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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서른 한 번째 죽음, 정부가 막을 수 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정부가 답해야한다

지난 7월 3일 덕수궁 앞 대한문에 또다시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분향소가 차려졌다. 6월 27일 목숨을 끊은 동료를 추모하기 위한 곳이다. 그러나 분향소가 세워지면서 보수 세력은 온갖 모욕과 폭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서른 번째 죽음 앞에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2009년 대량해고 사태부터 지금까지 10년 째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왔다. 2015년 회사와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며 순차적으로 복직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기다려 왔지만 찾아온 소식은 복직이 아닌 또 다른 죽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는 이미 너무 오래된 문제일지 몰라도 쌍용자동차 해고자에게 해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리해고, 시작은 국회였다 

2009년 5월 쌍용자동차는 정리해고에 앞서 2400명에 달하는 정리해고 명단을 노동부에 신고했다.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회사는 희망퇴직을 하면 몇 달치 월급을 주겠다고 이야기하며 퇴직을 유도했다. 노동조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싸웠다. 하지만 2주도 채 되지 않는 기간 희망퇴직자는 1000명 가까이 모였다. 노조는 파업을 단행했지만 결국 쌍용자동차는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노동자 1000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그해 쌍용자동차에서는 노동자 1666명이 희망퇴직했고, 980명이 정리해고되었다.  

이렇게 대규모 해고가 가능했던 것은 정리해고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6년 말 IMF가 터졌을 때 국회는 경영상의 위기가 오면 해고를 해도 된다는 내용을 담은 정리해고법을 만들어놓았다.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회사가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는 그런 이유조차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온 국민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모으자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국회가 열어둔 정리해고라는 문으로 모든 책임이 노동자에게 떠넘겨졌다. 쌍용자동차 대량해고사태도 다르지 않았다. 경영에 실패한 상하이차 자본과 경영진은 국회가 열어둔 그 문으로 또 다시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부과했고, 2646명의 삶은 전쟁터가 되었다.

 
공권력이 해고노동자에게 찍은 낙인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했다. 스스로를 가둬야 할 만큼 절박했고, 생존을 포기할 수 없었다. 국가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무관용'을 내세우며 노동자를 진압했다. 경찰은 곤봉, 최루탄, 테이저건, 다목적 발사기 등 온갖 진압장비를 동원했고, 밤마다 헬기를 띄워 노동자를 괴롭히고, 공장의 전기와 수도를 끊어 이들을 고립시켰다. 결국 2009년 8월 5일 77일간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이어가던 노동자들은 모두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 공장에 남아있던 458명 중 96명이 연행되었다.  


극심한 폭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노동자가 살기위해 몸부림 칠 때 국가는 회사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불법 파업이라 명명했다. 생존을 건 노동자를 테러리스트로 취급했다. 파업이 끝난 뒤에도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손해배상 들이밀며 처벌하고 가압류 딱지를 붙였다. 정부와 공권력이 해고 노동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너희는 국민이 아니다. 아무도 너희를 보호하지 않는다." 

정부와 공권력이 전달한 메시지는 그냥 추상적인 압박의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은 파업에 진압장비로 동원되었던 크레인, 헬기 등이 손상되었다며 16억 7000만 원을 손해배상하라고 청구했다. 부당한 청구라고 재판을 거쳤지만 여전히 11억 6000만 원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에게 꼬리표처럼 붙어있다. 파업이 끝나도 쌍용자동차를 다녔다는 이력은 블랙리스트의 대상자가 되었다. 어딜가도 쌍용자동차 출신은 어렵다며 취업을 할 수 없었다. 쌍용자동차에서 지급된 퇴직금은 전부 손배가압류에 묶이고, 취업은 되지 않으니 생활고에 시달렸다. 해고 이후에는 지역에서 동료들과 맺어온 공동체도 파괴되었다. 국가가 만든 사회적 낙인은 계속해서 그들을 따라다녔다.

 

대법원은 해고노동자의 삶을 거래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2010년에는 회사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22번째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더 이상 죽을 수 없다고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리기도 했다. 끊임없이 시민사회와 연대하며 쌍용자동차의 부당함에 맞서 싸웠다. 결국 2014년 2월 서울 고등법원에서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쌍용자동차가 정리해고를 할 만큼 재무상태가 위험하지 않았고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 해 11월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리해고는 정당했다고 판결을 뒤집었다. 법원의 판단이 바뀔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었지만 사측의 입장을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재판은 당시 대법원장이던 양승태의 재판거래의 결과였다. 사법부는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노동자의 권리와 삶을 거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국회와 정부에 이어 사법부도 해고 노동자의 삶에 못질을 한 것이다.

 
정부가 달라지지 않으면 회사도 달라지지 않는다  

10년을 싸워왔다는 것은 강산이 변하도록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대법원의 판단에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한 달 만인 2014년 12월, 다시 굴뚝으로 올라가고, 상차이차 이후 사주가 된 마힌드라와 협상해 결국 2015년 복직합의를 이루어 냈다.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노동자를 복직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또한 회사가 노동자에게 청구한 47억 원 손배가압류 역시 취소시켰다.

그렇지만 2018년 7월 아직도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서른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야 말았다. 오히려 회사는 또 다시 '의자놀이'를 강요하며 공장으로 돌아갈 해고노동자의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하거나, 인건비를 늘리지 않으면서 복직자의 수를 늘릴 방법을 제시하라고 말한다. 사주가 바뀌어도 회사는 다르지 않았다. 국가가 그대로이므로 회사도 달라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 가서 쌍용자동차의 기업주 마힌드라 회장을 만났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박근혜 정부 때도 했던 일이다.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가 전원 복직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역할을 찾아야 한다. '무분별한 정리해고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기업 마음대로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국가'가 나서서 전달해야 한다. 해고를 살인으로 만들어온 지금까지의 정부와는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의 해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정부와 경찰이 해야 할 일  

경찰도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2017년 8월 7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발족했다. 진상조사위가 우선하여 다루는 사건 중 쌍용자동차 파업 강제진압사건도 포함됐다. 이전 정부의 경찰은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을 우수 진압 사례로 뽑고 진압 경찰에게 포상도 주었다. 이제는 해선 안 될 일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야 한다. 당연히 경찰이 청구한 손배가압류 철회가 함께 가야 할 일이다. 

오는 14일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분향소가 있는 대한문에서 보수 세력의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분향소를 지키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또다시 온갖 모욕과 위협이 있을 것이란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정부와 경찰이 진정으로 달라지고자 한다면 폭력의 방관자가 되기를 멈춰야 한다. 더 이상 동료를 추모하는 해고노동자가 보수 단체의 모욕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