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 행동이 이어졌다. 인터넷에서 “예전보다 나아졌는데 왜 이렇게 시민을 불편하게 하냐”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 경기도에서 서울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때 휠체어 이용자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일상 속에서 숱하게 이동할 때 장애인을 동료 시민으로 마주칠 기회가 이토록 없다는 것은 이동권이 정말로 보장되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했다.
21년 전 시작된 이동권 투쟁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01년 1월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본격화됐다. 그전에도 몇 차례의 추락 사고가 있었지만, 해당 역사에 대한 처방에만 그쳤다. 목숨을 걸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은 개인에게 갑자기 닥친 불행한 사고가 아니었다. 사건의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구성한 ‘오이도역 장애인 수직형 리프트 추락 참사 대책위원회’는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 외치며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를 드러내고 확장했다. 점거, 단식, 농성 수년에 걸쳐 계속된 투쟁으로 서울시에 지하철 승강기 설치, 저상버스 도입 약속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보편적 권리로서 이동권을 세우고 이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새기는 법제정 투쟁을 이어갔다.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이동권을 명시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2005년 제정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21년을 맞는 2022년 이제 대다수 지하철역에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고 저상버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장애인 콜택시도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롭고 안전한 이동권은 보장되고 있나
현재 서울 시내버스 중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저상버스 비율은 이제 절반을 넘는 상황이다. 지역의 경우는 저상버스 비율이 현저히 낮아진다. 이러한 저상버스도 시내버스로만 운행되어왔을 뿐이다. 2019년에야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 시범운행이 시작됐다. 그조차도 2석의 휠체어 좌석을 둔 단 10대를 시범 운행한 것인데, 그중 3대 노선이 운행을 중단해 현재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는 고작 7대에 불과하다. 버스를 이용하여 지역 간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다. 그리고 지역의 경우 유일하게 이용이 가능한 것이 장애인 콜택시지만, 이 또한 관련법에 따라 확보해야 하는 법정대수를 미달하는 지역이 많다. 필요를 뒷받침할 만큼 운영되지 않으니 배차되기까지 대기시간이 오래 걸리고 전날에 예약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위한 개별적 이동수단에 대한 실태조사>는 저상버스 도입률은 높아졌지만 그것이 곧 이동권의 보장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을 드러낸다. 탑승하고 나서 휠체어를 안전벨트에 제대로 고정하지 않아서, 하차 시 경사판과 보도 사이 단 차이가 심해서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승하차 시 경사로를 이용하고 탑승하여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배차 간격을 맞추는 것이 우선되는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하게 된 이유는 고스란히 장애인의 부담으로 떠넘겨진다. “불편한 시선 때문”에 이용을 주저한다는 답변이 여전히 높다는 것은 이동권이 물리적인 교통수단의 확보만으로 뒷받침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2015년 서울시는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도 미설치된 역사가 21곳에 이른다. 이중 5곳은 공사 중이고 13곳은 공사를 예정하고 있지만 3곳은 아직까지 설치를 검토 중이다. 2018년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았던 신길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이는 승강기 도입의 유예가 불편함을 감수하면 될 차원이 아니라 언제든 안전과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월 서울시는 모든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을 2025년으로 미뤘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출발선
21년 전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시혜나 배려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되었다. 위태로운 리프트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일상에서의 이동조차 생존을 거는 문제였다. 또한, 이용 자체가 불가능한 이동이 봉쇄된 현실은 고립과 단절 속에서 생존해가야 하는 문제였다. 이렇게 생존의 문제로 드러내며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의 변화를 향해왔다.
이동할 수 있는 수단만 놓고 말한다면 이전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면 여전히 거리는 멀기만 하다. 모든 지역에서 차별 없는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오랜 투쟁 끝에 작년 말 이동편의증진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저상버스 의무도입 대상에 또다시 시외·고속버스는 제외되었다.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을 확보하고 이를 연계할 이동지원센터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지원은 의무가 아닌 임의 규정으로 뒤바뀌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필수조건으로써 이동권을 권리로 보장한다는 것은 ‘이 정도면 됐다’ 거나 ‘비용을 따지는’ 식의 접근에 한정될 수 없다.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행동에 시민들의 통행을 가로막는다는 비난도 있었다. 언론은 시민과 장애인을 대립구도에 놓은 보도들을 쏟아냈다. 이는 이동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할 시민의 모습에 여전히 장애인은 포괄하지 않는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동권 투쟁에서 장애인들은 온몸으로 싸우면서 끊임없이 말하기를 통해 장벽을 허물며 공간을 열어왔다. 교육을 받고 일을 하며 일상을 일구어가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이동권을, 이를 보장할 국가의 책무를 요구해왔다. 이동을 가로막고 있는 건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는 정부가 아닐까.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출발선을 단단하게 새기는 여정, 이동권 투쟁이 만들어왔고 만들어갈 사회에서 동료 시민으로서 장애인과 함께 마주칠 공간이 더욱 열리고 확장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