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가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허준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05년 농민대회에 참석했던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던 사건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살인진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인물이 2009년 3월 이명박 정권에서 한국철도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2009년 2월 이명박 정권에서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사건으로 사퇴했던 김석기는 2013년 10월 박근혜 정권에서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두 사건에는 유사한 점이 너무나 많다. 비전문가들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경찰청장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 부처 기관장들이 산하기관이나 다른 공공기관의 간부로 자리를 옮기는 일은, 너무나 흔해 고질적인 문제니 넘어가자. 김석기나 허준영은 그저 그런 정부 고위급 관료가 아니지 않은가. 공권력의 사용으로 사람이 죽었다. 여기에서 인권운동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구조적 폭력을 읽는다. 그러나 보수정치세력은 공권력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한 부수적 피해를 읽는다. 이 간극 사이에 허준영과 김석기의 임명이 있었다.
허준영과 김석기는 모두 사건 이후 스스로 사퇴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퇴는 모두 책임 회피용이었다. 자신을 향해 요구되는 책임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정당했다는 점을 호소하는 것이 사퇴문의 주요 내용이었다. “성난 농민들의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고……”(허준영) “극렬한 불법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 여론몰이식으로 경찰을 비난하고, 불법폭력의 심각성보다 경찰의 과오만을 들춰내는 비이성적 습성을 하루 빨리 타파해야 합니다.”(김석기)
이들은 사퇴하는 순간까지도 사건의 책임을 죽은 사람들에게 돌렸다. 불법, 폭력은 죽은 이들에게 붙는 낙인이 되었다. 강정마을에서 강언식 서귀포경찰서장이 “법 절차를 통한 정당한 권리 주장보다 다중의 힘을 앞세운 집단 이기주의와 불법, 폭력시위가 우선하는 잘못된 풍토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나, 지난 9월 이성한 경찰청장이 밀양을 방문하며 “주민들이 국책사업의 수행에 반대하면서 경찰을 폭행하거나 공사를 방해하는 등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말한 것은 허준영과 김석기의 발언과 똑같은 발언이다. 허준영과 김석기는 사퇴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고 지켰던 구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공공기관의 사장 자리에 임명되는 것은 이렇게 보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더욱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언제나 ‘불법’의 굴레에 갇혀 있다. 경찰이 사용하는 물리력은 ‘공권력’이고 저항하는 자들의 물리력은 ‘폭력’이 된다. 경찰청장의 지시는 ‘말’일 뿐이나, 투쟁하는 사람들의 결의는 ‘(잠재적) 테러’가 된다. 공권력이 공‘권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합법적으로 부여받은 물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리력의 사용을 통해 ‘법’을 스스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 미군 기지를 짓는 것,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 정리해고를 감행하는 것이 모두 경찰의 물리력을 통해 ‘법’의 지위를 얻는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용산참사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미 개발이 이루어진 동네들, 이미 송전탑이 지어진 지역들, 이미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아무 말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굳이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필연적으로 어딘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저항들을 공권력이 언제나 완전히 제압했기 때문이다. 개발 사업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 송전탑은 전력난 해소를 위해, 정리해고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한 일이라는 ‘법’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의심을 품는 사람들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감수해야 한다.
국가폭력의 구조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김석기의 한국공항공사 사장 임명도 마찬가지다. 용산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희미해지는 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국가폭력의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한 사건이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힘이 중단되지 않는 한 ‘참사’는 영속적이다. 허준영이나 김석기의 말처럼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 ‘예기치 못한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우리는 언제나 ‘이미’ 참사 중인 시간을 살아가는 셈이다.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된 허준영이 단체협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철도노조의 파업을 철저하게 짓밟은 것이나, 노숙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며 역사에서 쫓아내기 시작한 것은, 이 구조 안에 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저항을 한 치도 허용할 수 없다며 버티는 구조 말이다. 김석기가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되고 한두 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김석기 퇴진을 촉구하는 1만인 선언 : http://socialfunch.org/ksk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