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총궐기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극에 달했다. 지난 22일 전국 15곳에서 벌어진 1차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연행자 가운데 6명이 구속됐다. 5개 지역 9개 단체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했고 121명이 출석요구서를 받았으며 체포영장이 발부된 42명을 표적으로 검거전담반이 편성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책임있는 입장표명을 요구하며 시청과 도청으로 몰려간 사람들을 언론은 “폭도”로 매도하고 있다. 관계장관들은 “불법·폭력에 대해 더 이상 관용은 없다”는 이른바 ‘무관용 원칙’을 대국민 ‘협박문’의 형식으로 발표했지만,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절박한 외침에 언제나 경찰력으로 응답해온 정부가 언제 관용을 베풀었는지 우리는 되려 묻고 싶다.
전국에서 15만 명이 참여한 집회에 대해 정부는 ‘불법행위 엄정대처’, ‘배후세력 색출’이라는 해결 능력 없는 해결책을 이번에도 또다시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총궐기의 진짜 ‘배후’는 노무현 정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졸속 개시한 정부는 절반이 넘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진행과정마저 숨기고 있다. 이를 감시해야 할 국회는 이미 비준할 준비나 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노예노동자’를 확대하는 노동법 개악과 노동자로부터 단결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빼앗을 ‘노사관계 로드맵’은 3년의 준비 끝에 여야 합의로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어김없이 ‘불법파업’일 뿐이다. 군대까지 동원해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며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할 미국의 군사전략 재편에 동참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실상이다.
하지만 이에 항의하는 민중들에게는 ‘합법적’이지만 불의한 ‘공권력’의 폭력만이 돌아올 뿐이다. 지난 22일에도 단지 시장·도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맨몸으로 어깨를 건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물대포와 압도적인 경찰력, 그리고 춤추듯 휘두른 경찰방패였다. 지난해 전용철·홍덕표 씨, 또 올해 하중근 씨가 잇따라 시위 도중 경찰에 의해 사망했는데도 경찰의 살인적 진압은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날 광주 집회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대테러 진압장비인 ‘테이저 건’을 사용하기도 했다. 레이저 조준장치가 달려 있으며 가스 압력으로 날카로운 촉이 발사되는 이 총은 실명위험은 물론, 최고 5만 볼트의 전기적 충격을 수 초 동안 가해 상대방을 실신시킨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잖은 목소리는 그날 진압에 나선 경찰들에게 돌려져야 마땅하다.
이런 현실은 그대로 둔 채, 거리로 쏟아져 나온 농민과 노동자, 빈민들에게 법과 절차를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법치에 순응하고 복종하라는 억지일 뿐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집행으로 촉발된 총궐기는 그 일방통행이 멈추지 않는 한 그칠 수 없으며 그쳐서도 안된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박탈당한 민중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민중들은 자신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언론 앞을 벗어나 광장으로 몰려나옴으로써야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민중총궐기 지도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폭력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에는 도심집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며 오늘로 예정된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원천봉쇄했다. 하지만 물리력을 동원한 원천봉쇄로 정당한 외침까지 봉쇄할 수는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가 법의 이름으로 금지되는 현실 위에서 얼어붙은 인권을 녹이는 것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폭도’라는 이름표를 기꺼이 달 준비가 되어 있다. 경찰력에 의지하는 정부, 거리에서 부정당한 정부는 진정 성난 민중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 31호
- 논평
- 인권운동사랑방
- 2006-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