상 유지 보수가 어려워진 물건들이었기에 정말 아쉬운 물건들은 사진을 찍어두고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사한 새집에는 여러 인테리어 소품도 사고 이렇게 꾸며볼까 저렇게 꾸며볼까 고민도 하고, 여기에는 이런 게 필요하겠다 저기에는 저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꾸몄습니다.

두 번째는 회사일이 많이 바빴습니다. 인력이 부족해지고, 팀 내 여러 갈등으로 인해 막내인 저는 맨 밑에서 갈등의 부산물들 다 받아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해가 끝나가는 12월이지만 여전히 끝은 멀었고, 아마도 12월 마지막 주까지 계속 정신없게 보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 다툼을 피해 보려 물러나 있는데도, 쉽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2021년이 빨리 바뀌었으면 하고, 매번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안고. 회사일은 늘 이런 것일까요? 슬프네요.

올해 이사를 하고,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회사일에 치이면서도 들었던 생각은 ‘건강해졌구나’입니다. 부끄럽지만 제 스스로 어! 나에게 이런 센스가? 내지는 아 맞다! 나 이런 걸 잘했었지. 이런 걸 좋아했었지! 하고 순간순간 스쳐 가는 느낌들. 이 느낌들 속에서 한편으로는 ‘회복’되었구나, 조금은 ‘적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건강하게 앞으로도 너무 ‘완벽’하지는 않아도 잘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 모 드라마의 상황을 빌리자면 ‘구겨졌던 삶이 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한 해를 보냈습니다.


지난 11월 중반 즈음에는 성북 마을 만들기 활동을 하다가 몇 년 전 돌아가신 활동가의 추모식에 참여했습니다. 성북 마을 만들기 활동은 제가 사랑방 활동을 처음 시작한 후 처음 참여하게 된 활동입니다. 추모식에서 과거 활동 이야기를 함께 들었는데 특히 돋움활동가 멤버십 정리를 앞두고 있어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기억과 더불어 성북에서의 일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 이와 더불어 사랑방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한 후의 많은 순간이 생각났습니다.

사랑방에 자원활동을 하려 지원을 하고 상담을 하고, 자원활동으로 장수마을에 갔을 때 그곳이 좋아서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렇게 사랑방 활동에 참여하면서 식구가 된 지 어느새 꼬박 11년이 되었습니다. 물리적 여건이 조금 닿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습니다. 직장을 가진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지금까지도 어렵지만, 때때로 저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었고,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간들 속에서 저는 ‘회복’되었습니다. 그 회복의 많은 기간들을 사랑방 활동과 사랑방 활동가들의 연대가 저를 채워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지난 11년의 기간 사랑방이 그런 힘을 채워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어쩌면 과거 언젠가에도 이런 것, 느꼈을 테고, 앞으로도 또 무엇인가를 잊고 살다가 다시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하게 느끼게 되겠죠.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의 ‘회복’됨이 중요한 것은 저의 사랑방 활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마무리한다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열렬한 사랑방 지지자입니다. 그래도 느낌은 조금 다르네요. 이렇게 저를 세상 속에 잘 안착시키는데 큰 힘이 되어준 사랑방 활동을 마무리를 짓고 제 삶에 점 하나 찍고 간다는 생각이 들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제 저도 마무리와 함께 나름의 새 출발을 할까 합니다. 아 그렇다고 엄청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생활도 건강하게, 일상도 꾸준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 평범하지만 중요한 다짐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삶의 공간이 바뀌었기에 새로운 다짐을 하기에 좋은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하지 못하는 저이지만 건강한 삶을 위한 노력 그리고 일상에서 삶의 존엄함을 지킬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인권운동사랑방을 지지해주시는 후원인분들, 그리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항상 모든 존재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힘쓰고 연대하는 모든 활동가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특히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런 끝맺음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모든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세주(세상을 달리다. 世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