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많이 듣던 말 중 하나가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내가 악기를 배우도록 학원을 보냈지만 실은 악기 연주가 목표가 아니라 산만한 아이가 차분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단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음감이 좋다거나 박자 감각이 있다거나 흥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초중고 음악시간은 쉬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고 시험은 모조리 찍었던 기억뿐이다. 그런 내가 독립을 한 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뜬금없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어쩌면 그 시기에 한 번쯤 생각해볼 법한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렇게 베이스 기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밴드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악기, 베이스 기타. 비틀즈의 멤버들 사이에서도 베이스 기타 연주자 맡기 싫어서 누가 할 것인지 논쟁이었다던데. 그런 이유로 나는 베이스 기타가 여러모로 나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둥둥거리는 소리는 없으면 허전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의 하이라이트나 화려한 멜로디를 담당하지는 않는다. 쿵짝거리며 밴드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드럼처럼 리듬을 온전히 주도하지도 않는다. 그저 화려한 연주와 음악의 리듬 사이에서 공백을 채워줄 뿐인 이 악기는 특별한 음감도, 리듬감도 없는 나에게는 밴드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적절한 포지션이었다. 게다가 금드럼 은베이스라 불릴 정도로 귀한 리듬 파트. 밴드 음악을 배우기 위해 동아리에 가입하고 보니 모두가 보컬이나 기타를 원했다. 공연하면 그들이 1곡을 담당할 때 베이스를 맡은 나는 시작부터 5~6곡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음악에 진심인 친구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많이 무대에 오르며 재능 없는 밴드 애호가가 탄생했다.
얼마 전, 나는 베이스 기타를 중고시장에 내다 팔았다. 십수 년 전 월화수목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 쓰고 조금 남은 돈으로 샀던, 누군가와 공유한 적 없는 나만의 베이스 기타였다. 밴드로 밥 먹고 살 일은 꿈에도 없지만, 평생 함께 갈 취미는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좋은 것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샀던 악기였는데. 어느새 그 베이스는 방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생각했다 ‘아,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 이 인질 같은 베이스 기타는 그만 놓아줘야겠다.’
요즘 사랑방 활동을 하면서 어떤 중압감에 대해서 생각한다. 상임활동을 시작한 것만 6년이고 돋움활동가였던 기간을 포함하면 8년이 다 되어간다. 살면서 해왔던 그 어떤 단일한 일보다 오랜 시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질문도 많이 달라졌다. 사랑방은 A를 해야 하지 않나? 사랑방은 B랑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방에서 나를 제외하고, 조직을 대상화하며 질문을 던지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사랑방에서 A를 하고 싶나? 나는 B랑 얼마나 다를 수 있지? 와 같은 질문들을 나도 모르게 떠올린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랑방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다양한 바람과 욕구를 채근하지 않으며 즐겁게 활동해나가는 미래를 상상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조직의 질문, 운동의 질문을 나와 분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나에게 연주되지 않지만,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베이스 기타는 활동가를 수도승이 아니라 다양한 욕구가 있는, 그래서 재능 따위 없어도 취미를 즐기는 여유 있는 사람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부적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크고 무거운 주제에 먼지만 쌓인 이 부적은 더이상 과거에 여유 있던 나를 일깨워주지 못했다. 오히려 활동의 팍팍함에 무언가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임활동을 시작하고 단 한 번도 앰프에 연결된 적 없는 베이스 기타가 무슨 잘못이 있으랴. 부적의 효험이 다한 게 아니라 나의 상태가 달라진 것이 지금의 진실일 것이다. 내가 여유를 놓치고, 욕구와 바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왔고, 지금 느끼는 무게나 압박을 스스로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가늠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지금의 질문을 잘 마주하기 위해 지난날의 내가 상상 속에 그리던 모습과는 그만 단절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악기를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