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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2달여의 특훈, 907기후정의행진을 마치며

 

올해 9월 기후정의행진의 개최일은 초기 논의에서 9월 28일로 점쳐지다가 9월 7일로 앞당겨졌어요. 행진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내려진 결정이었지요. 윤석열 정권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또 22대 국회가 시작되는 해라는 점에서, 전국이 집중해 대규모로 서울에 결집하여 기후정의운동의 힘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올해의 기조는 크게 3가지였습니다. 기후재난과 불평등, 탈핵·탈석탄과 그 대안으로써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마지막으로 생태파괴와 개발사업에 맞선 투쟁이 주요한 키워드였지요. 그리고 한가지 이번 행진의 특기할 점을 꼽자면 장소가 강남으로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기후정의운동은 자본주의 체제가 초래한 기후불평등과 부정의에 맞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는 대중운동을 지향해왔습니다. 그 과정은 곧 자본의 파괴적 이윤추구와 이를 비호하고 부추기는 보수양당/정부와 분명하게 선을 긋고 싸움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현 정부가 노골적으로 온갖 기업지원정책·민영화와 감세정책을 통해 자본과 상층계급의 이해에 봉사하는 지금, 정부를 규탄하는 투쟁과 기업과 자본에 맞선 투쟁은 떼려야 뗄 수 없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요. 그런 측면에서 ‘강남’이라고 하는 자본 권력과 부가 집중된 공간은 우리의 싸움을 드러내고 조직하기 위한 적절한 선택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른 한편 2차 조직위원회에서는 907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구성에 대해 “22대 총선에서 보수양당과 함께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 정당 역시 참여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수정안이 제안되어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위성정당 참여에 대한 부정과 비판 위에서 수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출했습니다. 그 주요한 이유는 ‘보수양당 위성정당 참여’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하지만 이 문제와 ‘조직위 제척여부’를 구분할 사안으로 받아들였고, 무엇보다 지난 기후정의운동의 역사는 배제가 아닌 운동의 현장에서 함께 토론하고 논쟁하며 기후정의운동의 전망을 찾아왔다는 점에서 수정안에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2차 조직위에서 수정안은 부결되었지만, 그날의 토론은 9월 기후정의행진이란 기후정의운동에서 어떤 위상과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 것 같습니다. 

행진의 기조와 날짜 및 장소를 정하고 조직위 구성까지 마치고 정말이지 빠듯하고 혹독한(?) 2달 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907을 맞이하였습니다. 뜨거운 날씨에도 예상 인원보다 훨씬 많은 3만여 명의 이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본집회 이전에 강남일대에는 7-8개 정도의 사전집회가 열려 9월 기후정의행진 나아가 기후정의운동이 지금의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많은 운동을 매개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습니다. 

행진은 본집회가 열린 강남 신논현역에서부터 테헤란로를 거쳐 삼성역까지 이어졌습니다. 행진 경로 중 세 군데 거점을 두어 3개의 기조와 세부요구안을 드러내며 기후정의투쟁의 현장의 요구와 주체들의 목소리를 조직했고, 테헤란로에 사옥을 두고 있는 GS칼텍스, 구글, 쿠팡 및 포스코와 같은 기업들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조직해냈습니다. 특히 쿠팡과 포스코 앞에서는 기후재난과 기후불평등, 부정의한 에너지체제를 공고히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두 기업에 대한 비판과 분노를 드러내기 위한 직접행동인 풀칠액션을 하기도 했지요. 지금의 기후위기를 초래한 이 대자본들의 생산활동에 비하면 그날의 직접액션은 ‘귀여운’ 수준이었지만, 이마저도 경찰이 철저히 기업들의 방패막이가 되는 좌절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지요.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고 했는데, 세상을 바꾸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게 몸소 느껴지는 순간이었달까요.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행진팀에 결합해 당일 집회와 행진을 기획하고 필요한 실무를 나눠 맡았어요. 준비기간이 짧은 만큼 논의의 전개도 빨랐고, 그만큼 판단과 결정에 대한 압박도 적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수와 마찰은 끊이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니 어려운 조건과 국면을 돌파하고 일어서는 데 필요한 특훈을 받은 느낌입니다.(웃음) 다만 힘든 기억으로만 채워진 건 아니랍니다. 제가 좀 고생스러워보였는지, 몸보신을 해주겠다는 이들도 있어 옳거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싼 밥도 얻어먹었고요. 스트레스받은 덕분에 식사량이 줄어 그 덕분에 빼고 싶었던 살도 좀 빠졌답니다? 아쉽게도 잃었던 식욕은 907이 끝나자마자 회복하였고, 어렵사리 잃어버린 몸무게도 하루 이틀 사이에 회복했습니다. 저의 엄청난 회복탄력성을 확인하며, 907 준비 과정에서 받은 피로도 차츰 회복하며 907이 지나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으면 끝나도 끝난 게 아닌 거 아시죠? 앞으로 한 달여 907기후정의행진에 대한 평가를 위한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907기후정의행진의 요구를 누가 가지고 싸우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잘 만들어졌는지, 9월 행진에 모인 힘을 어떻게 기후정의운동이 또 이어갈 것인지 등 중요한 질문을 마주할 거 같습니다. 9월행진이 거듭되는 만큼 행진이 하루에 그치는 ‘행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꿀 힘을 조직하는 판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커지는 거 같습니다. 다시 일상의 고민을 이어가며 각 현장의 싸움을 치열하게 조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네요. 9월의 열대야를 살아가며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긴 여정을 지치지 않고 즐겁게 만들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