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시작된 지 어느덧 10여 일이나 지났지만, 이렇게 새해라는 감각이 없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다들 그렇겠지만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의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 그게 불과 한 달 전 일이라니…. 비상계엄 사태가 터졌을 때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머리에 입력이 잘 안됐다. 경험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던 일이 현실로 닥쳤을 때, 정지된 느낌이랄까. 그래도 다음 날 기후환경단체들과 함께 규탄 기자회견도 하고, 기후정의동맹 명의로 성명도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주변의 분위기는 ‘윤석열이 자폭했다’, ‘제 발로 권력을 발로 차다니’에 가까웠고, ‘윤석열’에 대한 그간의 온갖 소문과 문제들이 사실이었던 거냐는 이야기가 오갔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국민의힘이 비상계엄 해제 결의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탄핵반대 당론을 정했던 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국회를 군인들이 점령하는 사태를 겪고도 ‘윤석열 탄핵’만은 안된다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비상계엄이 ‘윤석열’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소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를 수십 년간 해온 ‘정치계급’이 이렇게 자신들의 규칙을 무너뜨린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12월 12일 모두를 경악하게 했던 윤석열의 29분간의 대국민 전쟁선포 연설 그리고 탄핵반대로 똘똘 뭉친 국민의힘을 보면서 이건 2016년 박근혜 탄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14일 늦은 김장을 하며 탄핵소추안 가결을 지켜봤지만 가슴은 답답했고 김치는 맛있었다.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일지 조마조마했다. 이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12월 21일, 28일에 광화문 광장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번 비상계엄은 ‘서울의 봄’을 넷플릭스 주간 순위 1위로 올릴 정도로 과거 군사독재 시기를 연상시키는 사건이었지만, 광장은 과거가 아닌 윤석열 체포와 함께 페미니즘, 평등, 반차별의 목소리가 또렷이 울려퍼지는 장소였다. 하지만 윤석열 탄핵소추 이후, 한덕수 권한대행을 비롯해 윤석열과 함께 비상계엄을 심의했던 국무위원들이 정부를 책임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민주당이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제안하며 이들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윤석열만 없으면 된다는 민주당의 태도와 정권교체만을 향해 달려가는 민주당 때문에 정작 우리가 무엇에 맞서 싸워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이는 한남동의 일주일로 이어졌다. 모든 소환조사에 불응하던 윤석열이 순순히 체포에 응할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공수처는 안일하게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했고, 격분한 극우세력은 한남동으로 결집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극우집회 무대에 오르고, 한남동 관저 앞에 모여 스크럼을 짰다. 극우보수대중-국민의힘-윤석열이 한남동에서 결집한 것이다. 광화문에서 10년째 이어지던 ‘극우보수개신교’ 집회가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도 뜨겁게 3박 4일 동안 집회를 이어갔지만, 한남동은 윤석열 탄핵 찬반, 윤석열 체포와 수호로 양분된 한국사회로 비쳤다. 윤석열이 파괴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여의도에 모였던 우리의 투쟁이 ‘윤석열-이재명’, ‘여야 정쟁’으로 왜곡된 상황이 된 것이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직 ‘정권교체’ 한 길로 달려가는 민주당이 이러한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와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분명해지고 있다. 그들에게 이제 광장은 관심사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중요할 뿐이다. ‘광화문의 전광훈’이 아니라, 유력한 정치사회세력으로서 ‘극우대중운동’의 토대가 무엇인지,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 것인지 광장에 모인 대중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이 사태 역시 윤석열의 비상계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닐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총기와 마약, 트럼프라는 인물에 가려져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모든 사태가 갑자기 내 눈앞에 밀려오고 있는 느낌이다. 위기의 시대,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우리가 있다.