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제에 즈음해서 자원활동을 시작했으니 이제 세 달이 되었네요.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렇게 지난 시간을 헤아려보니, 한 일보다 못한 일이 더 많아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노동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복입니다.
일전에 재용과 함께 활동가를 위한 노동법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사분이 강조한 탓도 있었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법에 기대서 무언가 해결하려하면 안 된다. 믿을 만 한건 노동자 스스로 싸워서 만들어내는 강제력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동법은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옳은데 엉뚱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고 코에 걸었다 귀에 걸었다 하니까 현장의 노동자들은 고공의 크레인에 올라갈 수밖에 없고, 손배가압류에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노동자의 손으로 쓰이지 않은 한,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건 애당초 글러먹은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의 그 다음주에 학습지 노조 집회신고를 하러 경찰서에 갔습니다. 정보계 경찰이 친한 척을 하고 싶었는지, 본사 앞에는 죽어도 허가가 안 나니까 로타리로 해서 신고를 하라더군요. 로타리클럽 때문에 집회하는 것도 아닌데 왜 로타리에다 내라고 그러느냐 했더니, 본사 앞은 거주시민들 소음 때문에 어떻고 저떻고 말도 안 되는 소릴 주워섬기더군요. 허가를 안내줄 이유가 없음에도 자본과 붙어먹는 공권력은 자기들 좋을 대로 법을 해석합니다. 그러니 불법집회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계석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아가는 사려깊은 법적용. 걸핏하면 테이저건과 고무총을 양손에 들고 달려드는 경찰은 합법이고, 노동자가 저항하면 무조건 불법인 일도양단 법해석. 너무 태연해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른바, 경찰국가의 시대에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범법자가 되는 게 아닐까요. 법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주지도 않거니와, 해석도 저희들 마음대로라면 무시하고 어길 수밖에요.
혼자 범법자가 되면 외롭고 힘드니까 다같이 범법자가 되는게 옳습니다. 이소선 어머니께서도 그러셨잖습니까. 파업을 하려거든 한 날 한 시 꼭 같이 하고, 잡혀갈래도 다 같이 잡혀가라고. 전라도에서 상경투쟁을 감행한 노동자대오가 고속도로에서 막혀 인근 경찰서에 잡혀갔는데 일부만 잡아두고 대부분을 다 풀어줬답니다. 풀려난 노동자들이 발끈해서 따졌답니다. 왜 쟤네만 잡아가냐, 나도 얘도 똑같이 버스타고 왔는데 다같이 잡아가라. 그렇게 경찰서에 다시 쳐들어가서 화장실도 아닌데 소변을 보고, 아무데나 담뱃불을 비벼 끄고 했답니다. 수십도 아니고 수백이 그랬으니 경찰서는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처음에 잡아가둔 노동자까지 모두 풀려났답니다. 우리도 집회하면 그렇게 할까봐요. 옆사람이 잡혀가면 나도 덩달아 따라가서 공권력 욕보이기. 트랜스포머 차벽을 만들어놓고 저희들끼리 희희낙락하는 놈들이니 다 잡아가라고 난리를 치면 그땐 동대문운동장만한 감옥소를 만들어 낼까요?
더군다나 용산투쟁과 쌍용차투쟁에서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철거민, 노동자가 범법자라면 그들과 한 편인 우리들도 범법자입니다. 골자는 이렇습니다. 모두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범법자가 됩시다. 후원인 여러분, 그리고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모든 동지 여러분, 우리 경찰서에서 만나요. 거기서 야단법석을 떱시다. 공권력이 손사래를 치다 못해 무릎을 꿇을 때까지요.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