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후원인 인터뷰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오 님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을 찐하게 함께 하고 있는 동료활동가이지만, 사랑방 후원인이 되신 건 불과 두 달 전인 뉴페이스 지오 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지오 님을 소개할 수 있는 다섯 가지의 키워드가 있다면?
첫 번째는 퀴어이자 여성, 두 번째는 이야기,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애인? 그리고 뭐가 있을까요…. (차별금지법?) 그럼요, 네 번째는 차별금지법이 나와야죠. 지금 중요한 건 차별금지법! 마지막은 주거입니다.
‘이야기’가 주요 키워드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영화나 소설 등 이야기가 담긴 모든 걸 좋아하고,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해요.
행성인에서 활동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제 3년이 되어가네요. 저는 인권운동을 한 건 행성인이 처음이에요. 대학노조에서 1년 정도 일했는데, 활동했다고 하기에는 제가 부끄럽고요. 그전에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도저히 밥벌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때 누군가 저에게 노조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글을 쓰라고 했죠. 말도 안 되지만…. (웃음) 행성인 활동을 제안받고 대학노조를 그만뒀는데, 그때는 미련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는 제 정체성에 대한, 나를 아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행성인은 그 전부터 회원 활동을 열심히 하셨나 봐요.
그렇지는 않아요. 웹진팀은 한 번 갔다가 너무 바빠 보여서 못했는데, 행성인 20주년에 기념사업으로 진행하는 구술작업이 흥미로워 보이는 거예요. 큰 역할은 아니어도 내가 조금 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참여했고요. 그 이후에 송년회도 나가고, 행성인에 얼굴을 비친 게 반년 정도거든요. 저는 활동가 제안이 왔을 때는 전혀 생각도 못 했어요. ‘왜 하필 나한테?’ 다른 사람들에게는 회원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 같아요.
이야기를 쓰는 건 계속하고 싶은 일이신가요?
제가 쓰고 싶은 글은 소설이었는데, 주로 이야기를 채집하는 일을 했어요. 요즘에도 집에 가면 다른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성명서, 보도자료, 보고서, 원고 말고…! 답답함은 살짝 있죠. 그래서 보도자료나 성명서의 언어를 다르게 써보자고 혼자 다짐을 하기도 해요. 좀 쉽게 쓰고 싶은데 일정한 틀이 있으니 완전히 그렇게는 안 되고, 계속 시도 중인 것 같아요.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일상 언어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배제’ 이런 단어를 쓰게 되네요. (웃음)
3년 차 활동가라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는 시기네요.
제가 행성인 활동을 시작한 2018년은 성 평등과 조직문화를 둘러싼 사건이 있던 해여서 외부활동을 전혀 안 했기 때문에 저 스스로는 2년 차 활동가 같은 느낌이 있어요. 2019년도 상반기는 저에게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행성인 활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까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민망하기도 하고. 저는 아직 다른 단체들이나 활동가들과 많은 관계가 없었는데,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회원들도 조심스러워 하는 상황에서 행성인 내부의 동력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지금은 어떤 사안이 생길 때 당시의 경험들이 사장되지 않고 그때의 질문들을 떠올리게 될 때, ‘아 우리가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해요. 조금씩 힘도 생기고.
지오 님의 활동가 3년 중에서 2020년이 가장 좋은 시절인 거네요?
그렇죠. 올해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도 더 가시화되어서 열심히 하고요. 이전에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커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도 그냥저냥 부대끼면서 활동하고 살고 있구나’ 생각해요. (웃음) 내가 조금 실수해도 같이 할 수 있겠구나. 지금이 제일 좋은 시절인 거죠.
사랑방과 행성인의 차이 중 하나는 사랑방이 활동가 중심의 조직이라면 행성인은 회원 체계가 있다는 점일 텐데요, 지금은 회원이 몇 명 정도인가요?
지금은 780여 명이예요. 후원금도 그 정도고요. 다른 단체들은 고액 후원자도 있고 하던데, 저희는 정말 5천 원, 1~2만 원을 내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후원금만 내는 분들도 있지만 활동 회원이 되려면 성평등교육과 행성인 10대 원칙이라는 2가지 의무교육을 들어야 해요. 10대 원칙이 너무 어렵게 들리기도 해서 요즘은 행성인 7대 이슈와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행성인 7대 이슈가 뭔가요?
군형법, 에이즈/HIV, 청소년, 노동권, 트랜스젠더, 가족 구성권, 차별금지법까지 행성인 20주년 당시에 정한 이슈예요. 많은 이슈들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처럼 해당 의제를 다루는 연대체와 연결되어 있고요. 행성인 내부에 팀은 에이즈팀, 노동권팀, 트랜스인권팀이 있고요.
노동권은 행성인에서 주요한 이슈로 정말 꾸준히 활동해온 것 같아요.
행성인은 회원가입서를 받을 때 관심 있는 활동을 체크하도록 하는데, 노동권이 상당히 많아요. 저도 노동권팀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당연히 관심은 많을 수밖에 없죠. 보다 보면 노동권은 모든 영역이나 이슈에 연결되어 있는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정책TF 활동을 하면서 <노동/일의 세계> 보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많이 공부가 되었어요. 어떤 사안 하나하나를 자세히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어떤 이슈를 노동문제와 연결시킬 지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달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어렵기도 했어요. 내가 정책을 정말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요즘 정말 바쁘게 활동하고 있잖아요. 차제연 활동은 어때요?
이제 사람들에 조금 익숙해지고 적응해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생각할 때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기도 하고요. 계속 한정된 자원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각 연대체 안에서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정도로 겹치는 경우가 많고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 나중에 평가해보면 좋겠다는 고민이 들긴 해요. 그런데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고요.
당장 눈앞의 일은 아니더라도 요즘 활동하면서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요즘 고민하는 건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진영을 그대로 둘 수 없을 것 같은데, 성소수자이면서 여성인 활동가들이 다른 선언들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어요. 여성활동가 모임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TERF 진영의 목소리가 계속 커져 왔고, 운동 사회와는 별개로 퀴어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커뮤니티에 있는 레즈비언들을 만나면 TERF 진영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다던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이야기들을 해요. 다른 선언, 다른 활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저에게 여성 활동가들과 많이 일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고요.
코로나19로 많은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운데, 행성인도 풀뿌리 후원 기반이라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행성인에는 아무래도 당사자 회원이 많은데 이분들의 노동조건이 비정규 불안정노동인 경우가 많아요. 행성인도 코로나19 이후로 후원금이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매달 새롭게 후원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적은 데, 해지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그보다 높고. 그런데 ‘행성인이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하면서 후원을 해지하면 죄송하다고 하면 되는데, 회원탈퇴가 아니라 후원 일시 정지를 원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너무 높은 거죠. 얼마 전에는 어떤 분에게 전화가 왔어요. 직장을 잃은 지 좀 됐는데, 후원을 끊고 싶지 않아서 해왔지만 이제 한계라고 너무 미안하다고 하면서 일시 정지를 요청했어요. ‘이 사람을 위해서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노조에는 연대기금이나 특별기금이 있잖아요. 이분들은 단체가 앞에서 잘 싸우라고 후원해주는데, 최소한의 특별기금이라도 있어서 지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도 특별기금이라도 모아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전화를 받을 때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부에서 기업에 거금을 지원하는 거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요.
그런 와중에 사랑방에 후원을 시작하신 거군요.
사랑방에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어요. 행성인이 조직문화점검 할 때도 사랑방에 회의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힘들 때 제일 먼저 떠올리고 기대고 싶은 단체이기도 해서 응원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사랑방은 제가 굳이 후원을 안 해도 잘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고, 또 행성인처럼 다달이 월세를 내는 단체도 아니기도 하고요. 더 열악한 단체도 많고, 제 재정도 열악하고. (웃음) 그런데 사랑방 활동가인 민선이 후원신청서를 건넸을 때에는 후원을 해야겠다 결심이 서더라구요. 민선이 저를 조직했죠.
연대활동가로도, 후원인으로도 만나게 되어서 너무 좋네요.
후원한지 얼마 안됐는데 후원인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래서 전략인가 싶기도 했어요. 지금 인터뷰를 해버려서 후원을 끊지도 못하게. 민선이 치고 들어오고 몽이 쐐기를 박는다는 느낌? (웃음)
사랑방 활동 중에서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있나요?
저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이요. 사랑방 활동가들을 만나면 <인권으로 읽는 세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꽤 있는 것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일주일에 돌아가며 글을 쓰는 프로세스는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그런데 읽고 나면 사랑방 사람들의 내공은 거기에서 나오는 건가 할 정도로 차근차근 짚어가는 점이 좋아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 사랑방이 오래된 역사를 가진 단체이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무게감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랑방 활동가들을 만나면 의미심장한 질문 잘 던지고 분명한 원칙들이 있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특정 이슈가 있을 때 개별 단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당사자 조직이 아니라 다른 조직에서 어떻게 봐줄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체가 저에게는 사랑방인 것 같아요. 부담될지 모르지만 많은 단체 중에서도 인권 전반을 다루는 단체로서의 중심을 지금처럼 잘 잡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